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점에 대해>

1. 둘다 원하는 것을 가지고자 하는 욕망을 철저하게 가지고 있다. 매사에 긍정적인 사고나, 삶에 대한 믿음과 같은 착한 척하는 허접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둘다 해적이다.

2. 취향이 확실하다. 1번조건과 같은 선상에서 맛있고 맛없는 것에 대한 것이 확실하다.

3. 삶이나 세상에 대한 믿음이 아닌 자기자신의 꿈에 대한 믿음이 있다. 인간의 꿈을 믿고 추구한다.

4. 삶이 알아서 해결되고 잘될거라던가 꿈꾸기만 하면 이루어진다는 미친생각이 아닌

실패하면 죽는다는, 승부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뭔가를 잘 하기 위해 노력하고 꿈을 향해 간다. 실패했을 때 그 죽음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다.

5. 여유가 있다.

검은 수염은 루피가 하늘섬으로 가버려서 눈앞에서 놓쳤을 때도 호탕하게 웃으며 운명을 신뢰한다. 또한 어떻게든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루피는 죽음에 대한 여유가 있다. 자기가 언제든 죽어도 웃어버릴 수 있는 이상한 여유가 있다. 

6. 둘다 자기마음에 너무나도 솔직하고, 인간적이다. 선악 따위를 크게 구별하지 않으며 앞으로 나아가기에 강해진다.

 

 

< 끌어당김의 특성 : 어둠어둠 열매 >

1. 선 고통의 특성

검은수염은 흰수염 배에서 몇년간 부하로 생활하며 침착하게 욕망을 항한 기다림을 행한다.

즉 어떠한 사건도 벌어지지 않았음에도 욕망에 의해 먼저 스스로 고통을 시작하고, 때가 왔을 때 가해자가 되어 사건을 저질러버린다. 

어린시절에 잠을 못자고 눈물로 우울하게 지냈다는 스토리 또한 같은 선후 관계를 가진다.

 

2.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내는 특성

모든 것을 계획하고, 참아내고 결국 이루어내버린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힘을 쌓아서 기존에 더 강하던 상대도 찍어눌러버린다.

그 상대를 찍어누를 때 어떠한 도덕적 관념도 없는 것은 사악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승부의 책임을 받아들인 그에게 감히 치사하다고 말할 수 없다. 애초에 모든 것을 혼자했기에, 도덕적 관념따위를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받은 것이 없기에 줄것도 없는 것이 당연하다.

 

3. 시간에 대한 여유

어떻게든 그것을 달성하기만 하면 된다는 

자기자신을 아주 철저하게 감싸고 모든 기회를 주고자 노력하는 무한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어떻게든 자기를 기다려주고, 어떻게든 얻어내겠다. 나에게 좋은 것을 주겠다.

그 것은 살아가고 강해질 수 있는 어마어마한 동력이 되는 것이 분명하다.

 


< 내맡김의 특성 : 고무고무 열매 >

1. 후 고통의 특성

루피는 원래 강하고 천진난만한 아이다.

먼저 고통을 받지 않고 기본적으로 즐겁게 여행하다가 강한 적에게 패배 후 나중에 고통을 받게 된다. 마치 피해자가 된 것 처럼. 그로인해 이야기가 생기고 더욱 큰 에너지를 발휘시켜 강해진다. 그건 마치 고무가 응축했다가 다시 튕겨져 나가는 것처럼 힘을 모아 앞으로 나아가는 올바른 메커니즘을 형성한다.

 

2.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는 특성

루피는 어렸을 때부터 가프에게 수련을 받고, 죽을 위기에서 아빠찬스를 사용해 살아나고, 에이스의 도움을 받고, 나중엔 레일리에게 특별과외도 받는다. 동료들의 신뢰를 받고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공공의 이익과 도덕과 도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3. 죽음에 대한 여유

그것이 달성되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죽음에 대해서 관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목이 달아날 상황에 웃는 장면은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그 여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욕망에 따라 부딪힐 수 있게 할 것이며 내일이 아닌 오늘 집중해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

1번 특성을 만들어내서 혹시라도 살아남았을 떄는 계속해서 강해질 수 있는 방식을 만들어낸다.

