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게임 안에서는 자유롭게 죄를 저질러도 상관없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엄청난 자유가 있을 뿐이다.
모든 욕망을 충족시킨 뒤에는 어떤일이 벌어질까?
재미가 없어진 나머지 가장 어려운 것을 무시하며 함부로 빠르게 들어가 자살하거나
다른 것을 하고싶어 게임을 종료한다.
마치 그 게임을 정복한 것마냥 오만한 마음과 함께 게임을 종료한다.
모든 게임의 결말은 자살이며 세상의 붕괴이다.
자유로울 수록 빠르게 자살에 다가간다.
자살률 1위인 우리나라는 그만큼 자유로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임을 너무나도 잘하는 나라라서 아무런 고통도 품지못하고 손쉽게 자유에 다가선다.
고통과 느림에 가까운 문화나 격식, 예절없이 순식간에 배를 불리기위해서만 노력하는 졸부들처럼 모든 것을 탐식하고 빠르게 컨텐츠를 소비해나간다.
검증된 공략집을 전국민에게 복사해 나눠주고 순식간에 최종보스를 깨버리도록 만들었다.
완벽해보이는 공략집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들은 빠르게 자유에 다가서서 모든 것을 빠르게 탐식한다.
하지만 그 공략집을 적용할 수 없는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모든 것이 끝난, 모든 것이 정해진 이곳에서는 마이너스에서 시작해 숨쉬기 위해서 헤엄쳐 올라가야만하는 상태가 된다. 주변에서 엄청난 자유를 누리면서 재밌는 게임을 하고 있으니, 시작부터 부족한 죄인으로 낙인 찍힌다.
그렇기에 고통을 철저히 사유하고 의미를 되짚기보다, 일제시대의 충격적인 피해의식의 고통에서 벗어나기위해 모든 명예와 격식을 벗어버리고, 우선 살기위해 발가벗겨진채 더럽고 추잡하게 발버둥치며 고통에서 벗어나려한다.
그렇기에 얻어진 것은 자유지만 결국에는 그 자유로 인해 자살을 해나간다.
발가벗겨진 문화 속에서 더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 재미있는 컨텐츠가 없다.
집을 원하면 집이 생기고, 맛있는 것을 원하면 맛있는것이 곧바로 생긴다.
더이상 어려움없이 모든 것을 순식간에 해결한다.
모든 것을 얻었기에 더이상의 질문이나 궁금증따위는 없다.
모두가 하나의 길로 짐승처럼 달려나와 최종 목적지의 문을 열어 재꼈기 때문에 그다음은 아무것도 없다.
커피숍에 앉아서 커피를 음미하고 같이 간사람과 대화를 나누면서 먹기보다, 커피를 3초안에 쪽 빨아먹어버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상태다.
더이상 먹을게 없기 때문에 앞에 앉은 상대방에 대한 궁금증도 없고, 대화도 없고, 그저 그 다음의 자유를 원한다. 그 다음 먹을게 필요하다.
그렇기에 돈이 필요하고, 계속해서 더 큰 것이 필요하다.
그런식으로 자유안에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살을 하고,
그 자유로운 사람들의 죽기전 마지막 자유로웠던 흔적들을 보고 열등감을 느낀 하수들은 보스몬스터에 함부러 자유롭게 덤비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저 생각만하면 순간이동이 되고 생각만하면 모든 욕망이 몇초안에 충족이 되어버리는 꿈속의 세상을 현실에 구현해놓았다.
돈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하였고 많은 사람들은 이미 이 만들어진 게임에서 플레이어로써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승자는 모든 것을 가지고, 패자는 모든 것을 잃는 게임이 형성이 되었다.
승자도 패자도 자살에 다가간다.
게임이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난다.
어떻게 살아야하나?
내가 내 힘을 통해 집을 구하고, 먹을 것을 구하고, 미스테리를 탐험하고 질문을 통해 답을 찾는 재밌는 게임은 거세되어버리고
모든 것이 제공되며, 모든 것이 자유롭도록 바뀌었다.
모든 것이 제공되었기에, 그 반작용으로 모든 것을 얻는 힘은 완벽하게 거세된 것이다.
세상이 꿈속 세상과 같은 게임으로 바뀐이상
우리가 해야할 일은 이 게임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놓고 버리는 히피운동은 게임 이전단계로 돌아가려는 시도지만, 그런 시도들은 고통도 더 적은, 미스테리도 더 적고 호기심도 더 발생하지 않는 과거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다.
