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정답은 절대로 저항을 일으키지 않는다.

빛의속도가 일정함과 동시에 가장 빠른 속도이듯
정답은 절대적으로 물흐르는 듯한 흐름을 타고난다.



싸움이 생기고 트러블이 생겼다면
내 생각이 아무리 정답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진정한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반드시, 반드시 명심해야한다.

정답의 물리적인 메커니즘을 분명하게 기억해야한다.


싸움이 일어나는 순간
아, 틀렸구나. 라고 생각하는 회로가 돌아갈 수 있도록  손댈수없는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어야만 한다.

그렇다고 나를 전면부정하며 자책을 할 필요는 없다.
정답은 싸움하고 있는 상대방과의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그 중간지점 어디다.

내가 없으면 정답 또한 존재하지 않도록 되어있다.

싸움이 일어난건 나도 쓰레기, 저놈도 쓰레기일 때일 뿐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도 정답의 열쇠를 가지고 있고, 저놈도 정답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절반 절반의 이야기다.

싸움를 회피하는 순간 정답 또한 사라진다.

싸움 속에 있어야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인간의 숙명이다.

 

사이에 정답이 있다고해서

100만원에 사려는사람과 200만원에 팔려는 사람이 150만에 극적타협을 하는 개념이 완전히 아니다.

100만원에 사려는 사람은 100만원에 사야만 하고, 200만원에 팔려는 사람은 200만원에 팔아야만한다.

 

A와 B사이에 새로운 C가 생기는 것이 정답이다.

겨울에 변기에 앉을 때 춥지 않도록 변기 커버를 붙이는 것처럼 둘 사이에 인터페이스가 새롭게 재정의 되야만한다.

 

그 새로운 C로 인해 100만원에 사려고 했던 사람은 100만원에 사게되고 200만원에 사려고하는 사람은 200만원에 사야한다.

예를들어보면 100만원 + 알파 라는 가격으로 협상을 타결하는 것이다.

그 알파를 100만원에 사려고했던 사람은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지만, 200만원에 사려고하는 사람은 알파를 100만원의 가치로 인식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뭔가 추상화되고 은유되어 숨겨져있고 가려져있는 부분의 가치판단에서 중립지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서로가 원하는 것은 무조건 빠짐없이 얻어야만한다.

다만 서로가 중요하지 않는 부분, 딱히 원하지 않는 부분을 교환함으로써 거래를 성립시켜야만 한다.

희생이지만 희생도아닌 그런 부분을 찾아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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