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에가서 커피를 쪽 빨아먹어버리고, 디저트를 한입에 쳐넣어버린다.

대화도 순식간에 결론부터 말해버리거나,

속으로 상대방을 무시하기때문에 거만하게 '아~ 그래?' '어~' 같은 조롱성이 담긴 중립어로 대화를 차단한다.

호기심도 없고 모든 것을 다 알고있다고 생각하기에 더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남은 것은 이제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눈알을 굴리는 것 뿐이다.

어떠한 컨텐츠도 없이 압축되어 소멸해버렸기 때문에 심심하고, 즐겁지가 않다.

그렇기에 자극적인 것들을 원하고, 상대방을 도발하여 감정적인 상황을 연출하거나 

심지어 처음보는 사람, 공공적인 영역에까지 시비를 걸고 도전한다.

더 끝까지 간 사람은 자기 가게에 온 공공적인 손님이나, 애미애비 부모자식 가리지않고 시비를 건다.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사람에게까지 도전한다.

셀프 사보타지(자기 기만)을 통해서 자기자신을 궤멸하도록 압축한다.

너무나도 무서운 나르시스트들의 결말이다.

 

사건 A와 사건 B의 사이가 너무나도 짧은 나르시시스트들은 무언가를 담을 용량, 함량이 작다.

물건에 대한 애정이 없고, 만든 사람에 대한 감사가 없다.

새로운 호기심이 없어지고 무언가 연구한다거나, 생각한다거나 지속해나가는 능력을 상실한다.

그렇기에 남을 조롱하고 감사할줄 모르는 사람은 염색체 끝의 텔로미어(말단소립)이 점점 짧아진다.

사회적인 상황, 감정적인 공격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로 인해서 실질적이고 물리적인 수명이 줄어들고 좋지못한 상황이 현실에서 계속해서 벌어지게 된다.

운이 나빠진다고 표현할 수 있지만, 운이 아니라 물리적인 현상이다.

실제로 어떤 가게를 욕하면 그곳에 들어가기가 꺼려지는 감정이 계속해서 올라온다.

욕할만했으면 잘한 것이겠지만, 만약 욕을 할만한 정도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곳을 가지 못하게 된다면 큰 손해가 된다.

갈 곳이 없어진다. 컨텐츠가 없고, 만날 사람도 없어진다. 

이미 속으로 욕하고 무시하고 부정했기 때문이다.

한사람만 부정하더라도, 그 한 사람과 비슷한 특성을 지닌 모든 사람에게 거부감이 들고 피하게 된다.

개한테 물렸다고해서 모든 개한테 멀어진다면 그건 말도안되는데 알고리즘은 그렇게 편향을 타고 이동하게된다.

 

마치 부처님이 말한 카르마가 진짜로 작동하는 것처럼

한번한번 싸가지없는 행동을 할때마다 텔로미어의 용량이 줄어들고

용량이 줄어든만큼, 세상의 컨텐츠를 입력받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린다.

 

사실 세상은 풍성한데

풍성한 것을 받아들일 용량과 창고가 없으니

결핍되고 부족하고 화나는 본인만의 메타버스 세상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신중해야한다.

작은 것이라도 끝까지 미루어서 판단을 보류해야한다.

어떤 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한번 잘못된 생각과 행동이 정말 인생 끝까지 갈수도 있다.

 

융기와 침강이 수생 동물을 육지로, 육상 동물을 물속으로 밀어넣었을 때, 새로운 적응력을 만들어 자기 종족을 멸종에서 구해내는 전대미문의 일을 수행해낸 건 그런 개체들이었어. 
운명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는 개체들. 그들이 이전에 자신의 종족 가운데서 유달리 더 보존적인 성향을 지녀서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편이었는지, 아니면 기이한 별종이며 혁명적이었는지를 우리가 알 수는 없겠지. 

