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 235화

 

 

불가능을 가능하다고 믿으며 나아가는 행동을 꿈을 꾼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모든 꿈이 가능하고, 모든 불가능이 가능한 것일까?

꿈을 논하고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자 하는 만화 원피스에서조차 '불가능한 불가능'에 대한 문제가 분명히 나오고 있다.

 

조선 전문가들의 진단에 의해 메리호가 더이상 항해할 수 없다고 하자 우솝은 메리호에 애착을 느끼고 그 결정에 반대한다.

우솝은 배에 동료애를 느끼고 꿈을 꾸는 것이다.

원피스에서 이장면까지의 여정의 모든 불가능은 꿈을 꿈으로써 가능해졌고 말도안되는 이야기가 벌어졌다. 그리고 그 '가능한 불가능'과 함께한 것 또한 메리호와 함께였다.

그럼에도 여기선 '불가능한 불가능'에 장면이 나온다.

배의 용골이 부러진 것은 단순히 꿈을 꿈으로써 불가능한것이 가능해지는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 영역인 것이다.

아무리 꿈의 여정에 함께한 것이더라도, 아무리 그것이 소중하더라도 꿈을 적용할 수 없는 대상이 있다.

 

'동료라 해도 사람과 배는 달라!' 라고 외치는 루피의 말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

생명은 무언가를 합치고, 생산해내고 창조하는 능력을 지닌 대상이다. 

무언가가 쌓이면서 그것이 복리로 증가하기도 하며, 잉여적이며 창발적인 무언가가 생산되는 상승의 원리로 되어있다.

하지만 무생물은 그렇지 않다.

전문가에 의해 내려진 과학적인 사실만큼은 감히 꿈의 논리로 대응해서는 안될 일이다.

과학을 불신하고, 진실을 희화화 하는 신자유주의적인 태도는

꿈을 믿으며 자기자신을 믿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흉내내려고만한 기생적인 태도다.

 

그런 자유와 과함, 솔직함 등을 적용해야하는 대상은 분명하게 따로있다.

그것을 무분별하게 적용하는 사람들을 '좌파'라고 말하는 것이다.

뭐든지 가능하다는 것은 그 범주가 분명히 올바른 테두리로 제한되어야만한다.

 

어떤것은 불가능하고, 어떤 것은 가능하다?

둘 중에 어떤 것이 맞냐고 칼을 들이밀며 협박하거나

둘다 맞다면 자기마음대로 적용해도 된다고 생각해버리는 생각의 미끄럼틀 타는 어린아이들이 있을 수 있다.

 

정확히 말해보자.

생명은 가능하고

무생명은 불가능하다.

 

영화 '머니볼'의 주인공처럼 선수로써는 실패할 수 있지만, 그 사람 인생 전체에서 가능을 믿고 나아간다면 감독으로써 성공할 수 있다.

인생 전체는 생명이라고 볼 수 있지만

선수로서 성공하고자 하는 아주 작고 한계가 있는 범주는 무생명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가능하지만

대상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절대적으로 미친듯이 가능하다고 믿어야만하고

대상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믿고 과학적인 사실을 따져봐야만한다.

 

 


 

<최악의 상황을 상상한다는 것>

 

만화 원피스가 있기에 나는 '불가능을 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신자유주의가 나대고 춤추며 진동하는 지금 시대에서 그런 것은 이미 자동적으로 잘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상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것'이 필요하다.

 

즉 꿈의 마음을 적용할 올바른 대상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대상에 대한 과학적 접근, 사실적 접근, 현실적 접근이 영점조절을 잘 할 수 있게 해준다.

방아쇠를 아무리 잘 당겨도, 조준을 잘하지 못하면 쓸모가 없다.

 

<최악을 상상하는 것>이 바로 그 영점조절이다.

내 인생과 전체적인 것에선 꿈을 꾸지만

그 꿈과 희망, 최고를 상상하는 것을 위해서 그것과 정반대되는 최악을 상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다 아무거나 하라는게 아니라, 생명에는 꿈을 꾸고 대상에는 최악을 상상하는 것이다.

엑셀과 브레이크가 둘다 필요하다고 말하는게 둘다 동시에 밟으라고 말하거나 아무거나 막 밟으라는 말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팀페리스가 말한 것처럼 최악을 상상하는 것은 고대의 스토아학파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 방법은 정말로 완전히 무너졌을 떄를 상상해보고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해가되는지 감정을 느껴보는 것이다.

먼저 매를 맞으면 적응이 되고 예상가능해지기 때문에 덜 아프게 느껴진다.

백신이 그러한 작용을 하는 것처럼 생각이라는 주어진 스킬을 통해 최악을 상상해야한다.

내 인생 전체가 아닌, 아주 단기적인 하나의 행동이나 사건등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 아웃풋은 3가지다.

1. 생각보다 별로 아프지 않을 것같아서 실행하게 된다. 그리고 실제 상황에서 데미지가 적어진다.

2. 생각보다 아파서 플랜 B를 준비한다. 플랜 B로 인해 현실에서 더 잘 대응할 수 있게 된다.

3. 생각보다 너무 아파서 다른 방법을 고려한다. 

 

결국 어찌되었던 '불가능'을 피하게 되고 '가능'한 방법을 찾아서 방향을 수정하도록 된다.

'불가능한 불가능'을 분명히 생각하고 판단한 결과로써 '가능한 불가능'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 메커니즘을 생각해보면 단순히 꿈을 꾸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틀렸다는 걸 알 수 있다.

단지 세상은 어떻게든 하나이상의 길이 있다는 것 즉 가능한 불가능이 있다는 것 하나만이 진실이고

그것을 찾아나서는 건 현실의 두다리와 최악을 상상하는 방법이다.

방법과 진리가 만나서 두가지 모두 윈윈하는 관계가 된다.

불가능에 비판적인 사람은 결국 가능으로 옮겨가고,

가능에 취한 사람은 불가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기분좋음, 꿈을 꾸는 듯한 상상을 하고 이루어진듯이 상상하는 것은

그 최악의 상상의 프로세스를 끝낸 사람에게 주어지는 결과물들이다.

그 해야할 일을 하지 않으면 기분 좋으려고하다가도 옆에서 태클이 들어와서 기분이 잡쳐진다.

할 일을 하면, 기분 좋은 것이 유지되고 증폭된다.

인위적으로 기분 좋음을 위해 쇼핑을 하거나 명상을 한다고해서 좋아지는게 아니다. 매우 일시적이며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더 크다.

 

꿈을 이룬 사람은 꿈꾸듯이 산 사람이다.

다시말해 최악을 대비함으로써 그 결과인 기분 좋음을 유지한 사람이다.

절대로 항상 웃고 착하게 사는 사람이 아니다.

걱정이 되면 걱정을 하자.

뭔가 안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으면 그것에 대해서 분명히 생각하고 대비를 하자.

 

메리호는 결국 바다 속에 잠들게 되지만, 우솝이 생각한 동료애는 틀리지 않았고 기억에 남게 된다.

<불가능한 불가능> 또한 <가능한 불가능> 속에 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착각한 것도 큰 잘못이 아니고, 가능을 불가능하게 본 것도 큰 잘못은 아니다.

결국 올바른 조율이 되면 그만이다.

현실은 꿈에 포함되어 있기에 그 현실은 차가운 존재가 아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최악을 상상하는 것, 그것이 꿈을 꾸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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