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100% 중 70%가 동의하는 그런 다수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아니지 않은가? 남자는 70% 좋아하고 여자는 30% 좋아하는 레벨에서 '아이'라면 좋아할 전혀 다른 레벨로 넘어가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남자나 여자가 되기전에 둘다 아이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의사나 변호사, 축구선수와 같은 전문 직업을 가지기전에 모두 같은 인간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미니멀리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100% 중 5%만 남겨놓고 싹 정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이 아니라 단순한 것, 힘으로 찍어눌러서 작아진 것이 아닌 가장 근본적인 원형을 말하고 싶다. 분리된 것을 통합하기 위해선 그 좁은 바늘 구멍을 통과 하는 수밖에 없다. 싫어하는 사람 없이 모두..
생각하기/인생 전략 검색 결과
가장 웃겨야할 광대는 어째서 반대로 가장 무서운 것의 상징이 되었는가? 며칠을 굶은 사람이 기어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없기 떄문이다. 기어가고 싶어서 기어간게 아니라, 일어설 수 없기 때문에 기어가는 것이다. 정반대의 것은 이유와 동력이 되고 그것을 품지 못한 사람은 진정한 힘을 얻을 수 없다. 광대가 웃기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너무나 무서운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불을 원한다면 얼음으로, 따뜻함을 원한다면 추움으로 가야하는 역설적인 세상 삶을 원한다면 죽음으로 가야하고 앞서기 위해선 뒤로 가야만 한다.
마을 길에 있는 나무도 조용히 쉴 수 있는 공원의 벤치도 내 방안에 있는 책상도 거실의 식탁 위에서도 내 손가락에 있는 손톱도 까칠까칠한 내 피부도 내 튼튼한 몸과 풍성한 머리카락도 문득 드는 옛 생각과 밀려오는 감정도 내것이 아니기에 깨끗하게 둘 수 있다. 잠시 빌려왔기에 가만히 둘 수 있다. 보이는 것을 보이는 그대로 들리는 것을 들리는 그대로 찬성도 반대도 없는 곳 A를 가진것도 아니고 B를 가진것도 아니고 A와 B를 모두 가진 것도 아니다. A와 B를 둘다 가지고 있지 않은 것. 정보도 없고 사람도 없는 섬 판단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자리 몸이 알아서 움직일 수 있기를
이걸 해야할까? 저걸해야할까? 해야할까 하지말아야할까? 이런 갈림길에 서있을 떄는 항상 두려움과 함께 머물러야한다. 절대 두렵지 않은 척 강제로 넘어가거나 마음대로 선택해서는 안된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토론하고 대화해야한다. 누가 맞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대화하다보면 1. 두려움이 하는 말이 정말 답이기때문에 실행하지 않아야할 수도 있고 2. 두려움이 완전히 거짓이라는 것을 알 수 도 있고 3. 실행은 하되 두려움을 완화시킬 수 있는 플랜B나 실패했을 때의 대응 방안을 생각하게된다. 4. 다른 대안이 없고 꼭 해야한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정말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두려움을 사라지게 할 수 없기때문에 손잡고 함께 가야할 때가 그럴 때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움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은 언제나 자기자신이다. 내가 받은 고통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 이건 모두에게 분명한 사실이다. 고통의 메커니즘이 그것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통을 받는 이유는 다른 어떤 이유도 아니다. 그냥 내가 그 상황이 너무 싫어서 저항하고 대결하다가 맞닥트린 결과이다. 나의 잘못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바로 나이다.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가시를 붙잡은 길가메시처럼 고통을 손으로 움켜쥐는 것은 최초이자 최후의 미션이다. 고통과 죽음으로 뛰어드는 유일한 방법은 고통스럽고 더러운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완전히 내편이 된다. 인간 최고의 능력인 '부정 본능'을 발휘하자.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선언하고 고통을 부정하고 이겨야한다. 나에게 고통을 주었던 그 모..
생각은 뭔가 광장 같은 곳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의 느낌과 감상, 다른사람들의 생각 등이 전부 버무려져 있는 그런 방대한 곳이다. 누가 무언가를 먼저 하면 '어? 나도 그거 생각했었는데 저렇게 쉬운걸 하네' 라고 아이디어를 무시하기도한다. 그런데 생각을 광장이라고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일이고 누구나 공유하는 그곳에서 자기도 봤다고 말하는 건 맞는말이긴하지만 웃기는 태도이다. BC 400년 전쯤 기축시대라 불리는 그 때 어떻게 동양과 서양의 정신들이 동시에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 어떠한 교류가 없었는데도 석가모니와 공자, 노자, 소크라테스는 동시대에 같은 필요성을 느끼고 서로 다른 표현방식으로 나타났다. 생각이라는 광장에는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눈다. 모두가 듣고 모두가 공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