 

 

<결정적인 차이점>

결핍으로 시작했느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내가 부족했기 때문이 었다면 검은수염처럼 끌어당긴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그게 너무 재밌고 맛있어서였다면 루피처럼 내맡긴 것이다.

 

루피는 왜 해적왕이 되고자 추구하지만, 그것이 중간에 실패로 끝나도 상관이 없는가?

이미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해적왕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 해적왕을 추구하기 시작할 때부터 누리고 있다.

그냥 배하나 구해서 혼자 바다로 나가버린다.

 

그 행위는 무모한 짓이 분명하고 죽음을 불러오는 것은 분명하다.

그 행위 그 자체는 해적왕만이 할 수 있는 행위다. 

그정도 강한 사람만 할 수 있는 행위를 루피는 그냥 지 몸을 던져버린 것이다.

잘못되면 죽는 것이지만

일단 도박과 같은 그 행위를 통해서 죽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해적왕이 되지 않더라도, 해적왕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미 누린 것이나 다름 없는 상황을 맞이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정확히 준비되고 갖춰졌을 때 시도하는 검은수염과 정반대로

루피는 그냥 시작해버림으로써 그 즉시 해적왕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죽음의 시도가 가능한 이유는 자유를 누려보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해적왕의 아들이 형이고 영웅 가프에게 수련받으며 키워졌기 때문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너무 당연스러운 자유와 위닝 멘탈리티가 흡수되어 그 자유의 맛을 느껴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또 맛보기위해 당연히 시도 해버린다.

그것이 종결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누렸으니 웃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결핍이 아닌 이미 가진 것에 대한 감사로 시작할 때 내맡길 수 있다.

 

바다에 내 몸을 내맡겨버리는 자유. 

이미 나에게 힘이 있으며 

그 자유는 이미 누려봤기에 

그 내맡김에서 오는 고통과 스토리, 사람들과의 유대가 결국 힘을 불러일으키고 강해지는 것이다.

 

루피처럼 바다에 홀로 맨몸으로 나가는 것이 내맡김이라는 것이다.

거기에서 죽음의 위기를 겪어나가면서 강해지는 것이 최고의 삶의 태도라는 것이다.

무슨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다보면 갑자기 우주가 선물을 준다는 나약하고 찌질한 생각이 아니다.

 

받은 것이 있기에, 그것을 사용한다.

사용을 해봤기에 즉 혜택을 누렸기에

고통이 조금 추가되더라도 상관이 없는 상태. 민감하지 않은 상태.

뭔가를 가지는 것을 추구하는 마음이 줄어들고

뭔가를 줄 수 있을 정도로 충만한 마음의 상태.

 

그 상태는 끌어당김과 비교할 수준이 아닌 

말도 안되는 좋은 것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 끌어당김의 역할 >

끌어당김은 실제로 가능한 마법이지만 그것이 나의 결핍을 채워주지 못하는 언제나 허접한 결말로 마무리 지어지는 특성을 지닌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결핍의 에너지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도는 확실하게 알려준다.

방법이 잘못되었을 뿐이지 방향은 너무나도 확실하다.

결핍을 충족시키려는 욕망을 인정해주는 것 또한 쉽지않은 어려운 일이다.

 

결핍을 선택했기에 또다시 돌려받은 그 결핍으로 인해 

더 커진 에너지는 다시 감사의 에너지로 돌아가도록 만든다.

결핍에 결핍을 더하다보니 그 욕망에 대해서 더욱더 간절하게 되고

결국엔 올바른 방법을 찾아나서도록 다듬어진다.

 

검은수염은 에이스를 죽이게 만들어 루피가 수련을 하도록 만들고 현실감각을 깨닫게 만든다.

그정도로 사악한 짓거리를 하기에 루피에게 눈물겨운 스토리가 생성된다.

 

만화에서는 극단적으로 두캐릭터가 나뉠 뿐이지만

모든 사람의 내면엔 결핍을 충족시키고자하는 마음과, 감사의 에너지가 동시에 있다.

만약 검은수염의 역할이 전무하다면 그저 감사의 에너지만이 남는다면 더이상 성장은 없다.

라이벌의식이 사라지면 아무리 내맡김의 자세로 있는다고 하더라도 그저 착하고 목가적인 삶을 사는 것에 불과하게 된다.

