인생에 있는 어떤 특별한 경험으로인해 창업에 도전했다거나 진로를 결정했다는 스토리가 있다. 어떤 작고 특별한 경험 속에서 큰 감동을 겪거나 큰 불편함을 겪어서 방향을 전환하게 된 계기. 안경 브랜드 와비파커는 한 여행에서 안경을 잃어버리고 다시 살려고하니 너무 비싸서 안경을 사지 않고있다가 창업을 하게되었다고한다. 최근에 본 일드 '포켓에 모험을 가득 담고' 에서는 학창시절 힘든 교우관계를 보내고있었는데 광고 포스터의 모델의 금발머리를 따라했다가 상황이 좋게 변해서 결국 그 광고를 만드는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광고하나로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알게 된 것이다. 이처럼 특별한 스토리는 매우 작지만 강렬하여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게 하고 감동하게된다. 하지만 이런 특별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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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결국 남들이 하는것을 보게된다. 유투브, 만화, 뉴스, 라디오 등 매체들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슈퍼히어로에 가깝기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부작용이지만 거기에도 순기능이 있다. 꿈이 커진다는 장점이 있다. 그것보다는 더 올라가고자 하는 마음을 낸다거나 나도 그것과 비슷하게 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꿈만 크고 겉멋만든 중2병에 걸리는 것은 삶의 필수 코스다. 거기에 머물러선 안되겠지만 그렇게 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꿈은 현실과 정반대로 불가능할 수록 좋은 것이다. 마구 놀고 쉰사람도 현실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대단한 사람이다. 꿈이 크다보면, 보통의 방법으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어느정도 인식하게 된다. 그렇기에 어렵게..
일거리는 문제를 찾아서 결정하는 것이지만 직업은 시장을 찾아서 결정하는 것이다. 시장이라는 것은 그 문제들이 패키지로 그룹핑 해놓은 곳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특정한 종류의 문제들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곳' 이라는 정의. 우선은 시장이 있어야한다. 즉 직업이 있어야만 한다. '지속성'을 확보해야한다. 좀 뒤 떨어져도 살수 있는 커다란 뭔가가 있어야한다. 누구에게 뭐하는사람인지 말할수도 있어야한다. 어떤 카테고리인지부터 정할 수 있어야 안정감이 생긴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돈을 벌 수 있는 그런 단단한 뭔가가 있어야한다. 실패했을 때도 취직을 하고 직업을 내세울 수 있을 만큼의 정확한 시장이 있어야한다. 그리고 나서 특정한 스킬이나 일을 받아서 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일이나 막하..
이 세상에 새로운 니즈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제품의 구매는 니즈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기준이 거기에 있다. 새로운 니즈가 아닌 새로운 상품에 의해 니즈가 충족되는 것 뿐이다. 니즈가 무조건적으로 선행하므로 '새로운' 니즈를 찾아다니는건 모순이다. 이미 있는 것이야말로 니즈다. 없는 것은 '니즈'가 될 수 없다. 없는 것은 그야말로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디오게임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가 생겨났기에 새로운 시장과 니즈가 생겨난 것일까? 잘 보면 보드게임 이라는 원래 시장이 있었고 그것이 단지 디지털적으로 확장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든 산업, 모든 업종에서도 마찬가지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어져온 것 뿐이지 새롭게 생겨난 것이 아니다. 최첨단 아이폰과 초고도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죽을 위기를 겪다가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아서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성립될 수 없다. 죽을 위기에서는 생각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본능 시스템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꺠달음을 얻고 무언가를 변화시킨 사람들은 언제나 위기 이전에 미리 벌벌 떤 사람이다. 아직 생명력이 남아있을 때 손을 벌벌 떨 수 있는 상상력을 가졌기 때문에 변화하고 생각할 수 있다. 큰 사고를 당한 뒤 그것을 책임지고 처음부터 다시 시도할 순 있어도, 죽을 위기가 왔기 때문에 내가 너무나도 힘들기 때문에 그 이유만으로 갑자기 수십억을 벌거나 하는 이야기는 개사기꾼들의 레퍼토리다. 단지 자기자신이 너무나도 가엽기 때문에 각성을 해서 갑자기 수억을 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역배팅적인 사고는 존재할 수 없다. 큰 사고를 당하기 전..
내 마음 속에 75점을 넘은 것이 있는 대상이 있다면 설령 100점이 아닌 75점이라고 하더라도, 25점이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비판하거나 아쉬운점을 꼽는 것은 매너에서 벗어난 행위다. 설령 그 단점이나 아쉬운 점이 명확하더라도 가만히 있는 것이 도리이자 상도덕이다. 단지 매너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비판과 아쉬운 점이 틀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충분히 잘했다, 좋았다 라고 나를 움직이게 만든 것은 내 이상이라는 것이다. 나보다 더 큰 것이라는 뜻이다. 나를 움직이게 했고 변화하게 만들고 안심하게하고 즐거움을 준 것은 언제나 내 이상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것이고 나를 확장시켜주고 나에게 힘을 준 것이기 때문이다. 내 이상의 것을 과연 내가 판단하고 재단할 수 있을까? 감히 단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