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 부르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서 있을 각오가 되어 있는 그런 사람으로서 필요하게 될 거야. 누구든 자신의 이상이 위협을 받을 때면 믿을 수 없이 대단한 성취를 기꺼이 해내지. 그러나 새로운 이상, 아마도 위험하고 불길한 성장의 움직임이 문을 두드릴 때는 아무도 반응하지 않아. 그 때 거기로 기꺼이 달려가는 소수의 사람이 우리들인거야. 그것을 위해 우리가 표식을 달고 있는 거니까. 공포와 증오를 일으켜 인류를 좁다란 전원에서 위험스러운 광야로 내몬 카인처럼 말이야. - 데미안
원피스 빠돌이로서 이 대목을 보고 D의 의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성경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살인자 카인이 전혀 악하지 않다' 라고 말하는 저항정신을 가진 데미안의 내용은
원피스의 '해적이 악하지 않을 수 있다'라는 선악의 구도전환과 매우 흡사하다.
[공포와 증오를 일으켜 인류를 좁다란 전원에서 위험스러운 광야로 내몬 카인]은 대해적시대를 만든 골드로저의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한다.
곧바로 나오는 대목을 보자.
융기와 침강이 수생 동물을 육지로, 육상 동물을 물속으로 밀어넣었을 때, 새로운 적응력을 만들어 자기 종족을 멸종에서 구해내는 전대미문의 일을 수행해낸 건 그런 개체들이었어. 운명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는 개체들.
그들이 이전에 자신의 종족 가운데서 유달리 더 보존적인 성향을 지녀서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편이었는지, 아니면 기이한 별종이며 혁명적이었는지를 우리가 알 수는 없겠지.
그렇지만 그들이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화의 과정에서 자신의 종족을 구할 수 있었던 건 확실해.
물고기가 육지로 올라올 수 밖에 없을 때를 준비하고
육지생물이 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을 때를 준비하여 살아남은 개체들로 인해 지금이 존재한다.
원피스의 '어인'이 핵심적인 저항세력으로 지정되어있는 것도 이 대목에서 떠오른다.
어인은 육상에서 물로 들어갈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생겨난 새로운 적응 생명체들일 수도 있기 떄문이다.
그들은 뭔가를 '유달리 더 보존적인 성향'을 가지고 유지하고 간직하려고한다.
그로인해 혁명적인 사건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나오는 '준비'와 '기다림'은 로저의 치밀한 설계와 계승이 떠오른다.
그만큼 어려운 것이기에 본인은 실패하였어도 철저하고, 미세하게 조정하고 연구한다.
포트거스 D. 루즈가 에이스를 살리기 위해서 1년 8개월 동안 임신상태를 유지한 것과도 같이, 목숨을 걸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골 D. 로저는 육지에서 바다로 갈 수 밖에 없는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바다로 내모는 대해적시대를 만든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적응력을 키워내기위한 전초작업인 것이다.
멸종에서 이겨내기위해 바다로 나아가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곳에서 힘과 적응력을 키운다면, 세계정부와 맞서싸울 힘을 만들어낼 수 있기 떄문이다.
이러한 D의 의지를 가진 사람들은 한명의 개인으로 존재한다기보다
더 거대한 것의 '부분'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죽음이나 실패나 실수가 끝이아니라 과정에 불과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사람들이 어떠한 가치를 보존하기위해 목숨을 던지고 죽기까지한다.
그러나 그것이 '보존' 된다는 목적을 달성했기 떄문에 죽는 순간에 '웃음'을 지을 수 있다.
실패해도 웃을 수 있다.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보존에 목숨을 거는' 인류 혹은 생명체의 최후의 보루가 D의 일족이라고 볼 수 있겠다.
천룡인들이 아무리 나대고 사악한 짓을 벌여도, D의 의지는 D의 일족에 의해 계속해서 살아서 보존된다.
이런의미에서 D는 '데미안' 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데미안안에서는 여러 인물들이 데미안이 아닌데도 데미안 처럼 묘사된다.
한명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마치 데미안처럼 비슷한 특성을 지닌다.
그것이 D의 일족이 의지를 이어받아 똑같은 일을 해내는 것과 유사성이 보인다.
근데 갑자기 오다선생님이 D는 '데미안'입니다. 라고 하면 뭔가 소설의 제목이라 어색한 감이 많다.
그래서 아마 독일어 Demian의 어원인 Demon 혹은 Daimon 같은 악마를 상징하는 단어로 말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할 수 있다.
단순한 악이 아니라, 악을 품은 것이므로 신과 인간의 결합, 천사와 악마가 결합된 것을 상징한다.
더 나아가보면 "에우다이모니아" (그리스어: εὐδαιμονία [eu̯dai̯moníaː])라는 일반적으로 행복(happiness)이나 잘 삶(welfare)으로 영어화되는 그리스어 단어를 지칭할 것 같다.
기원전 6세기 헤라클레이토스는 사람의 성품이 수호신(다이몬)이라는 말을 한다
다이몬은 인간의 운명을 지배하는 힘이고, 이것이 인간에게 불행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행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단순히 악마를 뜻하는게 아니라, 자기가 자기자신의 의지로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거기에 접두사 에우(좋은) 을 붙여 '에우다이모니아' 라고 지칭하는 것을 '최고선'이라고 하는데 다이몬을 잘 다스려 좋은 행복의 삶을 쟁취해내는 능동적인 사람을 지칭한다.

