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언제부터 전문가가 될 수 있었을까?

언제 부터 자기 영역이 생기고 개성이 생기고 자신만의 직업이 생겼을까?

분업과 전문화에 관한 예시는 애덤 스미스가 말한 바늘 이야기가 가장 대표적이다.

 

한 명의 노동자가 혼자서 바늘을 생산할 경우, 하루에 한 개의 바늘을 생산할 수 있다. 반면 바늘 생산 과정을 18개로 구별하고, 이 구별된 제작과정에 10명의 노동자가 참여할 경우, 하루 바늘 생산량은 4800개로 증가하게 된다. 1명 대 1개 바늘에서 10명 대 4800개 바늘이라는 도식에서 분업을 통한 노동 생산성 증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때문에 노동분업은 근대 자본주의 탄생의 핵심 배경으로 설명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장인의 세계에서 분업화된 프로의 세계로 넘어가면서 가장 중요했던 가치는 '많은 사람들이 포함' 되었다는 것이다.

한명의 장인에게 의존하지 않음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작업공정에 포함되어 돈을 벌고 사람들에게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각각 전문화된 길을 걸어가며 상대방이 못하는 영역을 만들어간다.

과거 황제나 신이 숭배되던 시절에는 한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기에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점점 분업화되고 프로화 되면서 서로가 필요해질 수 밖에 없는 세상이 오게 된다. 점점더 복잡해지고 서로 수많은 관계성이 생겨난다. 그 다양성 속에서는 한명이 하던 것보다 훨씬더 어마어마한 시너지와 창조력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아틀리에' 의 한 장면

 

'얼마줄거냐니까? 공짜로는 안해. 난 프로니까 '

 

드라마 '아틀리에' 에서 주인공은 회사의 자금이 부족하기 때문에 패션쇼 무대연출을 직접 하고자 한다. 하지만 너무 복잡하고 많은 영역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때 바에서 만나오던 사람이 마침 무대 연출가여서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

 

도움이란 무엇일까? 횡단보도를 건너시는 할머니 손을 잡아주는 것만이 도움일까? 사회복지나 소방사, 경찰같은 직업이나 사업가가 돈을 기부하는 것만이 도움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돈을 받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진정한 도움이다. 전문성을 가지고 상대방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영리적, 공공적, 국가적인 도움은 최소한의 무언가이다. 사람들에게 도움받지 못하고 관계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정말 마지막 최후의 보루로써의 울타리 일 뿐이다. 관계하지 못하기 때문에 도움이 아니다. 가족이나 형제같은 관계에 머무른다면 그 어떤 창조성도 발휘하지 못한다.

 


 

프로에 대한 대우

 

 

공부하려고 무대연출가가 연출했던 무대를 많이 봤다는 주인공에게 무대연출가는 이렇게 말한다.

 

"공부 같은 소리하고 있네. 어떻게 할거야?"

 

무대 연출가는 차갑게 말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회사사정으로 인해 제안을 거절하려고한다.

 

주인공 : '더는 남에게 의존할 수 없어서..'

무대연출가 : ' 바보같은 소리 하고 있네 '

'내가 참을 수 없는 건 아마추어 주제에 돈도 한 푼 들이지 않고 압도적인 규모로 사람들을 뭉클하게 만들고 매력 넘치는 세련된 쇼를 만든다고? 그것도 혼자서? 하..'

'그걸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그 아마추어의 생각을 참을 수 없다는 거야. 이게 무슨 학교 축제야?'

'남의 일을 무시하지마!'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은 기술을 갖춘 전문가 밖에 할 수 없어.'

'하고싶으면 근성이 아니라 돈을 내. 금액이라면 맞춰 줄테니까' 

 

 

무대 연출가는 공부하는 아마추어를 차갑게 무시한다.

도움을 받기 위해 배우지 않아야한다. 도움만 받겠다는 건 아니다. 이미 내가 생각을 하던 하지 않던 나에게 쌓여온 것들 중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이 바로 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 영역만을 나의 전문영역으로 하고 남을 도와야한다. 그리고 남에게 도움을 받아야한다.

그렇게 관계를 맺으면서 창조성이 생기는 것이다.

배운다는건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이고 돈을 내지 않는다는 건 혼자서 살아가겠다는 주제넘은 행동이다.

 

 

대체 어떻게 수없이 많은 종목과 과목과 분야와 전문영역이 있는데 그 중에 작은 영역만을 담당할 수 있을까?

한 개인은 어떻게 한없이 작은 영역을 선택하고 전문화 시킬 수 있을까?

그것은 나뿐만아니라 다른사람도 존재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시선이 나 하나에서 벗어나 다른사람을 바라볼줄 알 때 오히려 내가 할일이 무엇인지 확신을 가지게 된다.

아직 부족하고 결핍된 어떤 영역에서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때 무한한 별들중 하나를 선택 할 수 있는 것이다.

도움이 된다는 것의 뜻 자체가 아직 다른사람이 하지않고 있는 부재의 영역, 즉 내가 했을 때 나만의 고유한 영역으로 바뀌는 것이다.

비록 내가 정말 작고 부분적인 일이지만 다른사람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함으로써 세상에 다양성을 늘릴 수 있다.

 

내가 못하는 것은 다른사람에게 맡긴다. 믿고 맡긴다.

내가 해야하는 것은 내가 한다. 다른사람에게 도움을 준다.

 

아무리 작은 영역이고 쓸모없어보이는 영역일지라도, 수없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다면 그 영역은 계속해서 늘어나 한계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를 인정할 수 있다. 세상을 인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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