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brational Scale designed by Dr. David Hawkins, photo thanks to Sanctuary Wellness .

 

 

살아있는 사람 중 가장 낮은 단계는 부끄러움이다. 부끄러움이 가장 큰 타격력을 가진다.

발가벗은 느낌이고 아무런 힘이 없는 상태다. 죽기 직전 발가벗는 것이 당연하긴하다.

 

인간 중 가장 높은 단계는 감사다.

감사는 곧 나에게 있는 것에 대한 느낌이고 그것을 가졌으니 당연히 힘을 가졌다는 마음인 

empowerment 를 느낀다.

결국 그 힘들이 freedom을 가져다 준다.

 

gratitude와 appreciation 둘다 감사지만 전자를 가장 높은 감사라고 적혀있다.

제대로 알고 있지 않지만 

gratitude는 감사해서 내가 뭔가를 주고싶은 마음이고

appreciation은 누가 나한테 뭐를 줬을 때 그것을 고맙게 여기는 마음인 듯 하다.

방향이 조금 다르다.

 

 

감사일기를 쓴답시고 앞에 컴퓨터에도 감사하고, 신호등 만들어준 사람에게도 감사하면서 갑자기 어느순간 감사할게없어서 곧바로 부끄러운 상태로 곤두박질 쳐버리는 그런 개념의 감사가 절대로 아니다.

 

진짜 해야할 감사는 내가 힘을 가졌다는 느낌이다.

힘이란 가장 커야한다. 가장 높아야한다.

그렇다면 이것저것 아이패드 만들어준 스티브잡스에도 감사하고 젓가락 숟가락에도 감사한게 아니라,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단 하나에 감사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을 파생하는 가장 큰 것을 계속해서 감사하는 것이다.

 

종교에서 왜 신에게만 감사하는지 분명히 이해해야한다.

다만 종교는 저 그래프에서 1000인 신의 의식에 감사하는 것이라 이미 인간이 아니기에 그냥 말하나 마나인 죽음과 같을 뿐이다.

내가 가진 것 중, 무엇에 감사할 것인가?

신은 누구나 가졌다. 그렇기에 감사할 필요가 없는 죽음이다.

내가 가졌다는 것은 다른사람들이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어야만한다. ( 그렇다고 수학적이고 물리적으로 단 한명도 가지지 않은 것이라고만 생각해선 안되고 소수의 것, 특이한 것, 등을 고려하고 상황별로 또 두개 세개의 환경이 추상화되어 중첩될 수 있는 것임은 당연히 알아야한다. )

나의 소유물은 무엇인가? 그 중에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면 내가 가진 것 중 혹시 내가 저평가 한것은 없는가?

 

 

내가 가진 것이 있다고 판단할 땐 감사를 느끼고, 없다고 판단할 땐 벌거벗은 부끄러움을 느낀다.

있냐 없냐 존재의 문제다.

 

누구는 빵 하나에 감사를 느끼고, 누구는 가난함에 의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그 차이는 굶음의 정도에서 온다. 필요의 정도에서 온다.

40일 굶으면 빵한조각에도 감사를 느낀다.

그 빵 하나야말로 신의 원형이고 엄청난 풍족함이다. 물론 오직 그사람에게만 그렇게 된다.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네? or 반 밖에 없잖아?  

라는 예시를 들어가며 긍정의 중요성을 읊는 것들이 있다.

쓸데없는 예시를 통해 인성을 문제시 여기는 긍정마약충들의 자위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일주일 물을 안먹으면 물이 반이나 남은정도가 아니라 마치 동해바다를 보는 듯한 광활함을 느낄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에 감사해야는가? 무엇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인가?

나에게 가장 결핍된 배고픔에 대해서 그것을 해결해주는 것에 대해 감사한 것이다.

지금 내 안방 금고에 모셔둔 어떤 것에 감사하는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결핍에 감사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내 결핍은 반드시 상대적인 욕망을 이끌어 낸다.

굶었으면 밥이 먹고 싶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싶다.

 

 

자기가 가진 것이 아이패드, 맥북, 면봉, 눈앞에 화분 같은 잡다한 아이템이 있다고해서 그것에 감사하는게 절대로 아니다. 

나의 소유물들은 그저 나의 부하들일 뿐이다. 나의 동반자들일 뿐이다.

지금 상황이 나쁘고 나를 공격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정말로 지속적으로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뗴어내려고해도 뗴어낼 수 없는 나의 결핍이다.

굳이 무엇에 감사할까? 라는 생각따위 하지 않더라도 자기의 가장 큰 결핍은 누구나 자기자신이 제일 잘안다.

너무나도 잘 안다.

 

절반쯤은 이미 배가 고팠기 때문에 이미 내 인생안에 그 해결책이 있었을 것이다.

절반쯤은 내가 배가 고픈지도 모르고 내 욕망을 무시하며 살았을 것이다.

감사해야하는 것들을 찾자.

 

그 감사의 특징은 지속적이다.

절대로 뗴어낼 수 없는 결핍일 수록 더 강하게 감사할 수 있는 것들이다.

 

 

결국 인생 게임이란 결핍을 본다음, 거기에서 끝나면 부끄러움에 죽어가는 것이고

그 결핍을 해결해줄 '감사할 것'을 찾으면 최고의 삶을 사는 것이다.

감사할 것을 찾기 위해선 우선 결핍을 봐야한다.

슬쩍 들여다 봐야한다. 소스라치게 놀라더라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봐야한다.

인간으로써 가장 죽음에 가까운 상태를 가봐야만한다.

심연을 보지 못한 자는 절대로 감사할 수 없다.

감사일기를 쓴다고해서 감사할 수 없다. 얼굴에 미소를 활짝 띄우며 감사합니다! 소리높여 내질러도 감사할 수 없다.

무엇이 결핍인지도 모르고 감사할 수 없다.

누구나 가졌다.

누구나 결핍을 가졌기에 감사할 것도 당연히 세상에 존재한다.

 

 

내 문제를 해결해주는 그 감사한 것과 함께 할 때 몰입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

누구는 감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과에 집착하고 우승 트로피만이 자기자신을 증명하지만

누구는 그것 자체의 물리적 기능에 너무나도 만족하고 자기자신의 문제를 계속해서 풀어주고 있기에 우승트로피따위는 집착하지 않는다.

메시가 축구에 대해서 그러하듯 그냥 하루하루, 연습 한번이 그냥 내 문제를 해결하고 내가 가장 결핍된 것을 완화시켜주는 그런 작용을 하는 것이다.

더 원할 것이 있는가? 지금 내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는데?

남들보다 못한 순간이 있던, 아마추어생활을 하던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실상 누구에게나 있을 수밖에 없는 순간을 아무렇지 않은 듯 넘겨버린다.

인기종목이던 비인기종목이던 아무런 상관없다.

돈이 되던 안되던 상관이 없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모순적으로 그런 태도가 가장 최고의 선수를 만든다.

 

가장 두려운 것을 두렵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 신과같은 감사할 존재를 반드시 찾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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