대항해시대가 태평향을 건넜다면 히피운동은 작은 호수에서 머무르기로 결정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살아가고있는 이 게임은 엄청난 자유로 인해 자살에 다가가는 가장 무서운 일도 겪을 수 있지만, 그 만큼 더 미스테리하고 아름다운 것도 있는 곳이다. 히피운동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다.
게임이 시작되었으면 그 게임을 어떻게 즐길 것인가를 다시 생각해보자.
머리 속에 회로만 돌리면 모든 것이 곧장 실행되는 마법과 같은 세상은 꿈속 세상이다. 영적 세계이다.
공중을 날아다니고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그런 자유속에서는 영화 매트릭스에서 첫번째 세계처럼 곧장 붕괴될 수 밖에 없다.
현실에서 영적세계를 구성해놓은 지금 시대는 곧 붕괴될 것이고 다른 세계가 찾아오게 되어야만 한다.
이기는 게 아니라 플레이하는 게 중요해. 할리데이의 말 기억나? '열쇠는 보이지 않으며 미로의 한 가운데 어둠의 방에 있다' 게임에 이긴다고 찾는게 아니야. 어둠의 방을 헤매다가 우연히 찾는 거지. 방법만 알면 쉬워.
'어드벤처'는 우리도 해봤잖아. 아니, 우리는 이기려고했지. 숨겨진 방은 게임 끝에 있는게 아냐. 처음에 있는 숨겨진 픽셀을 찾아야지.
게임의 정답은 심연의 가운데 있다. 미로의 중간에 있으며 끝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기려고 해서는 이길 수 없는 것이 게임이다.
그 이유는 창작자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이긴다고해서 창작자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창작자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는 곧 자살에 가까워진다.
해야할 일은 오직 게임을 받아들이고, 창작자에게 감사를 느끼며 그 창작자들을 이해함으로써 나또한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내는 창작자가 되는 것이 해야할 일이다.
게임에서 이기는 것이 아닌 게임을 이어나가도록 만드는 것.
이기는 것이 아닌 창작과 창조가 목표이다.
디아블로3 출시 12시간만에 클리어하는 졸부들은 디아블로 3를 만들어낼 동기나 이유를 절대로 얻어낼 수 없다. 어린나이에 부를 가진 사람은 어떤 것도 만들어낼 동기를 가질 수 없다.
졸부들은 최상위권에 있는 것같아보이지만, 절대로 정점에 설 수 없다. 게임의 정점에는 언제나 게임을 즐기고 사랑한 창조자들과 영웅들이 있다.
디아블로3를 클리어한다고해서 디아블로3를 만들어내는 블리자드와 같은 돈을 벌 수 도 없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없으며 재미도 느낄 수 없다. 또한 디아블로 3를 만드는데 성공했다고해서 창조주의 기쁨에 다가설 수는 없다.
비디오 게임이 만들어진 이유는 현실이 너무나도 자유로운 허접한 게임처럼 대하도록 바뀌어가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나머지 기쁨을 작은 비디오게임 안에서라도 느낄 수 있게 만들어가고 있는 인류이다.
그런데 그 비디오게임에서조차 승리만을 원하는 것은 정말 찌질한 자살자들의 태도이다.
비디오 게임에서 얻은 즐기는 능력을 인생게임에서도 발휘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기는 것보다 궁금한 것.
자유보다 심연으로.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 있는 세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창조주가 나에게 잠시 빌려준 것 뿐이라는 것을 알고 원하지 않는 것.
공략집이 널려있다고하더라도 스스로 하는 것. 스스로 발견하는 것.
스스로 꿈을 확인하는 것.
자유에 다가간 그 것이 내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철저하게 알아야한다. 그래야만 내 능력을 찾고 만들어나갈 수 있다.
나는 누군가 만들어놓은 게임 안에 있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내 능력이 아니다.
그렇기에 심연으로 간다.
맛있고 즐거운 부분만 떼어서 먹는 것이 아닌
이 맛있고 즐거운 것을 만들어낸 창조주의 고통은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하기에 그 혼돈 속으로 들어간다.
더 큰 것을 노린다.
원하는 것이 곧장 실행되는 마법보다도 더 신비로운 것을 찾아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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