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가는 것은 편하다.

편하다는 것은 비용이 적은 것이고, 더많은 에너지를 얻는다는 말과 똑같다.

성격에 따라 누구는 빠르게가고, 누구는 느리게 갈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느리게 가는 것이 필승법이다.

포에니전쟁에서 승리한 파비우스의 지연전략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정답이다.

이순신장군도 아군을 한명도 잃지 않기 위해 가장 유리한 곳, 가장 편안한 곳에서 싸울 수 있기를 기다렸다.

빨리 달려가며 힘들게 노력하는 것은 아군을 잃는 것과 같다. 칠천량 해전에서 169척을 말아드신 원균이 되는 것과 같다.

 

 

느리게 가면 시대에 뒤쳐지는 것이 아니냐? 먼저 선점하지 않는이상 뒤따라잡기 너무 힘든게 아니냐? 라고 말하는건 너무나도 좁은 시선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뒤따라잡을 수도 없이 빨리간 사람들이 하는 일이 결국 일반사람들을 위해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다.

그사람과 일대일 맞다이를 하고자 하는 마음 하나만 없다면, 잡아먹고싶다는 사악한 마음이 없다면 그사람은 아군이고 같은팀이 되어버린다.

세상은 점점 자동화되고 서비스화되고 단일화되고 압축화되고 연결되고 원격화되고 유연화되고 상징화되고 추상화 된다.

시간만 지나도 나에게 더 편하고 좋은 제품과 서비스들이 나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더 쉽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도구를 얻게되고, 더 편안하고 통합된 지식들을 얻음으로써 힘이 강해진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빨리감으로써 마음을 버리고, 여유를 버리고 인격을 버리면서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것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마음을 지키고, 인간성을 지켜가며 많은 사람을 품으며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다.

빨리가게된 사람조차 그전에는 천천히 제대로 느리게 쌓아온 사람일 수밖에 없다.

꼴에도 안맞게 따라가기만하면 언제나 마음을 버리고 이득을 취하는 장사치의 거래를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무슨 20대때만 할 수 있는 일, 청춘을 즐기는 일 따위의 토나오는 개념은 세상에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시간에 멱살을 잡히고 살 필요가 없다.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만 가야한다. 뭐든지 취미로 하다가 충분히 풍부하고 남아돌 때 시작하는 느낌이어야만한다.

인생게임에도 규칙이 있다.

선을 넘어서 이겨봤자 오히려 나락으로 떨어질 뿐이다.

빨리가는 것은 규칙외의 방법이다. 반칙이면서 심하게 말하면 범죄다. 자기자신을 죽이는 살인죄다.

빨리가다 실수나 우연에 의해 죽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것이 미래에 널려있다. 너무나도 풍부하고 무한한 것이 깔아져있다.

그렇기에 규칙범위 안에서 느리게 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자 너무나도 당연한 게임의 방식이다.

 

 

오늘 결과가 나오고 빠른 느낌이 들면 벌벌 떨며 심장이 쪼그라들고 누가불러도 아무말도 듣지 않은 것처럼 충격을 먹는 것이 정상이다. 

들짐승을 보고 당연히 그런 반응을 보이듯이 빠른 결과를 봤을 때도 똑같이 반응해야한다.

미래에 얻을 수많은 것들과 오늘 얻을 빠른 결과를 교환하는 것은 99% 폭락하는 코인사기를 당할 때처럼 마음이 철렁 내려앉아야만한다.

 

오늘 아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오히려 기뻐하자.

나는 최고의 방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정말로 큰 매머드를 잡으러 가고 있다는 증거다.

적당히 하고 탁 놔버리자. 일부러 의도적으로 놓아버리자.

놀 수 있다면 무조건 놀자.

시간을 끌고 계속 비벼버리자.

 

 

 


 

 

느리게 간다는 것은 생각이 아닌 몸으로 간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생각으로는 곧장 화성에 갈 수 잇지만 몸으로는 더디고 느리다.

생각보다 몸이 더 힘들까?

생각은 속도가 빠를 뿐 오히려 더 힘들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몸이 괴롭기 때문이다.

생각이 몸보다 편하다고해서 생각을 선택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게임 규칙이 몸으로 하는 것인데 생각을 해버리면 반칙이다.

느리던 빠르던, 몸으로 가는 것이 정상 규칙이라는 말이다.

잠을 제때 자는 것처럼 몸의 규칙을 따랐을 때 편해진다.

오늘 빨리 가기위해 잠을 자지 않으면 몸은 불편해진다. 

몸은 느리지만, 편하다. 그래서 멀리가고 계속 간다.

파비우스와 이순신장군님은 병사들을 마치 자기 몸처럼 생각했기에 느리고 지연되는 전략이 나올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몸으로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너무나도 상징적인 김연아 선수의 노력하는 모습은 어떻게 받아들어야할까?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라는 명언을 남긴 김연아 선수는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눈물을 흘리면서 연습시간을 무조건 채웠다고 한다.

그런데 그 모습은 몸을 편하게하고 느리게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도 든다.

몸이 불편하고 힘들어도 연습을 하는 것은 몸의 반응을 거부하고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김연아 선수는 느리게 간 것이 아니라 빠르게 달려간 것일까? 빠른나이에 성공해야만하는 세계에 있었기 때문에 빨리 달려간 것일까?

 

감히 예상해본다면 김연아 선수는 눈앞의 결과를 위해서 그런 규율을 지켰다기보다 오히려 생각을 없애기 위해, 몸을 편하게 하려고 했을 것 같다.

이순신 장군님이 군법을 지키는 것에 대해선 잔인할정도였다고 하는 것처럼 그렇다.

