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디자인이나 사업은 고통이나 불편함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한다.
100% 동의한다. 하지만 불편함에도 종류가 있고 다른 것들이 있어보여 조금 생각해보았다.
UI/UX 스타트업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다.
새로 제작되는 앱의 사용자 경험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하여 불편한 점을 찾고 컨설팅 해주는 작업이었다.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앱을 사용해보라고하면서 어떤 것이 불편한지, 개선되어야하는게 무엇인지 조사한다.
그럼 사용자들은 각자 불편한 점을 찾아서 언급한다. 이건 불편하고 디자인이 별로고 시스템이 느리고...
가지각색의 불편함의 종류는 수없이 많다. 어느 특정 불편함의 카테고리로 쏠리지도 않고 그냥 여기저기 모든 것이 '불편하다'.
물론 새로운 시각을 가진 테스터유저의 기발한 발견도 있을 수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 사람이라면 그냥 알 수 있는 불편함들이다.
그런 것들은 만드는 사람이 알아서 고쳐야하는 인성에 가까운 문제이다. 사용자들을 생각하는 마음의 문제이다.
그런 것들이 아니더라도 모든 불편함을 고칠 순 없다. 언제나 고려야해야 하는 [시간과 비용]이 있기 때문이다. 불편함을 해결하는 것보다 먼저 만들어서 제공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며 필요한 행동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제품에는 타겟이 있다.
특정 대상을 위해 만들고 에너지를 집중시켜야하는데, 10대 청소년이 날카로운 감각으로 이것저것 다해보고 이거불편 저거불편하기 시작하면 답이없다. 어떤 것에 에너지를 조금 주고, 어떤 것에 에너지를 많이 줄지를 선택해야만 하는데 그저 가장 많은 사람이 불편한 것을 바꾸려고하는 시도는 디자인적 개념이나 사업가적 마인드가 완전히 배제된 통계학자들이나 할 일이다.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불편해하는 것을 고친다 하더라도
또 남아있는 불편함 중 하나가 대두되어 '가장 불편한 것'이 된다. 무한한 순환이다.
UI/UX는 제대로 인식하지 않으면 빛 좋은 개살구다.
사용자들의 비위는 끝에 끝까지 맞춰도 답이 없다.
다시 생각해보니 UX라는 개념은 바로 이것이다.
밭에 나가서 감자를 캐는 작업이 있다. 유저는 감자를 캐는 것이 목표이다.
그런데 감자를 한 3뿌리 정도 뽑은 순간, 허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머리는 어질어질하고 손목은 아프다.
UX는 마치 이 농부의 허리나 손목까지 해결하려고하는 작업이다. 농부는 따뜻한 집에서 가만히 앉아있어야 하고 강인공지능 로봇이 직접 감자를 캐기 전까지 이 '불편함'은 해결할 수 없다. 그때부터는 다시 집에 앉아있는 것도 불편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다. 결론은 해결하지 않아야하는 불편함이 있다는 것이다. 감수해야하는 불편함이 있다.
우리가 해야하는 의무가 있다. 버텨야만하면서도 유익한 결과를 직접적으로 낼 수 있는 불편함이 있다.
보람을 만들어내고 결과를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당위성을 주는 무언가가 있다.
식당에서의 사용자 경험이 아무리 불편해도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는 것 까지 불편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는 것은 불편할 수 있지만 경험 중에 포함되어야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 자체가 맛이고 그 불편함 자체로 있어도 괜찮은 것이다.
나는 이 당연한 작업증명의 과정까지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을 앞으로 '때쓰기' 라고 정의해야겠다.
어린아이들이 당연히 해야하는 걸 하기 싫다고 때쓰는 것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때쓰기이고 어디서부터 진짜로 줄여야하고 해결해야하는 고통이자 불편함일까?
그 경계선을 명확히 하고 해결할 목표를 삼아야만한다.
애매한 단어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바로 인간적이지 못한 불편함은 모두 해결해야하는 불편함이다.
그 기준은 당연히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가장 보편되고 가장 대중적이고 모든사람이 동의할만한 그 기준을 캐치해내는 것이 결국 디자이너나 사업가의 게임이다.
한마디로 진짜 고통이 무엇인가? 진짜 해결해야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것이다.
기도
인간적이지 못한 고통에 대한 생각을 조금 해봐야겠다.
예전부터 나는 '기도'라는게 무엇인지 정말 궁금했다.
하느님이나 부처님에게 기도드린다는 건 언제 해야하는 행위일까?
왜 사람들은 기도를 드릴까? 대체 저게 무슨 효과가 있길래 하는건가 라는 의심도 많이 들었다.
만약 기도가 진짜라면 모든 것을 이루어 줄텐데, 그럼 내가 해야하는 건 아무것도 없고 빌기만 하면 되는건가?
https://www.youtube.com/watch?v=o3KKQc5EqiM
기도에 대한 의문은 애니메이션의 한장면에서 풀 수 있었다.
여주인공의 어머니는 딸을 잡히지 않기위해 최선을 다한 뒤 딸을 대신해 괴물들에게 잡히게 된다.
여주인공은 말을 타고 도망가고 있지만 따라가는 놈들의 속도가 너무나 빠르다.. 벌써 눈물이 날 것 같다.
나무 함정이 떨어지고 놈들이 날카로운 창과 도끼를 던져대고 있다. 딸은 가까스로 피하고 있다. 무섭고 두렵다.
