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페이스 디자인

양보하는 것

 

애니메이션 '바라카몬'의 떡 줍기 경쟁

 

애니메이션 '바라카몬'의 주인공은 갑자기 등장한 신인에게 서예대회 1등자리를 내주게 된다. 마을에서 벌어진 떡 줍기 경쟁에서도 같은 상황에 빠지자 아무리 노력해도 이기지 못할 것 같은 절망에 빠진다.

 

포기하려는 주인공

"결국 여기서도 똑같네. 잡는 사람과 못잡는 사람이 있어. 못 잡고 버둥거릴바엔 안 잡고 관두는게 깔끔하지? 서예도 그만둘까?"

 

그 때 떡 줍기의 초고수 할매가 나타난다.

 

할매 : "선생은 요령이 없네."

주인공 : "정말 안되겠죠 저 같은건.."

할매 : "위에만 쳐다보니까 안되는 기라. 천천히 기달리가 바닥에 떨어진 거 줍그라. 기회란 의외로 바닥에 있는 법이대이"

주인공 : 바닥.. 

할매 : "인자 얼마 없대이 힘내그라."

주인공 : "잠깐 야스 할매. 바닥을 보더라도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어서 도저히 못줍겠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못따면 어떡합니까!"

 

 

" 그랄 때는 갖고 가이소."

"양보해줘뿔고 더 큰 떡을 노리그라"

"양보하는거랑 줍는것을 그만두지만 않으면 요래 모아지는 기다."

 

할매가 모은 떡

 

 

자기를 소중히하라는 자기계발서가 난무하는 세상의 사람들에게 양보는 무슨 의미로 받아들여질까?

유교사상이나 도덕책에 나오는 윤리적인 양보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일본사람들이 자주하는 '사양하기'와 같이 소심하고 자신감 없는 사람들의 회피책을 말하는 것일까?

 

언어적인 의미나 일반적인 의미와는 다르게 적어도 야스할매는 '더 큰 떡'을 노리는 전략으로 양보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수동적으로 남들에게 그저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목적에 의해 경쟁을 회피하는 하나의 생존 전략이다. 적극적 양보, 혹은 전략적 양보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 이미 '어른'들이 만든 과거의 세상에 살고있다.

그들이 만든 세계에서 태어난 아이는 약자일 수 밖에 없고 모든 것이 점령당해 있을 수 밖에 없다.

시작부터 다른 불평등은 누군가 조장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그저 자연이다.

 

양보란 과거의 세력, 어른들, 혹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판에 끼어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그들의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인정하고 나의 게임을 하는 것이다.  기존 시스템을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들어가기 위해 남과 나를 철저히 구분하는 전략이다. 양보로 인해 서로가 본질을 침해하지 않고 무익한 피를 흘리는 일을 줄여나갈 수있는 '독립'되고 자립된 삶을 살 수 있다.

틈새시장을 노리는 것처럼 모든 것을 양보하고 아주 작은 영역만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더 큰 것을 노리는 독립된 삶이다.

누군가가 먼저가려하면 양보하고, 다시 계속 줍는 것을 멈추지 않을 때 어떤일이 벌어지는가?

단 한명도 나보다 먼저가려고 하는 곳이 없는 순수한 나만의 공간, 나만의 개성, 나만의 독립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할 수 있다.

양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나를 찾기 위해선 나 이외에 단 한명이라도 같은 공간에 있어선 안된다. 나의 몸을 두명이 조종을 해서는 안된다.

두명 이상이 있다는 것은 나의 공간이자 몸이 아니라는 완벽한 증거이다.

양보를 하며 체력과 실력을 기른 사람.

양보를 하며 아직 끝나지 않은 불확실하고 모호한 상태로 유지한 사람은 그 어떤 황폐한 곳, 추운 곳이라도 견뎌내는 강한 힘을 가질 수 있다.

 

떡을 줍지 못하더라도 떡을 많이 주은 사람이 돌려주는 순환의 세계

 

 


 

인터페이스 디자인

뒤로 가는 것

 

영화 '레디 플레이 원' 의 게임 제작자 '할리데이'

 

할리데이 : " 룰을 만들기 싫어. 난 몽상가야. 난 세상을 만들지. 난 옛날이 좋아 게임은 그저... 게임이었을 때. "

친구 : " 정말 말이 안통하네 모르겠어? 자네가 좋든 싫든 세상은 변한다고. "

할리데이 : " 거꾸로 가보는 건 어때? "

 할 수 있는 최대한 빠르게 거꾸로. 페달을 꾹 밟아 버리는 거지. "

"앞으로만 갈 필요는 없어."

 

레이싱 대회에서 후진하는 '파시발'

 

영화 '레디플레이 원'의 주인공은 게임 제작자 할리데이가 만든 절대 이길 수 없는 레이싱 게임에서 이기기위한 방법을 찾으려고한다.

할리데이의 과거 영상을 보고 깨달은 주인공은 레이싱 게임에서 후진기어를 넣고 페달을 꾹 밟는다.

 

레이싱 경기장 끝에 있는 '이스터에그'를 발견하는 주인공

 

레이싱 게임의 지하세계

 

할리데이가 만들어놓은 게임의 지하터널을 발견한 주인공 파시발은 레이싱 게임에서 경쟁하지 않고 한번에 결승선을 통과하게 된다.

이 장면만큼 짜릿한 승리가 있을까? 화려한 그래픽 덕분에 훨씬 더 통쾌하고 시원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장면을 통해 무슨말을 하고 싶었을까?

