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잘 참는 것은 멋있는 것도 아니고 성숙한 것도 아니고 어른이 된 것도 아니라 그냥 노예나 짐승들이 하는 짓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진심으로 솔직하게 이 고통을 내가 즐거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할만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롤러코스터를 일부러 타듯 즐거운 스릴을 느끼기 위한 자발적 행위였는가?
그렇게 하기 위해선 남들이 보기에는 위험하고 힘들어보이는 것이어도
어떠한 합리적이고 납득가능한 이유에 의해 나만큼은 이것에 의해 별로 고통받지 않을 수 있는 재능이나 기회, 환경 등이 있어야만 한다.
결국 그 납득가능한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그 행위에 대한 결과가 이득이 되고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을 때 가능하다.
고통이 고통이 아닐 수 있는 이유는
너무나도 확실하게 그 고통이 오히려 더 좋은 것으로 정확하게 대응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만 가능하다.
10의 고통을 받고 13의 행복을 얻으면 고통은 사라지고 3의 행복만이 남는다.
내려갈 수 있는 가능성보다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크다면 그 고통은 사라진다.
보통사람이 느끼는 고통은 10이고, 행복은 8만큼 주는 어떤것은 사람들에게 외면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왠지 나는 그것을 할때 고통을 5만큼만 느끼면 그것은 나에게 완전한 행복이자 내가 해야할 일이 되는 것으로 바뀐다. 남들이 아무리 뭐라고 지껄여도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 그것을 해야만 한다. 그게 어른의 고집이다. 나를 위한 고집이어야지 고통을 참으려고 고집을 부려선 안된다.
고통을 참는 사람은 10의 고통만 받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고 우주가 도와줄것이라 믿지만
행복의 양을 고려하지 않는 그 선택은 지속적으로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미리 계산되고 미리 알아야한다. 미리 인식해야한다.
고통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분명히 있다.
세상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분명히 존재한다. 우주인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고 똑같은 사람이 있다.
먼저 그것부터 인식하고 가자.
어른이 된다는 건 리스크를 지지 않게 될 때 가능하다.
고통을 참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즐길 수 있는 사람만이 진짜 어른이다.
어른에겐 고통이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고, 즐거움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게 된다.
단 한순간의 고통도 참지말자.
어른이 되기 위해선 우선 행복을 알아야한다.
행복의 양이 얼마나 큰지 부터 제대로 알아야한다.
로망과 꿈을 꿀 수 있을 정도로 큰 행복만이 고통을 고통이 아닌 것으로 중화한다.
그 행복의 양을 측정하기 위해선 내 인생에 초기 세팅된 고통을 분명히 바라보고 인식해야 한다.
고통과 두려움을 마주했을 때 그 반대편에 대한 행복의 기대감과 힘을 측정할 수 있고
그로인해 고통이 사라질 수 있다.
고통을 선택했을 때 역설적으로 고통이 사라진다.
고통은 참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마주하고 제대로 바라보고 책임짐으로써 사라지게 만들어야한다.
잠깐 눈감고 참기만하면 끝나는게 아니라
진짜 고통을 책임지기로 결심한 사람들에게 고통은 사라진다.
참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인다.
받아들인 다는 것은 한쪽측면에서 참기만하고 야리고 기대감만 가지며 대충대충하는게 아니라
고통의 아웃풋인 결과물을 진심으로 책임지고 집중해서 무조건 얻어내겠다는 진심을 말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진심만이 고통을 오히려 사라지게 만든다.
참는게 아니라 분명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아웃풋에 대한 진짜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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