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만물이 양자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면

순서적으로 먼저 '부정'을 품은 사람은 그 반대편인 긍정을 얻게 된다.

긍정을 선택해서 그 다음 부정을 얻는 순서는 똑같은 양이더라도 힘들고 어려워진다.

매를 맞아야한다면 언제나 먼저 맞는게 최고다.

 

내가 먼저 부정을 품어 바보가 되고 사악해보이는 것이다.

원래 우주에는 완전히 부정적인 것도 없고 완전히 긍정적인것도 없는데 세상이 멋대로 부정적인 것으로 만들었으니, 오히려 그것을 선택했을때 이득을 볼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경쟁도 없고, 견제도 받지 않는다. 기대도 받지 않는다.

편안한 마음이 완성된다. 제대로 하지 않아도 되니까.

오히려 질책을 받으니 동기부여가 지속적으로 작동한다.

거기서 그 부정어의 긍정적인 부분을 내면에서 키워나가면 된다.

 

 

최고 중에 최고들은 모두 '부정어'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잘살펴보면 알 수 있다.

- 리처드 브랜슨의 '버진' 그룹의 이름은 솔직히 사악해보이고 장난스럽다.

- 롤 프로게이머 '페이커'는 이름 자체에서 사기꾼이다.

- 최고의 만화 원피스는 '해적'의 긍정한다.

- 스티브잡스 또한 해적기를 걸고 창업을 했다.

- 최고의 소설 '데미안'은 이름 그대로 악마이며 성경 속 카인을 긍정한다.

- 오타니쇼헤이, 우사인 볼트 같은 운동선수들은 기본적으로 장난끼가 심하다.

- 일론머스크는 '보링(지루한) 컴퍼니'를 창업했다. 아인슈타인이나 에디슨이 아니라 쓸쓸하게 죽었던 테슬라를 이름으로한 기업을 매수한다.

- 피터틸이 만든 '팔란티어'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구슬 이름이다. 다른 곳에서도 서브컬처에서 나오는 이름들을 재밌게 사용한다.

- 개인적으로 프로그래밍 언어인 'Rust(녹슨, 부패한)' 가 성공할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부정적인 것을 걸어두고

긍정적인 것은 내면에 품으면 된다.

인간의 내장이 몸 안쪽에 있는 것처럼 당연하다.

 

 

그 반대편을 보자. 

- 범죄자들은 봉사활동을 아주아주 열심히 한다. 교회나 절에 자주 등장한다.

- 사기 스캠 기업의 이름이나 슬로건에는 꿈(Dream), 미래(Future), 새로운(New), 자유(Freedom) 들이 자주 들어간다. 당연히 아닌경우도 있지만.

- 레전드들, 위인들, 그리스 신화의 신들 같이 존나게 멋있는 말들은 다 등장한다.

- 피터 틸이 강의에서 'SAS의 모바일 플랫폼을 빅데이터를 이용해 클라우드에 만든다' 라는 말을 들으면 최대한 빨리 도망가라고 한것처럼 버즈워드, 유행어를 사용한다.

 

 

 

정리해보면 4단계의 레벨로 나뉘어진다.

1. 긍정만을 긍정한다.

=>  착함, 멋있는, 박수받고 인정받는 것들 

 

2. 부정을 부정한다.

=> 전쟁 반대, 구글이 Don't be evil 이라는 슬로건을 말했지만 정작 사악해지는건 누구인지 궁금해져가는.. 

 

3. 긍정을 부정한다.

=> 다들 좋아하는 것이 “진짜일까?” 하고 의심하는 태도, 하지만 잘 모르겠는 태도. 자기파괴(self sabotage)적인 태도 

무신론자, 허무주의자, 자폐증

혹은 아무것도 아닌 중립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 아무 의미없는 단어 나열로 회사명을 짓거나 자기 이름으로 회사명을 짓는 것.

자기가 가진것으로만 공정하게 사용하는 것.

 

4. 부정을 긍정한다.

 

 

빅터 프랭클의 '역설의도'는 세상에서 있을 수 있는 생각 중 가장 높은 레벨이다.

땀을 많이 흘리는 문제를 가진 사람이 '어디 한번 땀을 얼마나 흘리나 보자' 라고 생각할 때

오히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음이다.

부정을 허용하고 그자체로 품고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높은 태도다.

부정을 받아들여야하는 시대가 온다.

긍정어는 이미 너무나도 많은 곳에 점철되어있어서 머리가 피곤할 지경이기 때문이다.

경쟁 때문에 발도 디딜 수 없다. 애초에 가서는 안되는 곳이라 다행이긴 하지만.

도메인과 기업명, 닉네임, 좋은 자리, 좋은 환경, 멋있고 좋은 말들은 모두 착한 시민들이 다 가져갔다.

 

남아있는 것은 결국 부정적인 것들 뿐이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서는 배길수 없는 시대가 온다.

감정적으로 불편한것을 못받아들이고 도덕적인 우위를 차지하려고 하는사람들은

몸이 부들부들 떨려서 절대로 오지못하는 곳에 들어갈 수 있어야만 한다.

 

 

모든 면에서 부정을 받아들일 필요는 당연히 없다.

아직 착한 시민들이 가져가지 않은 착한 개념이 있다면, 그냥 그 좋은 것을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착한 단어를 쓰면서 진짜로 착한 곳도 있고, 당연히 교회도 절도 긍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문제도 없는데 굳이 문제를 만들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정말 끝까지 가려면 정말 어려운 문제를 직면하고 있다면, 부정을 품어야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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