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오후 3시에 영화 <인셉션>을 다시 보고있는 내가 조금 한심한 마음이 들어 불안했지만 끝까지 다보게 됐다.
죄책감에 지루한 호텔 격투씬은 넘겼지만 영화 내용까지 꿈속에 꿈속에 꿈에 들어가니 머리가 정말 혼란 스러웠다.
평일 오후 3시에 놀고있는 나는 꿈속에 살고 있는 것일까? 현실은 어디일까?
그런데 이미 열린 결말이라고 알고있었던 엔딩이 이번에는 그 어떤 때보다 명확하고 확실한 엔딩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지금 쌓여가는 눈 속 세상처럼 환한 마음이 생기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쯤 장면에서 디카프리오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내 : 진짜 믿는게 뭐야? 뭘 느껴?
디카프리오 : 죄책감. 죄책감을 느껴.
디카프리오 : 뭘하든 아무리 절망적이고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죄책감은 항상 존재해.
디카프리오 : 내게 진실을 알려주지.
아내 : 무슨 진실?
디카프리오 : 당신이 현실로 돌아온 후에도 진짜 세상을 부정했지
디카프리오 : 진심으로 당신이 진짜라고 믿고싶지만 현실에서의 당신 성격과 장단점이 전혀 보이지 않아.
디카프리오 : 당신 좀 봐.
디카프리오 : 당신은 내 진짜 아내의 그림자일 뿐이야.
디카프리오 : 현실의 당신은 내게 최고의 아내였지만 이곳에 당신은 한참 부족해.
디카프리오는 아내를 잃고 이 장면 전까지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지만 바로 여기서 꿈과 현실을 구분해 낸다.
죄책감을 느끼는 것 자체가 여기가 꿈이라는 확실한 진실을 알려준다.
우울하고 현실을 부정하는 아내는 개성이나 장단점을 잃고 매력을 잃은 아내이다. 그런 아내는 '한참 부족하다' 라고 선언하며 그 아내를 꿈이자 가짜라고 규정한다. 자살해버린 아내는 가짜에 불과했기에 자기자신에 대한 죄책감이나 혹시 내가 꿈을 꾸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바이러스에서 완전히 이겨내는 순간이다.
디카프리오가 죄책감을 느끼듯이 부정적이고 우울하며 힘든 고통을 받는 세상에 있는 것은 모두 꿈에 불과하며 매력있고 기쁘고 신나는 그런 모든 것들이 바로 현실이라는 것. 정말 놀라운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고통을 받고 세상을 비난하고 욕하며 살아가는 나의 모습은 꿈이자 가짜이다. 존재조차 하지도 않는 것이기에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없고 살아갈 수 없는 죽은 유령의 상태이다. 몸은 살아있는 척하지만 이미 사망상태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선과 악 혹은 1과 0 처럼 기쁜것과 슬픈것은 대립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허수와 실수의 차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에 완벽한 격차가 있는 다른 세상에 있는 것이다. 지금 살아있는 나와 1500년대에 살았던 사람과도 같이 말이다.
양자역학의 원리처럼 고통이라는 것은 우리가 인식하고 반응하고 바라볼 때만 존재한다. 상자를 열어봤을 때만 그안에있는 것이 나에게 들어오는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인터스텔라>에서도 같은 메세지를 전해준다.
무수한 시간과 가능성의 바다는 이미 정해져 있고 이미 다 끝난 이야기이다.
우리는 단지 그 안에서 체험을 할 뿐인 것이고 그 무한대의 가능성 중 내가 선택한 것에 따라 그저 펼쳐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 수많은 가능성 중에는 꿈이 있고 현실이 있다.
꿈과 현실의 구분은 간단하다. 이미 모든 시간을 체험한 '우리자신'이 가장 최고의 것,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기쁜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기에 그쪽으로 오라고 계속해서 메세지와 힌트를 던져주고 있다. 제발 여기를 선택하라고.
맥커너히는 ' S T A Y ' 라는 신적인 메세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맥커너히는 앤해서웨이가 눈물을 흘리며 신적인 메세지를 선택하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두번째 기회까지 날려버렸다.
사랑을 선택하라는 메세지를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큰 고통과 슬픔을 맛보며 현실에 접근조차할 수 없는 5차원 공간에 갇힌 유령이 되어버린다. 그곳은 얼마나 무서운 공간인가. 한없이 혼자인 얼마나 절망적인 공간인가.
다행히 딸은 아버지의 시계를 통해 사랑을 선택했고 그로 인해 중력 문제를 풀게된다. 사랑을 선택하면 자기자신이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문제는 풀리게 되어있는 마법같은 현실이다.
그로인해 다시 주어진 기회에 맥커너히는 고민하지않고 앤 헤서웨이를 찾으러 떠나는 사랑을 선택하였다.
그저 선택하는 것. 기쁨과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일인 것이다.
인셉션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이장면을 보고도 그저 한없이 돌아가는 팽이만 보고 이 영화의 결말이 '열린 엔딩'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는 말 그대로 꿈 속에서 살고 있었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다.
영화 내내 단한번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던 아이들이 비로소 저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얼굴을 보여주는 데도 불구하고 고상하게 고민하는 척하며 팽이에 대해 생각하는 나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유령의 상태였던 것이다.
인셉션은 완벽한 해피엔딩이다. 느낌을 가지고 현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완벽한 삶을 되찾았다.
현실이란 이렇게 꿈 속에서처럼 내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내 마음대로 할 필요도 없이 이미 나에게 최고인 것이 만들어지고 주어져 있는 공간이다.
세상이 인식하는 '현실'이라는 단어의 뉘앙스와는 완전히 다르게 현실은 그것을 선택하기만 하면 되는 아주 쉬운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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