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겪도록 되어있다. 문제라는 것은 항상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나만의 고통스러운 문제'라는 특수한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누구도 풀지못한 최첨단 수학문제같은 것은 애초에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말장난일지도 모른다. 혹은 분할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하나를 과거에 그것을 풀어본 사람이 분명히 있을지도 모른다. 최전방의 신개념같은 것들을 상대하는 사람은 고려할 필요가 없다. 그사람들은 그것을 문제로 보고 푸는 것이 아닐 것이다. 모든 문제를 풀어낸 사람이 거기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남들에게 문제를 전가한 뒤 그곳에 간 사람들은 고꾸라지고, 진짜 자기문제를 풀어내서 간 사람은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그러니 지금 내가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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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공통점이 있어야 사람이던 동물이던 사물이던 소통을 하기 시작한다. 지역이 같거나, 같은 것을 배우는 중이거나, 같은 직장에 다니거나 하는 것들은 서로 소통을 쉽게하는 통로가 미리 생성되어 있기에 바로바로 소통할 가능성이 생긴다. 하지만 이미 공통점이 있는 상태에서의 소통은 약한 소통이다. 가장 큰 관점에서 그저 '한국인'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소통을 하는 것은 매우 비좁고 약한 연결성을 가진다. 하지만 매우 사소하고 은밀한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공통점을 가진 사람은 오히려 더 강하고 넓은 연결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런 것은 희소할 수 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라도 배려하거나 이해하려고 무진장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접점이 없을 수록 ( 접점이 없어 보일정도로 ) 오히려 접점을 만들게 되기 ..
꿈은 이루어지고 불가능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은 '게임 안에서' 일 때만 성립한다. '꼴통일수록 도쿄대에 가라' 라는 명대사를 남긴 일드 [드래곤 사쿠라]에서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꼴통이지만 고등학생이라는 게임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김연경선수가 키도 작고 후보선수의 후보역할 밖에 하지 못했던 학창시절에도 배구를 포기하지 않고 수비에 집중하다보니 수비와 공격 모두 잘하는 세계최고의 선수가 된 것도 '배구선수' 라는 게임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쉽게 모든 불가능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 안이 아닌 것은 불가능이라는 개념조차 아닌 '없을 무' 이다. 어떤 곳에선 모든 불가능이 가능하다고 믿기에 함부로 영역을 침범하고 새롭게 어떤 것을 배워보려는 무의미한 시도들이..
이중슬릿 실험에서 발견된 빛의 이중성처럼 인간에게도 입자성과 파동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으므로 나의 관점에 의해 오랫동안 바뀌지않았던 한 쪽 측면의 모습의 입자성만이 관측되기 마련이다. 나를 관찰하지 않는 것 하나만으로 나의 뒷면인 파동성이 드러날 수 있다. 나에 대한 에고적인 생각과 집착들이 나를 편향된 관점으로 계속해서 바라보도록 만들었기에 그 이면의 힘을 절대로 드러낼 수가 없었다. 나에 대한 생각을 놔버리고 시선을 다른 곳에 옮긴다면 나는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던 그 이면의 힘을 드러낼 수 있다. 사실상 동시에 가지고 있었던 그부분이 드러날 수 있다.
자연과의 공생은 언젠가 달성해야만하는 위대한 업적이자 지상목표이다. 하지만 자연을 보호하지 않았다고해서 범죄자가 되야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자연은 어쩌면 인간이 아직 약할 때 인간을 잔인하게 지배해온 가해자일 수도 있다. 너무나도 잔인하고 마음없는 자연을 다루고 자르고 구별함을 통해서 너무나도 순하고 친근하게 만들어져 있는 결과를 보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굴복한 자연을 함부러 대하는 것도 천하고 허접한 일이지만, 지금의 자연만을 보고 자연보호를 당연한 것으로 취급하여 범죄자로 만드는 것은 과하게 편향된 생각이다. 여기서 자연은 과거에 잔인하게 지배하던 민족, 욕망덩어리인 부모 등 많은 것들로 대치가능하다.
사고로인해 바위에 눌려있던 사람을 구출하기 위해 한번에 바위를 들어올려버리면 압력차로 인해 오히려 사망한다는 원리처럼 결핍이란 당연히 당연히 당연히 채워져야만 하는 것이지만 절대로 한방에 한번에 채워져서는 안된다. 강렬하게 원할 수록 절대로 달성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압력차로 인해 사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신이 우리를 죽지 않게 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장치일 뿐이지 절대로 저주가 아니다. 결핍이란 조금씩 채워져야만한다. 큰 결핍이 있을 수록 더 조금씩 채워져야한다. 돈에 대한 큰 결핍이 있는 사람은 오히려 지금 당장 1만원이라도 버는 일을 하는 것이 더 옳다. 결핍이 클수록 당연히 지금 당장 조금이라도 채워져야하는 것이 이치 아닌가? 결핍을 느끼고 상처가 많다고 하면서 한방을 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