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이란 무엇이길래 세상에서 마지막 필살기나 최종병기라고 말하는 것일까?

어떤 분야에서든 넘볼 수도 없는 격차로 정점을 찍은 인간은 '감사함'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한다.

 

그냥 생각해보면 감사라는 건 굉장히 가식적이고 무엇이든 양보하는 것이나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상징하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생각은 주입되고 만들어진 사기이다.

감사함이란 스님이나 목사님들이 하는 종교적 개념이 절대로 아니다.

거짓된 중과 목사들은 마치 모든 것을 통달한 척하면서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하고 고개숙인 척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세상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소름돋는 기만이고 오만한 태도이다.

 

 

[무언가 물건을 팔 때 이 물건의 가격을 나는 1만원 정도라고 생각한다면?]

1만 1천원 정도에 구매해가는 많은 손님들에겐 그저 그런 감정이 든다.

그런데 여러가지 이유로 7천원에 구매해가는 손님이 있다면 속에 있는 마음은 약간 금이간다.

 

그러다 이 물건의 가치를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만들어져 3만원에 사려고하는 사람이 있다면?

와!

정말 감사하다.

그 때야 말로 그 손님이 정말로 감사하고 뭐라도 더 챙겨드리고 계속해서 만나고 싶고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손님과 더 이야기하고 싶고 더 알아가고 싶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다.

왜냐면 '감사'하기 때문이다.

 

이 때 '내가 생각한 것 이상' 이 만들어지는 것은 조선에서 인삼이 만원이라면

그 인삼들을 사들여 청나라에 가서 3만원에 파는 것과 같다.

놀랍지만 분명히 인간적이고 공을 들인다면 분명히 가능한 이야기에서 나온다.

청나라에서의 고객들은 너무나도 고맙고 감사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번엔 조금 더 나아가 어떠한 이유에 의해서 만원짜리를 50만원에 산다고 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그 사람에게 과연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까?

내가 만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틀린 생각이고 어쩌면 이 물건의 진짜 가치는 70만원짜리는 아닐까?

아니면 이 고객은 왜 이렇게 멍청하지? 그냥 호구 아니야? 라고 생각이 들 것이다.

이런 상황이 한번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감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그렇다. 감사 라는건 소중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감정이다.

굉장히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이유에 의해서 느껴질 수 있는 욕망이다.

흔해 빠진 일반손님도 아니며, 1천만번에 한번 나오는 거의 없는 것과 같은 확률의 호구손님도 아니다.

그 중간에 있는 빛이 나고 소중한 어떤 작은 단위의 것이다.

한쪽이 완벽하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 중용적인 가운뎃 부분이다.

 

그 욕망으로 인해서 인간은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움직이는 힘을 얻을 수 있고 무언가를 하고 싶고 무언가를 더 낫게 하고 싶어진다.

감사라는 것은 흔해빠진 것에서 나오거나 세상 모든 것을 감사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경계가있는 어려운 것, 공을 들여야만 하는 것에서부터 나온다.

 

 

쉽게 들어오는 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로또같이 일확천금의 돈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감사함은 공짜가 아니다. 

감사함은 나에게 지속적인 이득이 되야한다. 매력적이고 매혹적이어야한다.

 

지름길 없이 한땀한땀 감사함을 만들어가고, 감사함을 느끼기위해 살아가는 그 진행중이며 계속적인 태도에서 나온다.

감사하는 삶은 스님이나 목사, 영성가들에게서 배워야하는 해탈적인 삶이 아닌, 욕망을 추구하는 삶이다.

분명하게 강해지고자 하는 의지에서 나온다.

 

모든 것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이득을 주고 나를 강하게 해주는 분명하게 감사할 것에 감사해야한다.

분명히 나를 지켜주는 그것은 생각도 하지않고 모든 사람에게 감사한다니.. 안타까워서 눈물이 나온다.

헛깨비 같은 삶을 살지 말자.

진정으로 감사하는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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