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많은 것에 관심이 있다. 그런데 그중에 무언가를 특성화해서 직업을 삼아야한다. 내가 다른 포지션도 다잘하는데, 아니 잘 할 것같은데, 꼭 하나를 우선적으로 골라야만 한다. 세상은 그렇게 되어있다. 그럼 나는 어떤걸 골라야할까? 게임에선 딜러와 탱커와 서포터와 같이 명확한 역할이 나뉘어져 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현실세계의 직업과 특성도 명확하게 역할이 나뉘어져 있다. 산업적인 것, IT적인 것들은 돈을 잘버니까 딜러이고, 인문학, 영화, 애니메이션과 같은 것은 탱커이고 가수, 연예인, 시인 등 예술가들은 서포터이다. 물론 내맘대로 분류한 것이지만 이 느낌은 얼추 맞을 수 밖에 없다. 내가 만약 경제적인 이슈가 삶에서 지속적으로 있다고 한다면 나는 딜러를 해야만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서포터로 어마..
생각하기/진로 찾기 검색 결과
직업과 영역들은 비슷비슷한 개념들이 너무 많다. 여기 조금 걸쳐있고 이건 좀 한계가 있고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많은 것들중 하나를 선택하는건 참 말이 안된다. 해보지도않고 선택을 해야한다는 건 불합리하다. 그런데 다 해볼 수도 없다. 그냥 생각만 해보려고하면 힘드니까 수없이 많이 이동해본 공간들 중에서 골라보자. 내가 멋있어보이고 기분이 좋게 느껴졌던 곳은 어디일까? 충만하고 자신감 있었던 공간은 어디었을까? 제품이나 서비스를 주는 입장이던 받는 입장이던 상관이 없다. 서비스를 받는 그 공간이 기분 좋고 멋있었다면 나도 그곳에 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내가 좋은 것이니 남들에게도 좋은 걸 할때 더 능력을 발휘 할수도 있다. 공간으로 생각했을 땐 왠지 구체적이기 때문에 ..
좋아하는 것은 -> '싫어하는 것이 없다'는 것과 매칭이 되어야한다. 두가지가 동의어가 되어야한다. 무슨말이냐면 어떤것을 좋아하는데 싫어하는 부분도 있다 라고 말하는 건 미친 생각이라는 뜻이다. 좋아하는데 싫어하는 것도 있다는 정신 착란과도 같은 생각은 아무 의미없이 단어를 남발하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좋아한다면, 싫어하는 부분이 없어야한다. 하나라도 싫으면 싫은 것이다. 물속에 한방울의 오염된 흙탕물이 튀었다면 그것을 먹을 수 있는가? 좋음 이란 완전하고 온전해야한다. 이거 좋은데 저건좀 문제되고 이건 좀 아쉽고 하는 소리를 하기 시작하는 순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한다. 세상 어딘가에는 좋음 이라는 것이 있다. 한번도 좋음이라는 걸 보지 못한 사람이 '좋은데 이건..
한명의 인간이 태어난다. A1 이라는 상황을 맞이하고 J1 이라는 기쁨을 가진다. 이번엔 A2 라는 상황을 맞이하고 J2와 함께 P1이라는 고통을 가진다. A1 ~ An 의 상황 속에서 J1 ~ Jn 의 기쁨과 P1 ~ Pn 의 고통을 맛본다. 인간은 세뇌당한 교육과 사회환경 속에서 J에 집중하려고 한다. 문제를 무시하고 기쁨을 맛보기만하면, 잠시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이 끝날 줄로만 안다. 고통을 그저 운에 의해서 일어난 사고일 뿐이라고 생각하기에 남탓을 하게되고 워라밸만을 추구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똑같은 종류의 고통이 계속해서 찾아오고 운명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생각하게 될 뿐이다. J1 ~ Jn 은 누군가에게 받은 선물 같은 것들이다. 내가한 것이 아닌 공짜로 받은 것이고 도..
등산을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은 어떤직업을 가져야할까? 등산과 관련된 매우 많은 직업이 있다. 엄홍길 대장님처럼 전문등산가가 될수있고, 클라이밍을 할수잇고, 아웃도어 상점을 열어도되고, 캠핑카를 만들어도 되고, 산림청 공무원이 되어도 된다. 종류는 수없이 많다. 그런데 종류가 많다보니 지구상에 수없이 많은 것들 중 단 하나인 '등산'이라고 정했는데도 다시 수없이 많은 선택지중에 하나를 선택해야한다는게 매우 짜증나고 힘이 든다. 하나의 선택지로 좁혀졌는데 다시 수많은 선택지로 옮겨간다? 이건 생각의 오류이다. 내가 잘못생각하는 것이 있다. 잘못된 인식에서 나온 명백한 오류다. 등산을 좋아한다고해서 아웃도어 상점 주인이 되야하는게 아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서비스하는 것을 싫어한다. 한곳에 머무는 것도 싫어한다..
세상엔 여러가지 종류의 고통이 있다. 직업이란, 가치라는 것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 때 발생하는 것이다. 잘 짜여진 교육과정 속에서 특별한 재능을 뽐낸다고해서 그것을 잘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에 대한 지식이 많고 공부를 좀 한다고해서 그 직업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초등학생 학예회 같은 세상이 아니다. 현실은 너무나도 더럽고 추악하고 조잡하다. 그럼에도 그 현실을 아무렇지 않게 상대할 수 있는 마법사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세상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냥 참는 것이 아니다. 참을만 해서 참는 것이다. 찜질방에서 참는 것처럼 나에게 이득이 되면서도 뭔가 시원한 느낌이 있기에 참는 것이지 그냥 참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고통을 나는 얼만큼 견뎌낼 수 있는가? 나의 환경과 주변 인물들이 만들어놓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