원균이 이길 수 없는 적에게돌격하라고 군대애게 명령하는 것과, 이순신 장군님이 군법을 지키라고 명령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1. 울돌목에서 전투를 하는 것이 가장 몸이 편한 방법이다.

2. 그렇게 하기 위해서 적군이 이곳으로 오도록 기다리고, 느리게 시간을 끈다.

3. 그런데 이 느리게 가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이 있다면, 잔인할 정도의 군법을 통해 그것을 관철한다.

 

3번 과정에서 마치 열심히 노력하고, 몸을 불편하게하고, 빨리가려고하고, 억지로 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맥락을 모르고 눈에 보이는 것만 읊조리는 사람에겐 모든 행동이 그저 이분법으로 나뉠 뿐이다.

 

 

김연아 선수가 눈물을 흘릴정도로 힘들 때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상상해보자.

'그냥 유투버 되서 먹방이나 할까? 돈 엄청 번다는데'

피겨선수가 빠른 길이고 어린나이에 성과를 내야한다고해서 그것보다 더 빠르고, 더 급진적이고, 더 사악한 방식이 없다고 생각할 수 없다.

사람은 언제나 에고에 속아넘어가게되고 유혹은 어느 곳에서라도 존재한다.

빨리 성공했다고해서 빨리 했다고 볼 수 없다.

그런 생각을 이겨내고 성공할지도 모를 미지수의 피겨선수를 계속하기로 결심한 것은 분명한 '느리게 가기'를 선택한 일이다.

그 느리게 가기를 관철하기 위해서 몸을 혹사시키는 모습이 당연한 듯 있어왔을 뿐이다.

잘 모르지만 김연아 선수도 연습시간은 최소화해서 정해진 시간을 연습한뒤 나머지시간엔 여유롭게 했다고 전해진다.

단지 그 연습시간 안에선 철저함을 지켰을 뿐이다.

 

'몸'이라는 말은 터프함이나 저돌적인 것 막하는 것, 상처를 받더라도 나아가는 것과 같은 말이다.

[ 몸으로 사는 것이 가장 편한 길이고, 가장 강해지는 길이다. ]

라는 문장이 있을 때 아! 편해져야지! 라고 생각하고 끝내야되나?

문장 안에는 '몸으로 사는 것' 이라는 부분 문장이 있다.

그 문장 안의 뜻은 터프함, 상처를 받아도 그냥 하는 것, 힘들어도 그냥하는 것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 과정이 오히려 가장 편안함을 만든다는 말이다.

또한 몸으로 산다는 것은 그자체로 어렵고 힘든 곳에 머문다는 뜻이다.

비주류에 머무는 것이다. 비주류의 영국과 유럽사람들이 아메리카로 건너가 미국을 만들었던 것처럼 신대륙으로 가는 길이다.

그곳에서의 불편함은 너무나도 당연히 있어야만 한다.

몸이란 그 불편함과 스트레스를 원하도록 설계되어있고,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도록 되어있다.

그 결과로써 편안해지는 것을 말한다.

절대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말자.

 

모든 정점에 올라간 사람들의 공통점은 '취미로 시작했다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은 될지도 안될지도 모른 곳에서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놀랍게도, 될지도 안될지도 모르는 무서운 곳에 계속 머물렀다는 이야기다.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 누워서 피자먹는 나태함이 아니라 그자체로 터프함과 저돌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한다.

이미 어려운 곳에 있는 것이므로, 김연아선수가 눈물을 흘리는것과 아무런 상관없이 연습시간 2시간을 채우는 것은 당연한 디폴트다. 노력했다고 볼 수 없는 수준이다. 그 눈물은 몸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 때문일 뿐이었을 것이다. 

그건 절대로 몸을 힘들게 혹사시켰다고 봐서는 안되는 개념이다.

 

 

눈앞에 결과가 없어야만 몸으로 산다고 말할 수 있다.

작업순서도와 같이 해야할일이 뻔히 정해진 길을 가는 것, 얻었을 때 분명한 성과가 정해진 것은 몸보다 생각이 선행한 욕심이다.

생각은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에 몸으로 삶으로써 생각이 나오도록 해야한다.

죽음의 위기나 어려움 속에서 생각이 알아서 자동으로 결과를 내고 나오도록 해야만한다. 

 

기다려야한다.

차오를때가지 기다린다.

의심되면 절대로 건드리지 않아야한다.

확실할 수록 패대기쳐서 버려야한다. 개입하지 않아야한다.

의심도 확신도 정답이 아니다. 이미 생각했기 때문이다.

몸을 부딪힐 수 있는 실생활과 싱크가 된 생각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한다.

몸이 자동으로 움직여지는 때가 올때까지 기다려야한다.

내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서 길을 정해야한다.

그 자동으로 움직여지는 몸은 상처를 받던 아프던 상관이 없어진다.

남들이 보기엔 노력했고 천재라고 말하지만 전혀그렇지 않다.

너무나도 편한 길이다.

 

김연아 선수를 노력의 상징으로 삼고 미친듯이 노력하지 말자.

이순신 장군님을 고통 속에서 고뇌만 하고 힘들게 살다 가신 희생자라고 생각하지 말자.

진심으로 즐거우셨을거고 인간적이었을 것이다. 

고맙다고 생각하지 말자. 그런 생각 때문에 아무것도 안해도 누군가 지켜줄 거라 생각하게 된다.

모두 같은 인간일 뿐이다. 

고마워하고 감동할 바에 전율을 느끼고 나도 그 사람이 즐거웠던 만큼 즐기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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