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은 농업에서 나온 용어라고 한다. 옥수수 씨앗 100개를 심어서 옥수수 몇개를 리턴 받느냐. 자본주의에서 return은 수익률이다. 1억을 넣어서 5%의 수익률을 리턴받는 것. 농업과 자본주의에서의 return은 심은 씨앗이 절대로 다른 것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옥수수 씨앗에 투자를 하면 무조건 옥수수가 나온다. 화폐에 투자하면 수익률에 따라 무조건 그 화폐의 증감만이 결과물로 되돌아온다. 이런 일직선 방향에서의 투자는 결국에는 '수익률과 리스크' 라는 절대법칙에 따라 일렬로 줄세워진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명확하게 정해져있고 그로인해 비좁은 공간에 무한한 경쟁이 생겨나게 된다. 다양성 따위는 배제되고 오로지 힘의 논리에 의해서만 모든 것이 결정된다. 하지만 세상엔 또 다른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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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made you look like a prince on the outside. But I didn't change anything on the inside " 난 너의 겉모습만 바꾸어 주었지, 네 내면까지 바꿔주진 않았어. 윌스미스가 출연한 영화 '알라딘' 에서 지니는 세상에 있는 모든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힘이 있다. 하지만 그 건 겉모습 뿐이라고 말한다. 알라딘 영화뿐만아니라 현실세계에서도 우리는 슈퍼파워인 소원하는 능력,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 꿈꾸는 능력이 실제로 존재한다. 그 능력을 통해 자기마음대로 원하는 방향으로 언제든 갈 수 있지만, 그 소원들은 내면을 바꾸지 못하고 우리를 무한하게 갈망하게 만든다. " I wish to set you free " 내 소원은 네가 자유로워지는 거야..
비디오 게임 안에서는 자유롭게 죄를 저질러도 상관없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엄청난 자유가 있을 뿐이다. 모든 욕망을 충족시킨 뒤에는 어떤일이 벌어질까? 재미가 없어진 나머지 가장 어려운 것을 무시하며 함부로 빠르게 들어가 자살하거나 다른 것을 하고싶어 게임을 종료한다. 마치 그 게임을 정복한 것마냥 오만한 마음과 함께 게임을 종료한다. 모든 게임의 결말은 자살이며 세상의 붕괴이다. 자유로울 수록 빠르게 자살에 다가간다. 자살률 1위인 우리나라는 그만큼 자유로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임을 너무나도 잘하는 나라라서 아무런 고통도 품지못하고 손쉽게 자유에 다가선다. 고통과 느림에 가까운 문화나 격식, 예절없이 순식간에 배를 불리기위해서만 노력하는 졸부들처럼 모든 것을 탐식하고 빠르게 컨텐츠를 소비해나간다...
개입하지 않아도 아무 생각하지 않아도 아무런 강제적 자극 없이도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것 같지 않은데도 마음속에 차오르면 한다. 착하고 나쁜 것도 구별할 필요가 없다. 마음속에 차올랐다면, 한다. 충분히 휴식했고, 충분히 오랬동안 하지 않았고 충분히 필요한 것. 주변에 자극이 없었는데도 자연스럽게 잉태되는 것. 어쩌면 그게 창조일지도 모른다. 자연스러운 행동들이 모두 신의 명령들이다. 말이되지 않는 상황에서 행동하게 되는 의외성이 진짜 자기자신이다. 시키지 않았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하지 않는데도 하게되는 것이 진짜다. 차오르지도 않았는데 남들이 하기에 하게되거나 중독에 빠져 강제적으로 하거나 하는 것들은 모두 가짜다.
레이첼 의 재능 : A - 100 / B - 20 / C - 10 / D - 3 / E - 5 본스 의 재능 : A - 2 / B - 5 / C - 2 / D - 20 / E - 3 이런식으로 재능이 분포한다고 생각해보자. 본스는 레이첼에 비해서 가진것도 없고 재능도 없다. 그나마 나은 것은 D의 재능이 20정도로 '자기가 가진 재능 중 가장 큰 재능' 이다. 본스는 세상에 필요없는 인간일까? 그렇지 않다. 본스는 레이첼보다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다. 그것의 전제로는 '인간의 능력은 모두 동일'하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즉 가진 재능의 능력치가 고려대상이 아니라, 모든 인간은 동일한 양의 활동력이랄까 생명력이랄까 신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가진 재능이 작던 크던 같은 베이스, 같은 도화지에 그려넣기만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