나는 스필버그가 하고싶은 말은 자본주의 세상의 욕심꾼들이 마치 레이싱게임 하듯 달리는 것에 대한 경고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젊은이들에게 더이상 경쟁하지말고 자기만의 길을 가야한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쟁을 통한 피흘리는 승리는 승리가 될 수 없다.

진정한 승리는 어쩌면 뒤에 있을지 모른다.

 

위에서 쓴 '양보하는 것'의 가치는 이 레이싱게임과 완벽하게 동일하다.

숨막히는 레이싱 경기에 참여하지 않아도 단 한번에 이겨버리는 전혀 다른 판.

모든 것을 양보했지만 오히려 모든 것을 얻게되는 모순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생명의 진화

바다의 거대한 고래가 된다는 것

 

'파키세투스'

 

오천만년 전 파키스탄의 한 바닷가. 늑대를 닮은 파키세투스는 반수생동물 이었습니다.

파키세투스에게 바다는 먹이가 풍부하고 경쟁자가 없는 기회의 공간이었죠.

물갈퀴가 달린 발갈퀴덕분에 수영실력도 좋았습니다. 귀에 이낭이 있어서 수중에서 먹이가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파키세투스는 기다란 주둥으로 물고기를 낚아챘을 것입니다. 물속에서 살기위해선 뭐든게 변해야 했습니다.

 땅 위를 걷던 앞다리는 지느러미가 되었고 필요없는 뒷다리는 작아졌죠. 꼬리도 오리발처럼 넓적한 형태로 변했습니다. 숨쉬기 쉽게 코구멍이 정수리로 이동하며 고래의 조상은 완전히 바다에 적응했습니다.

육지에서 바다로 되돌아간 사건. 지구 생명의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대변혁을 겪은 주인공. ~ 그들은 현생고래로 이어졌습니다.

 

아직 작은 발이 달려있는 고래

 

생물은 바다에서 시작해 땅으로 이동하였다.

그런데 어째서 파키세투스는 다시 바다로 돌아갔을까?

바다로 돌아간 파키세투스는 땅에서 얻었던 능력을 통해 바다를 지배했다.

바다에 기회가 있었고 경쟁이 없었다. 이 위대한 생명체는 무엇이든 변화를 통해 바다의 주인인 거대한 고래가 되었다.

고래가 그랬던 것처럼, 진화는 한쪽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이상희 UC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

 

Q. 진화란 무엇이라고 정의하시나요?

A. '시간과 세대를 거쳐서 유전자의 빈도수의 차이가 날 경우'를 진화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정의에는 더 나아지고 더 나빠지고 그런식의 가치판단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무조건 중립적인 판단으로써

변화가 있으면 진화입니다.

진화란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는거죠. 어떤분은 역진화라는 말을 쓰는데, 나빠지는 것을 역진화라고 쓰는데 그 말 자체도 성립이 되지 않는 말입니다. 무엇이든지 변화는 진화입니다.

죽지만 않으면 진화를 할 수 있습니다.

 

 

찰스 다윈

 

진화론을 만든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적자생존, 약육강식을 강조한 적은 한번도 없다고 말한다. 

가장 강했던 생물인 공룡이 멸망하고 약자였던 포유류가 다시 강자가 되는 순환 속에서 단순히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이론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다. 이치에 맞지않고 누군가가 퍼트린 완전히 잘못된 개념이다.

강자가 생존하는 것이 아니다. 강자는 일시적으로 이길지 몰라도 항상 살아남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큰 위협에 노출된다.

다윈은 생명의 진화는 '다양성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확실하게 말했다. 강해져서 약한 것들을 쓸어버리고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진화가 아니다.

생명은 하나의 같은 팀이다. 강자와 약자는 하나로 맞물려 있기에 강자는 약자를 잡아먹는게 아닌 보호해야하는 역할을 가진 것이고, 약자는 강자가 되기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닌 강자가 멸종하더라도 살아남기 위해 비어있고 남아있는 곳으로 가야한다. 더 크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야만 한다. 

할 일이 있는 곳, 임무가 있는 필요한 곳으로 가는 것. 전혀 달라지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 적응하는 것.

컨텐츠를 풍부하게 늘리고, 비밀이 쌓이고 깊은 것이 생겨나 점점 더 내부가 단단하고 강해지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선 그러한 작은 디테일이 필요하다.

그런 것들이 진짜 진화이자 진짜 힘이다.

 

 


 

생명자본

황제가 되는 것

 

이어령 교수님의 '생명이 자본이다'

 

남극에 있는 펭귄들은 '허들링'을 한다. 너무나 추워서 서로 뭉쳐 있는 행동을 말하는데 가장 바깥쪽 애들은 훨씬 춥고 안쪽에 있는 애들은 좀 더 따뜻할 것이다. 그래서 펭귄들은 그 차례를 번갈아가면서 자리를 바꾼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그 생명체들은 서로가 순환해야 살아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가운데 아이들을 배치하는 허들링

 

지구상에서, 세상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펭귄들이 간 이유는 추운만큼 그곳에 경쟁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 추운 곳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지해가며 삶을 사는 것.

일부러 경쟁하지않고 가장 추운 곳으로 가는 펭귄도 알고있는 생명의 지혜.

이어령 선생님은 이것을 '생명자본'이라고 하셨다.

 

그 펭귄들은 생명을 알고 아이를 지킨다. 그리고 번갈아가며 순환시킨다.

생명자본. 그 엄청난 자본을 가지고 있기에 가장 추운곳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실질적 힘을 가진다.

모든 것을 양보하고 가장 추운 곳으로 이동한 것은 어떤 생명체보다 강한 생명의 힘을 사용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 펭귄들의 이름에 '황제'가 붙은 것은 우연이 아닌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자명한 일이다.

그들은 자유로운 생명의 황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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