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호

 

내가 말하는 하늘의 시대란 꼭 하드웨어로 성취되는 산업사회의 찌꺼기 같은 이야기가 아니야. , 우리가 실패한 그 나로호 말이다, 실패한 것은 로켓이 아니야. 생명 자본주의 시대에는 로켓이 아니라 그 로켓에다 붙이는 이름이 오히려 더 중요한 거야. 그런데 우리는 무슨 이름을 달았어? 나로호? 그게 아이들에게 꿈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이름이야? 그 로켓 쏘아올린 동네 이름이라고. 거기가 어떤 곳인지도 몰라. 남의 기술 빌리지 않아도, 돈 들이지 않아도 로켓 이름쯤이야 우리 힘으로 할 수 있었잖아.”
인류가 처음 쏘아올린 인공위성의 이름은 스푸트니크호야. 러시아말로 길손’, 그러니까 여행의 동행자라는 뜻이지. 무라카미 하루키는 [스푸트니크의 연인]이라는 소설까지 썼어. 거기 도전한 미국의 위성 이름은 또 어떻고. ‘익스플로러(탐험가) 파이어니어(선구자)‘ 그리고 그리스 신화의 놀라운 주인공 이름들, 타이타닉, 아폴로..... 나로호라는 이름엔 그런 것이 없어. 시도, 인문학도, 신화도 스토리텔링이란 게 없어. 과학 기술이 아니라 이것이 바로 우리의 한계거든.“ - 이어령 선생님 <지의 최전선>

 

 

과학기술 그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람들이 과학기술을 어떻게 대하고 있느냐?

얼마나 마음을 담았는가? 얼마나 간절한가?

이름만 보고도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수준을 단 한치의 오차도 없이 알 수 있다.

정말로 단 한치의 오차도 없이 철학적, 인문학적 레벨은 과학기술의 레벨과 동일하다. 동일 선상의 레벨이다.

나로호가 발사를 실패해온 이유는 과학기술의 부족도 운도 지리적 조건도 아니다. 

그저 레벨낮고 수준낮은 허접함이다.

 

마치 판타지소설에 나오는 마법진처럼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을 로켓이라는 물체에 모을 수 있는가? 용량이 얼마인가?

누가 얼마나 응원할 수 있는 가치인가? 또 누가 얼마나 기여하고 열정을 바칠 수 있는 대상인가?

마음을 얻는것이 바로 생명자본이자 인터페이스이다.

다음 시대는 오로지 이것만을 보고도 성공과 실패를 파악할 수 있는 시대다.

아니 사실은 이미 가장 중요한 곳에 숨어있어왔던 그것이 드러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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