이상황에서 어머니로써 딸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 어머니는 The Prayer 라는 노래를 하기 시작한다.
I pray you'll be my eyes and watch her where she goes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딸의 눈이 되어주기를 어디를 가든지 살펴주시길
And help her to be wise
판단이 어려울 때 현명해지도록 도우소서.
Help me to let go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Every mother's prayer
모든 엄마의 기도는
Every child knows
모든 아이들이 압니다.
Lead her to a place Guide her with your grace
To a place where she'll be safe
당신의 은총으로 그녀를 이끄시어 안식처로 인도하소서
기도는 놈들에게 붙잡힌 어머니가 딸을 바라보면서 할 수 있는 것.
즉 두손 두발 모든 것을 다 사용할 수 없고 단 하나의 희망도 남지 않았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컨텐츠, 마지막 수단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때' 할 수 있는 마지막 최후의 보루.
기도는 하나님에게 때를 쓰거나 협박하는 것이 아니었고 신도들의 충성을 맹세하기 위한 행위도 아니었다.
기도가 지금까지 인류에게 있어왔던 것은 바로 마지막 마음을 사용할 수 있는 진정으로 약한자들의 무기였기 때문이다.
기도가 있기에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어떤 상황에서도 내 의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 딸의 안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
기도를 해야하는 상황은 인간적이지 못하다. 그렇기에 인간이고자 하기 위해 기도를 한다.
기도에 실질적 능력은 없다. 어떠한 결과도 파생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과 <-> 그 다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을 연결해준다.
즉 포기하지 않게 하는 정신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 정신적 기능을 통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 불가능을 가능하게도 만든다.
우리가 바꿔야할 디자인은 바로 이 기도를 해야만하는 상황이다.
인간적이지 못하고 한계가 느껴지는 바로 그 상황. 그 기도를 해야만하는 불편함이 진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이고 진짜 고통이다.
기도는 누가 와서 보살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설득이다.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통해 그러한 상황을 타파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기도의 권능이자 현실에서의 신의 재림이다.
새로운 창조물
UX(User Experience)가 앞서 말했듯이 때쓰는 어린아이 달래는 과보호 어머니의 역할이라고한다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딸의 안전을 바라는 적들에게 붙잡힌 어머니의 역할이다.
부모로써 아이에게 해야할 일은 이미 정해져있다.
딸의 공간에 침범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아닌, 이것저것 다 맞춰주려고 에너지를 올인하는 것이 아닌
딸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먼저 앞서서 길을 열어주는 것에 에너지를 쏟는 것.
이미 만들어진 제품에서의 불편함을 찾는게 아니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제품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이다.
새로운 공상과학적인 아이템을 만들자는게 아니라, 같은 선풍기라는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기존의 것들과는 전혀다른 생각이 들어가는게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과거의 불편함은 내려놓아도 된다.
우리내 아버지들이 일부러 힘들게 사시는 것 같이 보여도 괜찮은 것이다. 아버지들은 그렇게 살아오셨다.
아버지들이 페이스북을 하고 유튜브를 맨날보며 궁금한 것을 바로바로 검색해서 찾지 않아도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노인 세대를 위한 스마트폰을 만들 필요가 전혀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우리가 사용하는 바로 그 스마트폰을 사용하실 것이다. 물론 사용하는 것이 우리보다 더 불편하고 어렵겠지만 말이다. 더 많은 기능을 활용하지 못하고 더 빠르게 활용하지 못하시겠지만 원한다면 분명 스마트폰을 사용하실 것이다.
기성세대의 기득권과 차별, 지역주의, 학력, 경력, 스펙을 따지는 시선, 계급주의와 같은 우리를 힘들게하고 어렵게하는 그것들은 있는 그대로 괜찮다. 굳이 해결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미 완성된 것을 잡아 뜯어 고칠 수는 없다. 아이처럼 때 쓸 필요는 없다.
우리가 해야할 일, 만들어야 할 제품은 기도해야만하는 진짜 고통을 찾아 해결해 앞선 것들을 뛰어넘는 힘을 가진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모든 혁신적인 영웅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내 과거의 고통과 실수는 있는 그대로 괜찮다.
시간여행을 통해 어린아이로 돌아가 그 고통을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나에게 있는 단점이나 약점도 있는 그대로 괜찮은 것이다. 이미 결정된 것이고 뜯어 고칠 수 없는 것이다.
고통을 그대로 가져가면서, 손실을 가져가면서도 맞으면서도 줄타기하듯 그대로 적을 상대하는 멋진 프로선수들 처럼.
그 다음은 무엇이냐만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문제에 대한 해결은 불편함에 대한 개인적인 열등감과 자기연민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도움을 주고자 하는 연민과 적극적인 분노로부터 시작해야한다.
과거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곳으로만 나아가는게 아니라,
과거의 아픔은 기억만하고 -> 새로운 곳으로 나아감으로써
모든 과거들까지 품어 좋아할 만한 넓고 큰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스티브잡스가 조금 웃으며 말했던 것처럼 사용자들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내가 다른사람보다 먼저 알기에, 더 큰 분노를 느끼기에 그누구도 아닌 내가 그것을 먼저 나서서 해결하는 것이다.
그곳은 아무도 없는 곳이다. 새로운 곳이다.
그렇기에 진정한 사용자 경험(UX)을 위하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에게 무엇이 불편한지 물어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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