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생각이 확실히 공유되지 않은 다른 사람은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보를 공유하고 진심인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설득은 서로 거리가 떨어져있기 때문에 분명히 필요하다. 담당하는 지역이 다르고 집중하고 있는 시선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가 먼저 알게되는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나자신을 설득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에고라는 것은 나의 몸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렇기에 내가 또 다치고 상처받을까봐 모든 마음의 문을 닫는다. 그것은 나를 죽이려고하는게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다. 전체를 봤을 때 그것은 조금은 미련하고 아기같은 행동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주어진 정보가 없을 때 그 방법은 매우 효과적이며 필수적이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 정답은 아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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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과 감정을 버리고 우연을 따라간다. 우연은 원인과 결과가 없는 무목적성에 의한 일이라지만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을 뿐 분명한 무언가가 있다. 주사위 굴리기로 인해 우연이 벌어진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이 한계가 있을 뿐이다. 내 생각을 가지지 않는 것, 무소유. 내가 계획하지 않고 계획된 우연을 따라가는 것이 필요하다. 한 번도 진로를 바꾸지 않은 삶은 자기 생각으로 삶을 이끌어온 에고이다. 인간은 변화한다. 변화는 내 생각이 내 생각이 아닐 때만 가능한 일이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란 없다. 왜냐하면 이미 자유의지를 통해 선택을 해서 여기에 와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결과물이다. 이미 선택을 했는데 들어와서 다시 '자유'로워지기 위한다는 것들은 모두 사기다. 아무리 어려운 것과 힘든 것이 내 인생에 있어도 그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다. 그것의 반대 작용에 의한 결과물을 맛보고 싶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유란 나를 버리고 죽일 수 있는 자유이다. 자살할 수 있는 자유가 있을 뿐이다. 정답을 회피할 자유만 있는 것이다. 위에 그림에 있는 검은 것들의 이름이 바로 자유이다. 자유롭지 않은가? 사다리에 있는게 아니라 아무대서나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원하는대로 끌어내릴 수 있고 활도 쏠 수 있다. 정말 자유로운 곳이다. 내 몸과 태어난 곳 등 ..
니가 뭐라도 되는줄 알아? 라는 말은 물음표가 붙은 질문이라고 착각할 수 있지만, 이 문장의 본질은 공격이다.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는 욕과 같다. 이것을 질문이라고 착각해 그것에 대답을 하기위해 머릿속을 굴리는 일은 해선 안된다. 똑같이 욕을 날리던지 무시하던지 둘 중 하나가 답이다. 머리 속에 떠오르는 모든 질문에 대답해야하는게 아니다. 모든 것에 납득이 가야하는 것도 아니다. 올바른 질문에만 납득이 가야한다. 무시해야할 것이 있다. 진짜로 있다. 정말로 있다. 보통 욕과 쓰레기같은 질문은 1년을 생각해도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만 되면 매번 같은 질문을 날린다. 지금 상황에 알맞게 드는 호기심은 자연스럽고 알고있는 무언가이기에 질문의 형태를 띄게 된다. 올바른 질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