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고 AI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독일과 세르비아의 축구경기를 볼 때 우리는 그 경기를 아주 객관적으로 불 수 있다.

양팀 누가 이기던 상관없이 좋은 플레이, 좋은 표정, 좋은 스토리만을 캐치해내게 된다.

그런 객관적인 상황 속에서는 무엇이 올바른 플레이인지 정확히 보일 수 있다. 

공격수와 수비수의 행동 두가지를 모두 상호작용으로써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런것을 예술적이라고 말한다.

그 플레이 본연의 담백함 자체에서 오는 풍미를 즐기는 것이다.

그런 풍미들을 알아갈 때 독일과 세르비아의 경기던 말던 어떤 축구경기를 보더라도 그곳에서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적용할 수 있다.

그것은 곧 힘으로 곧바로 전환된다.

 

그런데 대한민국과 일본의 축구경기를 볼 땐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잘하면 국빈이고 못하면 전범이 된다.

상대 수비수와 우리 공격수의 상호관계를 보지 못하고 그저 공격수가 골을 넣으면 잘한 것, 골을 못넣으면 전범으로 몰린다.

상대 수비수가 잘해서 -> 우리 공격수가 잘못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은 뇌에서 배제된다.

주관성의 작용은 그런 방식으로 모든 행위가 내면화되어 시야가 좁아져 오직 우리 공격수의 움직임만 보인다.

마치 게임처럼 내가 움직이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선수를 탓하거나 과하게 우쭐대는 감정의 파도에서 파도타기를 한다.

예능적 삶이다. 낄낄대고 피식대면서 웃겨주기를 바라는 사소한 삶이다.

나의 재미는 오직 한일전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에 한 2년에 한번, 그것도 우리나라 이길때만 기쁨을 느끼고 그 이외에 삶에서는 절망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생활을 보내게 된다. 

 

 

객관적일 수 있는 곳으로 가자.

객관적인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재미를 느끼거나 아름다움을 느끼면 바로 거기다.

아무런 연고도 아무런 이야기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곳에 재미를 느끼면 바로 거기다.

그런 곳에선 양쪽 모두를 볼 수있는 시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라이프코리아트위터 공유하기
  • shared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