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부터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온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부럽다.

하나를 선택하고 관철해 나가는 것 또한 엄청난 용기였을 것이다. 수많은 유혹이 있었겠지만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꿈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할까?

꿈이 없었던 사람의 입장에서 하나를 정해놓고 열심히 힘들게 했다며 눈물흘리는 사람들을 보면 감동적이기도하지만 기분나쁠 때 보면 솔직히 같잖다.

나는 뭐 애초에 없는데? 

나는 좋아하는게 없었는데?

평범했고, 적당히 학교 다녔는데?

 

평범한 것도 지옥같을 수 있다.

차라리 나도 힘들고 싶다.

나만의 분야나 환경이 있으면 좋겠다.

열심히 할 무언가 조차도 없다.

 

 

그런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해야한다.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을 구별하면 된다.

 

특수한 사람들은 운동선수들, 부모가 특별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케이스, 그리고 옛날 부모세대 때 산업발전을 이뤄야만 했던 시대적인 배경 등이 있다.

열심히 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열심히 하냐, 열심히 하지 못하냐로 나뉘는 '특수한 사람들'과 일반적인 사람은 분명히 다르다.

국영수 따위 쓸모없는 것을 열심히 해야하는 것 또한 피눈물 나게 운동선수가 되는 것보다도 더 지옥같은 일일 수 있다.

그것을 열심히 하는 순간, 함정에 걸려서 거세된 인간이 되어버린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열심히 할 가치가 없는 것을 얼마나 열심히 하지 않느냐에 따른 게임이 된다.

얼마나 포기를 잘하느냐에 달려있다. 얼마나 적당히 하느냐에 달려있다.

 

 

즉 어렸을 때부터 특수한 꿈이나 목표가 없다는 것은 곧

그 자체로써 '범용적인 꿈'을 꿔야한다는 뜻이 된다.

 

어렸을 적에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셔서 의사라는 꿈을 가지게 되는 어떤 한 소년의 이야기. 영화나 만화에 나올법한 클리셰다. 하지만 올바른 방향임은 분명하다.

병이라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은 누구나 납득가능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꿈이없다는 것은 어떤 고통일까? 어떤 병일까?

 

꿈이 없다면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다.

도전과제가 없고 할게 없고 한가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것이 어쩔 땐 좋게 작용하기도 하지만 지옥과 같은 삶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꿈이 없는 사람이 가진 고통이란 ->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고통이다.

없을 무의 고통이다.

 

그것에 대응되는 해결책은 바로 '많은 것을 하는 것' 이다.

한가지를 열심히 하는게 아닌 이것 저것 여러가지를 많이 다양하고 스피드있게 왔다갔다 할 수 있는 범용성이 곧 꿈이 없는 사람에게는 해결책이 된다.

일반적으로 살아서 얻은 고통은 일반적으로 해결해야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프로그래밍보다 디자인은 범용적이다.

여러가지를 하며, 색깔이 많고 많은 곳을 왔다갔다 한다.

 

기본적으로 직업 중에 '뭐든지 하겠다' 라는 스탠스를 가진 것들이 꿈의 대상이 된다.

마케팅, 디자인, 기획, 인사관리, 영업 등이 일반적인 꿈을 가져야할 사람들이 대상으로 삼아야한다.

무술을 수련해서 범인을 상대해야만하는 경찰보다 협력과 어떻게든 움직이는 성실성이 중요한 소방관을 해야한다.

여성들이 당연히 일반적인 사람이 많기 때문에 여경의 숫자보다 여자 소방관의 숫자가 많아아햐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이런 것들은 아무것도 없기에, 아무것도 없어야만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직업들이다.

일반적인 직업은 오히려 특수한 직업보다 높은 위치에 갈 수 밖에 없다.

가장 높은 위치인 대통령은 누가 되는가? 일반적인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

여러 사람을 아우르고 말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런 능력은 너무나도 일반적이다.

 

 

모든 곳에 쓰이는 일반적인 능력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겨룬다.

펜싱선수는 펜싱 기술을 배운 선수들끼리 싸우지만

일반적인 사람은 모든 일반적인 것과 싸운다.

어떻게 보면 더 경쟁이 심하고 어려운 삶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모든 것을 꿈꾸는게 당연하다.

그 모든 것은 정말로 햄버거도 먹고 피자도 먹겠다는 말이 아니라

중의적인 의미에서 모든 것을 의미한다.

햄버거 한입, 피자 한입 먹겠다는 거지, 정말로 햄버거와 피자와 짬짜면을 모두 배 속에 반드시 넣겠다는 말이 아니다.

다양한 것을 채워넣어야만 만족할 수 있다.

 

아무것도 없었다는 의미는 좋게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처음인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라고도 볼 수 있다.

또한 어떠한 상황에서도 상관없이 어느정도 선에서 버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감당해야하는 곳에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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