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참아야만 높은 성과를 얻을까?
위험해야만 더 많은 성과를 얻을까?
하이 리스크만이 하이 리턴을 얻을 수 있을까?
힘든 노동을 해서 번 돈만이 진짜 돈일까?
아프니까 청춘인걸까?
그렇지 않다. 단언컨데 그렇지 않다.
이런말들은 자극을 원하는 중독자들의 증상에 불과하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인간은 아파선 안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말은 당연한듯 아파야만 한다는 팔짱끼고 위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누구나 아프지않기위해, 건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와서 달관한듯 말하는 이 책의 제목에 멘탈이 나간다.
고통은 당할 필요가 없다. 참아내야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초기세팅으로 고통을 받도록 구성되어 있을 뿐이다. 그것을 아직 벗어나지 못한 사람만이 고통을 받고 있을 뿐이다.
고통은 통과의례나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따위 같은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겪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고 누구라도 중첩되어 곂쳐져있기에 홀로 떨어져 있지 않다.
나이좀 먹었다고 그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게 아니라 계속해서 최적화하고 계속해서 줄여나가는 것을 할 뿐이다.
위대한 사람은 오히려 고통을 계속 흡수해 더커져만 갈 뿐이다. 바둑 고수들이 배우면 배울수록 더 많은 것을 고려해야하고 더 복잡하고 방대함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어딜 감히 모든 것에서 벗어난 어른인척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청춘이 아플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청춘이기에 아파야하는 것은 아님을 정확히 알자.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하이 리스크 - 하이 리턴이 아니라 그냥 영혼을 등가교환으로 떼어주는 것에 불과하다.
나한테 있는 20을 줬으니 20을 받는 지극히 장사치같은 마인드로 인생을 대할 때 가능한 말들이다.
인간은 죄를 짊어지거나 고통을 당하기 위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
불안하거나 고통을 참는다고해서 보상을 받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정상상태일 때 최고의 상태인 것이 인간이다.
가만히 있을때 최상의 상태라는 것이다.
리스크가 없기만하면 인간은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이미 가지고 있다.
이미 모든 소중한 것을 가지고 있다.
추구해야할 것은 위험하냐, 위험하지 않냐가 아니다.
고통스럽냐, 고통스럽지 않냐가 아니다.
당연하게 고통스럽게 태어난 모든 인간들이 가야할 길은 고통받지 않는 곳이다.
태풍의 눈으로 들어가는 것이 목표이다.
가장 위험해 보이는 곳이 가장 안전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 상식과 관습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최고의 성과와 리턴을 얻을 뿐이다.
위험하기에 최고의 성과를 얻는게 아니라, 위험해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안전한 곳에 인간의 자리가 있을 뿐이다.
'위험해서' 가 전제되지 않아야한다.
위험한 곳 안에 안전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갈 수 있다.
위험하기 때문에 그 감정의 자극만으로 자위하며 진보주의자들만 설득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보수주의자들도 설득할 수 있을 만큼 그 태풍안에 안정함이 있다는 확신을 전해줄 수 있어야한다.
승리할 수 있게 만들어서 승리해야한다.
쉬움과 안전이 전제되는 곳에서 인간은 신이 날 수 있다.
지구도 기울어져있듯이 모든 것은 비대칭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해야만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고통을 받고 참아야만 대칭적으로 좋은 것을 얻는게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얻을 수가 있다.
노력해야만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을 수가 있다. 몸을 그냥 가지고 태어난 것과 같이 말이다.
고통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고통 덕분에 좋은 것을 알게 되어 가는 과정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고통 그자체가 좋은 것은 아니다. 고통 그자체가 좋은 것을 직접 파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본 나라는 인간이 그 고통과 반대되는, 그 고통이 없는 곳을 알게되어 스스로 두발로 움직여 감으로써 좋은 것을 얻을 뿐인 것이다.
나의 행동만이 큰 성과와 리턴을 만든다.