이것은 원피스에서 좋은 해적인 '피스메인'과 나쁜 해적인 '모거니아'를 구분하는 것과도 같다.
그래서 센고쿠가 '어디의 D냐?'라고 물어본 것처럼 D에도 종류가 있을 것이며
검은수염의 D와 루피의 D는 각각 '다이모니아'과 '에우다이모니아' 로 구별될 수 있다.
<또 생각나는 점들>
1. 소설 데미안은 영지주의에 가까운 신비스러운 대목들이 있는데, 원피스의 미스테리함과 매우 유사함이 느껴진다.
특히나 데미안은 꿈과 자기성장에 대한 소설이다.
북극에 가려면, 내 존재가 그 소망 하나로 가득 차 있을 정도로 강렬하게 원해야 하는 거야. 일단 그렇게 되면, 네 내면에서 우러난 명령은 시도만해도 쉽게 이뤄질 거고, 이후로 넌 네 의지를 훈련 잘된 망아지처럼 다룰 수 있지.
이처럼 원하는 꿈에 대한 달성을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보며 의지의 영역으로 보는 것으로 보아 루피의 강한 신념에 빗대어 볼 수 있다.
2. 샹크스의 패기 개념이 나온다.
매번 신부님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거야. 거의 모든 사람은 그 시선을 못 견뎌. 왠지 불안해지는 거지.
만약 네가 누군가에게 뭔가를 관철시키고 싶다면 상대방의 눈을 흔들림 없이 응시해 봐.
이 대목에서 샹크스가 바다괴물에게 시전했던 또렷한 패기가 생각난다.
원피스에서 나오는 패기는 모두 간절함과 흔들리지 않는 의지에서 나온다.
상대가 흔들림이 없다면 내 의지를 관철시킬 수 없기 때문에 포기해야하는 것이며
내 의지가 더 흔들림 없다면 내가 이긴다.
즉 이러한 '기' 싸움이 실제할 수 있다는 점을 아마 유명 소설중에 최초로 언급된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3. 불가능한 하늘섬에 대한 믿음과 관련된 대목이 나온다.
그리하여 동경이 절정에 달한 순간 그는 별을 향해 허공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그 도약의 순간,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인데!" 라는 생각과 함께 바닷가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는 사랑하는 법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도약의 순간에 그가 소망이 이루어질 거라는 강한 신념을 가졌더라면, 그는 하늘로 솟구쳐 올라 별과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믿으면 되고, 믿지 않으면 안된다.
4. 이상한 공동체를 긍정한다.
... 마음이 여린 사람들, 새로운 소수 종파의 신봉자들, 채식주의자들까지 다양하다.
이들과 우리는 각자가 타인의 비밀스러운 삶의 꿈을 존중한다는 것 말고는 어떠한 정신적인 공통점도 없었다.
군인은 군인끼리, 지도자는 지도자끼리 모여 단하나의 목표를 추구하는 공동체를 비판하고,
각자가 가진 꿈을 이루기 위해 모여진 공동체를 긍정한다.
이런 모습에서 밀집모자 해적단의 동료들이 각자의 꿈말고는 딱히 관심없는 점이 떠오른다.
"각자를 위한 진정한 천직이란, 자기 자신에 도달하는 단 한가지 뿐이다."
한명한명이 자기자신이 되기위해 자기 내면에서 솟아나오는대로 살아가는 것.
그러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을 세상은 없애버리려고 노력하지만
D의 의지를 가진 일족이 그것을 보존하기위해 목숨을 걸고 있다.
그들이 보존하기 원하는 것은 만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큰 꿈, 우정, 사랑, 호기심, 용기와 같은 인간적인 것들이다.
데미안 책은 다른사람을 도울 필요가 전혀 없고
오직 자기자신에 도달하는 것만이 지상목표라고 말한다.
닥치고 자기자신의 욕망에 달려나가는 '명랑함'을 가진 원피스 주인공들의 태도와 닮아있다.
도달하는 자기자신이란 모든 D의 의지가 합쳐진 커다란 것이다.
여러가지가 합쳐져있으므로 비로소
나는 내 할일만 잘하면 되는 것이다.
도움을 받고 있으므로, 믿어도 된다.
큰 압박감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같이 일하고 있다.
나는 그들의 목표이므로 내 안에 있는 것을 드러내도 된다.
그 때 너는 내면에 귀를 기울여야해.
그러면 내가 이미 너와 함께 있음을 알게될 거야. 알겠지?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데미안은 사라졌지만, 싱클레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꺼낼 수 있는 훨씬 더 가까운 내면에 자리잡았다.
결국, D의 일족들은 죽어도 한명한명의 내면에 자리잡아 살아있다.
히루루크가 말했듯 죽어도 죽은게 아니라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어진다.
그래서 죽을 떄 웃을 수 있게 된다.
그들을 꺼낸다 라는 것은 엄청난 힘이다.
나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맥맥이 이어진 수많은 사람들을 꺼내는 것과도 같다.
자기자신이라는 단어가, 개인에서 셀 수없이 수많은 공동체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현실의 외부에 있는 70억 인구에 비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고로 답은 반드시 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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