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죽는다면 뭘 할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생각해보려면 어렵다.
내일 죽으면 햄버거를 먹어야하는지, 충분히 잠을 자야하는지 고민된다.
굳이 생각할 필요 없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을 위해 대신 생각해드리겠다.
사람은 내일 죽는다면 당연히 내가 실패한 것을 다시 도전하자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즉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해체시키고, 미안했던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서 움직이게 된다.
반드시 그렇다.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되고싶지않은건지 모르겠으나, 후회를 남기고싶지 않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만족하고싶은 것이 인간이다.
햄버거를 아무리 처먹어도 만족하지 못한다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미션, 처리하지 않은 문제가 있다는 신호다.
만족할 때까지
죽음이 눈앞에 나타날때까지
내면아이가 제발 봐달라고하며 인생은 나를 괴롭힌다.
당연하고 당연하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으니
내가 고통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고통을 고통인채로 놔뒀으니 아프기 마련이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고통이 있기 때문에 아프다.
내가 내일 죽는다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뭐 그대로 놔둬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쫄보새끼처럼 아 한달만 있으면 죽는구나. 한달만 참자. 빨리 한달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보통의 인간이라면 그 한달이라도 재밌게 살고자 할 것이다.
남아있는 목숨이 있는데 어차피 죽음이 확정적이라면
조금은 소모적으로, 위험하게 사는것이 당연하다.
죽음을 봤을 때 비로소 게임 캐릭터처럼 자기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있다.
자기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타자화되었을 때
오히려 그 자기자신이 받는 고통에 대한 연민이 생긴다.
마치 남의 입장에서 조언을 하듯
'야 그거 그냥 빨리 해결해버리면 되잖아. 너 죽던말던 원하는거 하면 되잖아' 라고 쉽게 말해버린다.
죽음 = 즉 고통의 사라짐
고통이 사라지면 인생은 자유롭다.
뭘해도 고통이 없다면 인간은 반드시 바꿀 수 없이 자리잡고있는 기억의 고통을 해소하고자 한다.
어떤학생이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었다가 슈퍼마리오의 무적버섯을 먹었다면 그 학생은 무엇을 할까?
대체 무엇을할까?
갑자기 최고의 아이돌이 되겟다고 결심할까?
아니면 죽기전까지 햄버거를 먹고자 결심할까?
너무나도 물리학적으로, 너무나도 수학적으로
학교폭력에 대한 복수를 할 것이다.
그게 물리적인 복수가 되었던, 조금 착하게 제도를 개선하도록 만드는 것이 되었던 내 알빠아니다.
어찌되었던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것이다.
학교폭력을 당한 사람이 아닌, 학교폭력을 당했다가 그로인해 어떤 행동을 한 인물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때 마음은 진동하지 않고 고통이 일어나지 않는다.
괴로웠던 과거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바뀌게된다.
겨우 죽기전에 남은인생을 고통이 없는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해서 개고생하면서까지 복수를 해야하는가?
복수를 시작하는 그 때부터 사실 고통은 크게 완화된다.
물론 힘들지만 인생이 조금은 재밌어진다.
해소되지 않는 답답한 마음의 고통이 아닌 눈에보이고 컨트롤 가능한 몸의 고통은 참을만해진다.
그 이유만으로 해야할 명분은 충분하다.
한달 뒤에 죽더라도, 나는 나를 재밌게 하고 싶도록 설계되어있다.
조금이라도 마음편하고 행복하기위해 설계되어있다.
실패에 대한 복수
고통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 문제를 없던것으로 하는 것.
이미 사업가들이 하고 있었던 일. 그래서 그들이 가장 높은 위치의 삶을 산다.
행복하고자하는 욕망. 재미있게 살고자하는 욕망.
그 인간의 유일한 작동원리를 거부할 정도로 오만해져선 안된다.
나는 나를 사용할 뿐이다.
죽음이 눈앞에 있어야만 내 몸뚱아리가 내가 아닌것을 알고 나는 나를 사용할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를 가장 재밌도록 사용한다.
나를 고통스럽게 한것에 대해 가장 기만적인 복수를 준비한다.
가장 감동적으로 살도록 만든다.
만약 죽은 뒤에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 아무것도 없다면
굳이 살아있을 때 복수를 하지 않아도 관계없기는 할 것이다.
나에 대한 연민이 없다면 복수를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 사실조차 무시해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없기에 아무것도 없다는 태도를 가진다면 참 너무나도 공허하다.
뭘해도그만 당해도그만인 신자유주의의 생각을 가졌다면 너무 무섭다.
하지만 적어도 세상의 설계자가 만들어놓은 일종의 게임 포인트
즉 행복과 편안함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모든 것이 공허하더라도 세상이 정말 아무것도 없는 허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 포인트 따는 재미라도 느껴야하지 않겠는가?
그 허무하기 때문에서라도 일단 규칙을 만들어 놓은 사람을 따라야하지 않겠는가?
그것 말고는 할것도 없으니까. 어짜피 갇혀있으니까.
내가 나의 고통을 직시하고 있을 때.
마치 두다리로 직립보행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인간으로 살 수 있다.
실패한 것에 도전할 때만 비로소 마음이 생긴다.
먼저 고통이 생성된 곳이어야만한다.
농구 골대가 생성된 곳에 슛을 쏴야한다.
그래야 이 게임은 점수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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