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는 반드시 제품화된다. 되어야만한다. 제품화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수확되기를 기다리는 자연의 열매와도 같다. 서비스는 매우 자연적이다. 서비스직에 종사하는데 자연에 의해 설정된 외모나 재능이 관여할 확률이 매우 크다. 랜덤적이고, 우연적이며 뭔가가 쌓이는 개념이 적다. 마치 상위 30%이상의 VIP 에게만 제공되는 특별한 혜택과 같은 느낌을 준다. 자연은 자유롭고 행복해 보일 수 있지만, 동시에 공포스럽고 랜덤적이다. 인류의 모든 방향은 제품화에 있다. 노동서비스가 기계로 대체되고 정신노동서비스가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상위 30%에게만 제공되었던 '서비스'가 제품화되어 모든 사람에게로 퍼져나가는 것이다. 커피숍, 골프캐디 아르바이트생은 정말 미안하지만 인류에게 있어 가장 필요없는 쪽에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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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무게가 큰 것과 키가 큰 것은 기본적으로 성장을 뜻한다. 단순히 유전자가 그렇게 되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많이 먹는 비만이 되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어른으로써 얼마나 성장 했는지를 나타내는 척도가 될 수 있다. 어린애들이 작고, 어른이 큰 것이 기본적으로 누구나 인정하기 때문이다. 균형을 잡을 수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성장하는 것이다. 무게감과 안정성을 위로 쌓아나가는 성장이다. 물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냥 키만 멀대같이 큰 텅빈 놈도 있고 그냥 많이 처먹어서 살찐 놈도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딱히 고려해야할 변수나 정보가 없다면 키 큰 사람, 혹은 몸무게가 많은 사람이 어른일 가능성이 크다. 즉 실력이 더 높고 생각이 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리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것이, 정신적으..
내가 만약 도전자라면, 그 어떤 곳으로도 이동하지 않겠다. 왜냐면 나포함 모든 사람이 자기인생이 제일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세상에서 제일 힘든 나자신을 선택하는 결정을 할 것이다. 나는 도전자이고, 거기에서 가장 큰 문제를 풀어서 가장 큰 이득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메리카로 건너간 개척자들이 가장 큰 미국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걸 따라해야하는가? 더이상 남은 땅이 있는가? 화성으로 이주해야하는가? 아니다 나는 더 높은 방식으로 가만히 있음으로써 도전하는 인간이 될 것이다. 나는 가만히 있을 것이다. 여기서 살 것이다. 내버려둘 것이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게 아닌 내면의 깊은 핵심을 찾는 싸움과 도전을 할 것이다. 최고의 자리는 이미 내가 선택했다.
문제는 4가지 단계별로 스탠스를 결정해야만한다. 화의 단계를 소노 - 중노 - 대노 - 극대노 따위로 분류하는 것처럼 문제를 봤을 때는 단계별로 검증하고 문제를 푸는 것이 옳다. 매우 사소하고 넘겨도 되는 문제를 갑자기 '극대노'로 폭발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토끼를 잡는데 탱크부대를 데리고오는 꼴이다. 문제가 있는 상황 또한 올바른 상황이다. ( ex 사소한 소음은 도움이 되고, 평화가 무조건 좋은게 아니다. ) 일반적인 기초기둥역할을 함. 문제풀이를 크게 원하지 않는다. 어디든 다른곳으로 옮겨갈 수 있고 내버려둘수도 있는 여유. 그게 기준을 넘어선 말도안되는 사악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우선은 어느정도 해결되지 않아도 좋다는 마음을 가져야한다. 어짜피 문제는 나를 성장시킬테니까. 가만히 내버려둚으로써..
내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다. 돈은 적당히 있으면 된다. 완벽한 몸매, 완벽한 외모가 아니다. 외모는 적당하면 된다. 완벽한 친절한 서비스가 아니다. 적당히 교환할 수 있으면 족하다. 완벽한 행복이 아니다. 적당히 행복하기만 해도 된다. 완벽한 잠자리가 아니다. 어느정도 몸을 눕혀서 쉬기만 할 수 있어도 된다. 층간 소음이 없는 완벽한 공간이 아니다. 내가 집중할 수 있는 3시간 정도만 있어도 충분하다. 완벽하게 즐겁고 행복한 진로를 찾는게 아니다. 적당히 스트레스 받지 않고 나의 가치관과 부합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나의 진정한 문제는 적당함을 감사할줄 모르고 완벽함을 바라는 것이다. 구멍을 막을 생각은 안하고 물을 냅다 퍼붓고 있다. 그야말로 사탄이자 맘몬이 내 안에 숨어있다. 그럼 내가..
아직 모르지만 실험을 해봤고 경험을 해봤고 이론적으로 알고 있기에 미지의 세계, 장기적인 시간 속, 모르는 사람에게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 믿음이다. 무지성적인 믿음은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을 분명히 올바른 것이라고 확신하는 상태여야한다. 그것이 설령 가설일지라도 그 가설을 확실하게 믿을만한 증거와 경험을 해야만한다. '될거라 믿는다' 그 말은 되는 것을 분명하게 본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태도다. 믿음이 아닌 인식을 한 사람만이 그냥 아는 것이다. 될 것 같다. 될 걸 알아. 내가 해봤으니까 내가 봤으니까. 그것과 비슷하니까.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니까. 흔들리는 것을 붙잡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것이 믿음이다. 흔들림 속에서 발견한 것이 곧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