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선 기본적으로 적에게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철저하게 막는다. 적의 정보를 캐내는 것은 엄청난 비용과 희생을 치르게 된다. 틀린 정보를 얻을 가능성도 크기에 너무나도 위험하다. 의도적으로 막아둔 것은 뚫어내기 힘든 것이 당연하다. 애초에 그것을 뚫어낼 정도의 힘을 가지지 않는 이상 적을 이기기가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항상 뻔한 결과들만 나오는 것이다. 이길만한 군대를 가진 쪽이 이긴다. 충분히 전력차이가 날 때만 승리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다. 세상은 철저하게 불확실로 점철되어있다.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보러가도 회사에 대한 정보없이 우선 노예가 되어야만하고 누가 사기를 치고 등을 쳐먹을지 어떠한 정보도 얻을 수 없다. 적군에 대한 정보가 없을 때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 대체 작은 것은 큰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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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은 무슨 소리일까. 박수칠 때 떠난 선수 치고 좋은 기억남는 선수가 없다. 박수 받을 정도면 제발 계속 해줬으면 한다. 어딜 도망가는가. 애초에 박수받을 자격없는 사람이 떠난다. 그렇다고 은퇴할 때까지 박수를 받는 게 말이 되는가. 그렇게 할 수 있으면 100살까지 하는 거지. 내가 그냥 생각할때 은퇴해야하는 타이밍은 기량이 부족해져서 못하니까 은퇴를 하기보다 나이가 들면서 코치나 감독으로서의 능력이 -> 기존의 코치나 감독의 능력보다 더 뛰어넘을 때 그 순간 바로 대체로 들어가면 될 것 같다. 무슨 나이가 정해져있고 하는게 웃긴다. 최대한 선수를 해야만한다는 것도 웃기는 소리다. 선수로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코치로서의 능력이 더뛰어나다는 것이 명백할 때 그냥 그때 은퇴하면 되는 게..
기쁘면 그냥 기쁜대로 기뻐하면 된다. 가만히 놔두면 된다. 감히 개입해서는 안된다. 슬픔은 가만히 놔두면 안된다. 충분히 생각해서 그것의 긍정적인 측면을 의도적으로 뇌에서 회로를 굴려 논리에서 논리로 이해하고 납득해야만 한다. 결과적으로는 기쁘면 기뻐하고, 슬퍼도 괜찮은, 슬퍼도 기쁜 상태가 되야만 한다. 슬픈 상황자체는 무시하도록 되어야 한다. 다만 생각을 통해 납득을 해서 '무시되야지'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 '무시하는'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구렁텅이에 빠진다.
객관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고 AI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독일과 세르비아의 축구경기를 볼 때 우리는 그 경기를 아주 객관적으로 불 수 있다. 양팀 누가 이기던 상관없이 좋은 플레이, 좋은 표정, 좋은 스토리만을 캐치해내게 된다. 그런 객관적인 상황 속에서는 무엇이 올바른 플레이인지 정확히 보일 수 있다. 공격수와 수비수의 행동 두가지를 모두 상호작용으로써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런것을 예술적이라고 말한다. 그 플레이 본연의 담백함 자체에서 오는 풍미를 즐기는 것이다. 그런 풍미들을 알아갈 때 독일과 세르비아의 경기던 말던 어떤 축구경기를 보더라도 그곳에서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적용할 수 있다. 그것은 곧 힘으로 곧바로 전환된다. 그런데 대한민국과 일본의 축구경기를 볼 땐 상황이..
1. 자녀가 힘이 없는 부분을 찾아 도움을 준다. 이 조건이 선행되지 않는 이상, 양심에 어긋나기 때문에 자녀를 놓칠 수가 있다. 자녀가 반발할 수 있고 떠나버릴 수 있다. 자녀가 아무리 생각해도 죄책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 판 위에서만 놀아야한다. 그렇기에 이 조건은 철저하게 먼저 선행되어야하므로 나의 능력과 한계와 상관없이 레버리지를 끌어오고 거짓말을 하던 외부의 힘을 이용하던 상관없이 모든 것을 올인하여 도움을 준다. 자녀가 그 과정을 싫어하던 말던 상관없이, 그 도움의 퀄리티와는 전혀 상관없이 우선 도움을 주었다는 남들에게 효과적으로 말할 수 있을만큼의 법적 증거가 중요하다. 여기서 나라는 변수는 배제한다. 어떻게든 빈틈은 있다. 부족한 부분은 누구에게나 있으므로 그부분을 잘 탐색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