결국엔 '결핍이 있음에도 내맡기는 상태' 가 필요한 것이지

다시말해 '죽음이 있어도 살아가는 상태'가 필요한 것이지

그저 감사하고 기쁜 것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다선생님이 루피보다 검은수염을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로 뽑았던 것처럼 그 매력과 시원시원함은 루피의 자유와는 종류가 다르지만 또다른 쾌감을 만들어서 삶을 이어나갈 수 있게 한다.

어떤 업계에서든 1등과 2등은 이런 방식으로 갈리는 것 같다.

메시와 호날두를 보고있으면 루피와 검은수염이 어느정도 매칭되어 보인다.

메시가 최고의 축구선수인건 확실하지만 가끔은 호날두의 시원시원한 플레이가 보고싶은 것도 사실이다.

호날두가 인성이 쓰레기인건 분명하지만 예전에 나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플레이들은 고마운 것이 사실이다.

 

 

누구나 부족한 상태로 태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누가 아이때부터 엄청난 철학을 가지고 올바른 감사의 삶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아무리 좋은 부모와 스승이 있어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가장 먼저 '끌어당김의 능력'을 사용하려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

하지만 누가 더 빨리 내맡김의 상태로 들어가느냐가 관건이다.

부모와 환경이 잘 갖추어지면 좀 더 빨라질 수 있겠지만 결국엔 본인에게 달려있다.

 

내맡김의 상태가 되기 위해선, 미친듯이 끌어당겨봐야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 엄청난 결핍이 생겨나야만 

자기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결핍이 생겨나야만 내맡김의 상태로 들어갈 수 있다.

끌어당김이 있기에 내맡김이 있을 수 있다.

끌어당김도 정답의 과정이다. 

아무리 내맡김의 상태에 있어도 중간중간에는 조금씩이라도 끌어당김의 능력을 사용해야할 것이다.

 

 

<결론>

결핍의 에너지가 아닌 감사의 에너지를 사용하자.

어렸을 때부터 무엇이 부족했는지에 대해서 따지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무엇을 잘했고 좋았는지 생각해보자.

 

여기서 끝나면 이 글은 그냥 '긍정적으로 살자' 라는 쓰레기 교훈을 가진 글이 된다.

부족한 결핍이 있는데 눈을 딱 감고 좋은 부분만 선택적으로 볼 수는 없는 일이다.

보기만해도 분노스러운 사람을 긍정적으로 보고자 노력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한단계 더 나아가

내가 잘했고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기 위해

내가 결핍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쳤던 나를 인정하자.

그 사악한 검은수염과 같은 존재를 인정하자.

그 단점과 고통 자체가 필요했던 것으로 해석하자.

그것들은 보물을 찾는 실질적인 단서가 되며, 단 하나도 틀리지 않은 나의 솔직한 욕망이었던 것을 인정하자.

 

끌어당김의 법칙의 과정속에서 살았던 나를 부정하지 말자.

그 고통의 과정속에서 싫었던 것은 싫었던 것이고

좋았던 것은 좋았던 것이다.

 

쓰레기 분리수거하듯이 싫었던 것은 버려내고

좋았던 것만 추려내 탈탈 털어서 씻어서 재사용 하면 되는 것이다.

 

즉 다시말해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통해서 결핍을 해결하는 목표를 가지는 것이다.

돈을 벌려고 노력했던 것이 잘못된게 아니라, 올바른 내맡김의 방법으로 돈을 벌자는 말이다.

 

 

결국 그 끌어당김의 삶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며 재사용하는 것이 내맡김의 삶이 아닐까?

끌어당기다가, 어느 순간 내맡김으로 전혀 다른 세계로 도약한다.

계단식으로 성장하는 그런 삶의 상관관계 속에 끌어당김과 내맡김이 동시에 존재해야한다.

방법만 살짝 틀어내면 되는 것 뿐.

완벽히 잘못되었던건 단 한줌도 없다.

 

앞서 검은수염과 루피의 취향이 극단적으로 갈린 한장면 처럼, 

끌어당기는 존재는 마치 그림자와 같이 정반대에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검은수염을 악한 것으로 취급하며 전혀 다르고 잘못된 존재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저 한번 뒤집기만 하면 정답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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