그 행동은 위험과 고통에 기반하지 않는다.
신남과 즐거움과 여유에 기반한다.
리스크를 없애기만하면 그것을 얻을 수 있다.
리스크를 벗어나려고 하는 그 시도는 아무리 위험해보여도 가장 안전하고 가장 쉽고 편한 길일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받은 고통만이 나의 고통이다. 그것은 내 범주 바깥의 일이며 강제적인 것이었으므로 그것에 더이상 다가가지 않도록,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그 고통으로 인해 역으로 신나고 즐겁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만 하면 된다.
고통을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리스크를 짊어지고 책임을 짊어질 필요가 없다. 고통은 인생의 초기세팅이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내가 선택하지 않아도 고통은 이미 무한하게 생성되어있다. 그걸 더 늘릴 필요가 전혀 없다.
나는 나자신을 고통에 빠뜨리지 않기로 결심해야만한다.
자극적이고 멋있어보이는 리스크테이킹이 인생 목적이 아니다.
스스로를 구해내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다.
같은 논리구조에서 더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있다.
리스크를 지지 않을 수록, 더 큰 성과를 얻는다는 말은 결과적으로 산전수전 다겪은 베테랑이 최고의 실력을 가지는 것이 아닌
아무것도 없는 순수한 아이같은 사람이 오히려 더 큰 성과를 얻는다는 뜻과 같다.
리스크를 짊어지고 고통의 경험을 늘려온 '어른'들은 약하다.
점점 더 약해져가고 프래질해져간다.
길거리에서 인종차별을 당하거나 시비가 걸렸을 때
어른들은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멋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싸움으로써 사람은 큰 데미지를 얻는다. 약간의 데미지에서 끝날 수 있는 일을 더 충격적이고 더 진폭이 큰 변동성으로 휘말려 넣는다.
기존 상식의 논리로 그런 경험들이 많고 그런 것에 잘 대처하는 능력이 생길 수록 더 멋진 어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러한 능력을 가짐으로써 점점 더 그런 많은 상황을 불러일으키는 구조로 되어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의 허례의식이다.
전문가들이 오히려 직장에 종속되고 하나의 기술에만 의존하게 되는 현상과 같다.
싸워야할 때는 마지막 지점이다.
사소한 것은 사소한 리스크로 끝냄으로써 나를 지키는 것이 지상목표가 되어야한다.
나를 떼어주는 리스크를 짊어지고 매번 싸움을 시작하면 결국 나는 고갈되어 갈 뿐이다.
정보가 많은 빅데이터일 수록 과적합이 일어나고 소음이 늘어나게 되어있다.
순식간에 복잡한 과정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쉽게 끝날 일을 어렵게 바라보게 되어있다.
편향된 생각이 반영되고 관습과 규칙이 고정되어버린다.
그런 우둔한 움직임으로는 태풍의 눈을 포착할 수 없다.
너무나 당연하고 자명하고 쉬운 그곳을 발견할 수가 없게 된다.
하지만 아이들은 가능하다.
리스크를 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신남과 여유로움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해나갈 수 있다.
순수한 마음으로 일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결과에 집착하지않고 순간의 움직임과 변화를 포착할 수 있게 된다.
아이와 같음을 유지하는 것이 리턴의 양을 결정한다.
오직 나를 지키는 것만이 지상목표이다. 그 어떤 지식도 리스크도 필요가 없다.
지키기만하면 고통없는 곳에서 새로운 창조를 할 수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다.
어른들이 그 통과의식을 모두 겪어낸 최고의 전사가 되는게 아니다.
오히려 멍청이가 되어가는 과정을 겪은 것이다.
아프지 않아야 인간이다.
리스크를 짊어지지 않을 수록 인간성을 유지한다.
그곳에서만 창조된다.
이미 부처님께서 6년간의 고행 끝에 고행으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설파한지 몇천년이 지났다.
감히 고통과 리스크를 통해 무언가를 하려는 생각은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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