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iHcLUn1gEk0&ab_channel=%EB%94%94%EA%B8%80%3ADiggle

 

'제가 이길 수 있어요'가 자신감인 줄 알았는데 온전히 내가 어떤 모습을 맞이했을 때도 나를 사랑해줄 수 있었을 때 나오는게 그게 진짜 자신감이다. 라는걸 좀 많이 깨달았어요. - 댄서 리정

 

자신감이 최고인 것처럼 보이는 인물의 깨달음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정상에 있는 사람조차 더 큰 곳, 더 다양한 곳에서는 언제든지 패배할 수 있다.

승리를 확신하는 모습이 자신감일리 없다는 걸 너무나도 상징적으로 알려줘서 고맙다.

 

누구도 미래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처럼 누구도 승리를 확신할 수 없다.

누군가가 자신있고 당당한 태도를 드러내서 보이는 것은 사기에 가깝다.

자신감은 스스로 박동하는 심장과도 같아서 살과 뼈 안에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곳에서 그저 기능하기 때문이다.

드러내는 순간이 블러핑이다.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생각하기 이전단계에서 작동한다.

아무 생각 안해도 그냥 가장 먼저 선행하는 것이다.

당당한 표정이나 눈을 부릅 뜬 것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아무 표정이 없는 무표정이나 느긋한 마음에서만 기능한다. 

 

 

자신감은 실력이나 커리어에서 오는게 아니다.

외향적이며 목소리 데시벨이 큰 곳에서 오는게 아니다.

많은 경험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재능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자신감은 진심에서 나온다.

치킨 먹고싶을 때 드는 그 진심을 말하는게 아니라 너무나도 현실적이면서 객관적인 실체에서 느껴지는 마음을 뜻한다.

내가 한번 해봤으면 해 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렇게 했더니 작동하는 것을 경험해봤을 때, 그걸 다시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는 그상태가 바로 자신감이다.

100번 해봤더니 100번 되던 것을 보고 느껴지는 아무것도 없는 마음이다.

내 마음이던 주변사람이던 불안해서 미친 듯이 바운스하고 미친듯이 사람을 볶으려고해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되는데? 어쩌라고. 

 

무언가를 준비해서 나오는 마음이 아니다.

취업을 위해서 포트폴리오를 일부러 만들면서 나오는 마음이 아니다. 그 포트폴리오를 설령 몇백개를 직접 해보았다고하더라도, '취업을 위해서' 준비한 순간부터 이미 그 모든 작업은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기에 무로 돌아간다.

자연스럽게 되어왔던 모든 것에서 나온다.

나에게 있었던 것, 나의 위치에서 나온다.

누군가가 물어봤을 떄 아무런 의심없이 대답할 수 있는 거짓말이 아닌 '진짜 마음'에서 올 뿐이다.

너무나도 객관적이고 시간에 박혀서 뺴도박도 못하는 진짜 진짜 진짜 물리적이고 실체적인 모든 것에서 나온다.

내가 딸기를 먹었을 때 매번 맛있었으면 나는 딸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내가 딸기를 좋아하는 것에 자신감을 표현할 필요가 없다. 의심할 필요가 없다.

 

 

실력을 높이기위해 달려나가는 것, 내 자신감의 영역이 아닌 다른 것을 끌어들이고 선을 넘어버리는 행위는 땅없이 하늘위로 우주위로 떠올라 불안해지고 언젠가 필연히 뻥 터져버린다.

실력의 고저에 상관없이 나의 자신감에만 머무른다면 그 때 그것이 실력을 다시 파생한다.

내가 어떤 곳에 있던지 아무 상관없이 그것이 '나의 위치'이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시작될 뿐이다.

스스로 박동하기만 하면 된다.

자신감은 사용해야할 도구로써의 무기가 아니라 언제나 붙잡고 있어야할 내 집일 뿐이다.

 

 

고민하지 않고 자기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

어느 위치에 있어야하는지 아는 것.

그것만으로 편안하다면 그것은 이미 미래다. 

오지않았어도 이미 있는 현재다.

그 모든 미래를 한번에 지금 현재로 가져왔으니, 그 자신감 안에서 실력이 발휘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장자가 말하는 '니 춤 춰라'.  다른 곳에가서 춤을 배워오지말고 니 자리에서 니 춤 춰라.

내 춤 출 때 나오는 것이 자기를 믿을 수 있는 자신감이다.

자기자신을 믿을려고 노력하는게 아니라 그게 실제니까 그냥 믿게 되는 것 뿐이다.

 

 

나는 글을 쓰면서 글의 한 부분을 구성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특정 주제에 관한 책을 참조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며, 나아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필터의 기능을 한다.( 사실상 유일한 필터다 )
어떤 주제가 나 자신의 호기심을 채우거나 목적을 위해 독자적으로 참조할 만큼 충분한 재미가 없다면, 그리고 나도 이전에 재미가 없어서 참조하지 않았다면 그 주제에 대해서는 글을 쓰지 말아야한다.
그렇다고 해서 도서관이 물리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특정 주제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스스로 학습해 지식을 얻어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도서관이 유용하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일 만한 글을 통해 보상을 받는 전문가들은 더 욱 강력한 필터를 사용해야한다. 오랜 고민 끝에 여과되어 나오는 아이디어만이 받아들여질만 하다. 그리고 이런 아이디어는 도서관이 아니라 현실에서 나온다.
이제 '믿음의 약속'이라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철학적 개념을 부활시켜야 할 때가 되었다. 믿음은 말을 능가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믿음의 약속에 따라 개인적 리스크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 <안티프레질> 믿음과 용기가없다 p.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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