그렇지만 그들이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화의 과정에서 자신의 종족을 구할 수 있었던 건 확실해.융기와 침강이 수생 동물을 육지로, 육상 동물을 물속으로 밀어넣었을 때,새로운 적응력을 만들어 자기 종족을 멸종에서 구해내는 전대미문의 일을 수행해낸 건 그런 개체들이었어. 
운명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는 개체들. 
그들이 이전에 자신의 종족 가운데서 유달리 더 보존적인 성향을 지녀서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편이었는지, 아니면 기이한 별종이며 혁명적이었는지를 우리가 알 수는 없겠지. 

그렇지만 그들이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화의 과정에서 자신의 종족을 구할 수 있었던 건 확실해. - 소설 [데미안]

 

보존해야만한다.

사건 A와 사건 B 사이를 할수있는 최대한 늘려야한다.

누구는 어떤 사람을 그저 눈빛교환만 했는데 '병신' 이라고 판단해서 평생을 교류하지 않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아직 '병신'이라고 판단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최대한 오래 지내보고 대화도 나눠보고 반응을 통해 데이터를 습득할 수 있다.

그렇기에 보존하는 성향의 사람들은 컨텐츠가 너무나도 많다.

너무나도 풍성하고 너무나도 해야할 일이 많다.

그 사이사이에 어렵고 힘든일도 있겠지만, 뜻밖의 좋은 일도 많고 재밌는 일도 많다.

하다보면 큰 실력이 쌓여버린다.

즐겨버린다.

 

사냥감이라는 목적을 위해 달렸던 인류가 아니라

달리기가 목표였던 인류가 살아남았을 것이다.

과정과 사이 자체가 목표이며 즐길거리가 된 종족이 살아남았다.

 

 

산 정상에 가지않고 80%만 가고 일부러 내려와버리는거다.

왜냐면 내일도 날이니까. 내일 또 기대하면서 올 수 있으니까.

헤밍웨이가 그랬듯 정해진 분량의 글을 쓰면 그날은 그냥 펜을 그즉시 놓아버리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정말로 사랑하는지 확인하려들지 않고, 그냥 내일 또 만난다.

병사들이 하루라도 더, 한명이라도 더 많이 살리기위해 후퇴하며 파비우스 전략으로 시간을 끈다.

작게 잘라서 먹어야한다. 내일을 위해 음식을 남겨서 냉장고에 보관해야한다.

아끼고, 살펴야한다. 관찰해야한다.

스토리와 배경 등 주변의 것을  공부하고 확산해나가야한다. 

진이 빠지지 않아야한다.

지속되어야한다.

 

그 사이에서 있을수 있는지를 판단하면된다.

사냥감을 목적으로 쫓는게 아니라

우선 내가 얼마나 달릴 수 있는지 

달리기을 얼마나 즐길 수 있는지 얼마나 노력해야하는지

그곳에 집중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외부적으로 우회하여 돌아간 사람이 승리한 인류가 된다.

커피숍이라고해서 커피맛에 집중하는게 아니라 그 사이, 커피를 마시는 공간, 분위기 그것에 집중한 사람이 승리한다.

공룡이라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이기는게 아니라, 귀엽고 털많은 포유류가 살아남는다.

작지만 모든 것으로 퍼질 수 있는 것이 이긴다.

모든 것과 함께 하는 사람이 이긴다.

오늘만이 아니라 모든 날들과 함께 하기위해 적당히 지속하는 사람이 이긴다.

 

 

어떤사람은 초기에 발생한 사건 A 에서 사건 B로 가는데 평생의 시간을 바칠 수도 있다.

우연히 만난 직업, 우연히 만난 사람, 우연히 만난 지역에 머물면서

어 이거 좋은데~~~ 하면서 머물다가 그럼 다음에 뭘해볼까~~ 하다가 문득 생각해보니 나이가 80이 넘었을 수도 있다.

다음건 다음생에 하지 뭐 하면서 느긋하게 죽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만큼 나에게 온 것을 쭈우우우욱 늘려서 무언가를 지속하는 것이다.

 

컨텐츠 하나를 소비하는데 그렇게 오래걸린다면

정말 다음생이 존재한다고해도 무한하게 즐길 수 있는 풍성함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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