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면서 화를 내는 나를 보며
프로그래밍은 서양사람들이 만든 것이고 모든 자료가 영어로 되어 있다.
게다가 시작한지 꽤 되서 많은 것들이 만들어져 있어 거의 무조건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가져다 써야한다.
오픈 소스로 수많은 사람들이 수정하고 업데이트한 코드를 쓰지 않고 내가 처음부터 개발하겠다는건 통장에 100억이 있고 조기교육을 시작한 6살 아이의 상태가 아닌이상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며 해서도 안되는 일이다.
아마 미국에서조차 정말 드문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 남이 만든 것을 가져다 쓰는 정도의 수준일 것이다.
남이 만든 것을 가져다 쓰기 때문에 정말 빠른 속도로 편하게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기는 하지만,
하나를 완성하는데까지의 도달점이 너무 멀다. 심각하게 멀다.
남이 만든 것을 10개 20개 계속해서 사용해도 끝이 보이지않으니 정말 이게 빠른 길인가 아니면 구렁텅이 인가 싶은 마음이 든다.
내가 할줄아는 건 딱히없고 남들이 해놓은 답변이나 보면서 만들어가는게 왠지 노예가 된 느낌이다.
게다가 남이 만든 것을 쓰다가 오류라도 나는 날엔 지옥이 시작된다.
논리가 틀린 것도 아니고 배워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그저 업데이트가 되서 규칙이 바껴 실행이 안되는 일이 벌어지니 정말 화가난다. 오류가 어디서 나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다니. 나뿐만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같은 문제에 속해있는 것 같다. 외국인들의 좌절하는 댓글에 대한 어휘력이 늘어나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그 어느 분야보다 빨리 바뀌는 분야라 계속해서 무언가를 배워야하는 곳이다.
다른 일이나 직업에는 없는 정말 특이한 부분인 것 같다.
화가나긴하지만 이대로 화만 낼 수 없고 그만둘 수도 없어서 이 특수성을 조금 다르게 생각해봐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는 좌절감은 중고등학교 시절 수능에 올인하며 세뇌당한 탓이 큰 것 같다.
다른사람은 다 제껴버리고 나혼자 최고의 능력을 가지고자 달려가는 미친 게임.
내가 처음부터 모든 걸 가지고 싶고 하나하나 나혼자 모든 것을 해야하는 그 무인도에서 생존하기 위해 생긴 파충류적인 생각이다.
사회는 그렇게 생겨먹지 않았고, 더군다나 IT분야는 더욱더 아니다.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곳이다. 내가 아무리 능력이 없고 할 줄 아는게 없어도 아주 작은 것을 담당하더라도 괜찮은 곳이다.
내 능력은 딱 하나지만 다른 사람은 너무나 많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시간이 다른사람의 능력에 도움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
내가 잘해야만 하는게 아니라 남들이 잘하는 것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세상이다.
프로그래밍의 영역은 그게 초단위로 이루어질 정도로 피부로 느껴지는 곳이다.
누군가 하나 만들면 모든 사람이 즉시 접속해 그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런 특수성으로 인해 프로그래밍의 영역은 수능이나 대학교 연구실이나 장인정신을 발휘해야하는 곳이 아닌(대부분),
그야말로 '사회성' 덩어리로 이루어진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그대로의 오픈소스의 영역이다.
생각을 사회적으로 완전히 뒤바꿀 필요가 있다.
사회성이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는 것이기에 '겸손'이라는 단어와 맞물린다.
남들 앞에서 목소리 키우고 공공장소에서 노래를 잘 부르고 공포분위기를 잘 형성하는게 사회성이 아니다.
사회가 커지는 만큼 겸손해질 수 밖에 없다. 나말고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이미 많은 것을 쌓아 놓고 있다.
다른사람이 해놓은 것을 가져다 쓰는 것에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세뇌의 아웃풋이다.
나는 그것을 가져다 씀으로써 만든 사람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또 그걸 이용해서 전혀다른 것을 만들어내면 그만이다.
결국 프로그래밍 실력이란 남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어떻게 잘 꿰메어 편집하는 가에 달려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소통할 줄 알아야하고 남들이 만든 규칙을 잘 이해해야하며 그러기 위해서 남들이 써놓은 글을 잘 읽고 들어야 한다.
인터넷 강의 선생님이 프로그래밍은 수학보다 영어가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 이제는 이해가 간다.
모든 공부를 같은 방식으로 표현할 필요가 없다.
게임에서 많은 캐릭터들이 있고 그 캐릭터마다 활용방법이 있듯 내가 그 공부를 대할 때 적절한 생각 인터페이스를 만들어 놔야만 접속할 수 있다.
프로그래밍은 정말 완전히 다르게 바라봐야한다.
에러가 난다고해서 그것이 내 실력이나 자존심을 건드린다는 건 말도안되는 과거 적폐의 잔재이다.
얼마나 남들 것을 잘 쓸 수 있느냐, 얼마나 잘 질문할 수 있느냐, 얼마나 에러에도 아무런 반응없이 넘어갈 수 있느냐, 도저히 안됐을 때 자존심을 내려놓고 그방법을 포기하고 다시 뒤로 돌아갈 수 있느냐의 게임이다. 완전히 다른 장르의 게임이다. 천재들이하는 머리싸움이 아니다. 인간성과 겸손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다보면 나도 언젠가 한번쯤은 내 실력으로 남들에게 도움이 될 것들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건 일생에 한번정도면 될정도로 부담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아니 안해도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필요한 것을 만들 수만 있으면 된다.
또한 사회성은 프로그래밍 영역 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도 해보는 방식이 될 수 있다. 프로그래밍은 입문자의 수준이지만, 다른사람보다 요리는 어느정도 잘할 수 있고 동영상을 만드는 일은 꽤 잘하는 사람이 되면 된다. 계속해서 리스크를 헷징(분산 투자)하고 돌려서 바라보는 능력이 바로 사회성이다. 그것이 없는 이상 세상을 상대로 칼부림하는 꼴이 될 뿐이다.
프로그래밍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앞으로는 사회성이 필요할 것이다. 전혀 다른 게임이 시작된지 오래이다.
정보가 넘쳐나고 연결되어있고 상품화되고 디자인화 되니 너무 쉽게 다른 것에 접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최근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누구나 어떤분야나 지난세대가 해놓은 것 위에 또 다른 것을 세운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땅 위에 새로온 아이들이 살아간다. 어디에 있던 인간은 이런 사회적인 부분을 빼놓을 수 없다.
그렇기에 각자가 하고 있는 일이나 공부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그에 알맞는 적절한 사회적 태도를 가지는 것이 공부를 뒤지게 열심히 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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