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접하고 레벨낮은 사람은 단 하나의 고통도 없이 완벽하고 깔끔하게 닦인 상태를 원한다.

조금이라도 먼지나 벌레가 보이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것을 해결하고 닦아내려고한다.

 

하지만 진정한 고수들, 최고의 스포츠 선수들은 압박감과 함께가고, 고통과 함께 간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고통이 무언가 기능을 하기 때문에 같이 있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고통이 그냥 나를 힘들게 하는 one way 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면 당연히 닦아내는게 맞다.

하지만 고통은 무언가 기능을 한다.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을 설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고통이나 허접함 없이 어떻게 더 낫고 더 설레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다고 하는 말은 감성적인 것이 아닌 물리적인 뜻이다.

 

그렇기에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꽤나 환영해야하는 것들이다.

떼어낼 필요도 없는 것이다. 떼어내면 내가 원하는 것도 같이 떼어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해결하는 것이 아니었다.

문제란 단지 더 나은 것, 한단계 높은 레벨이 다른 것을 쟁취하고 원하고 만들어 가는 과정에 필요한 필수 재료인 것이다.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나는 고통을 당해야하는 사람이야 하는 멋진척을 하는게 아니다.

받아들였다, 받아서 들였다. 그러니 활용하는 것이다.

그 고통을 통해서 반작용을 얻어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를 절대로 해결할 이유가 없다.

오직 그 상위개념의 신나는 것을 원할 뿐이다.

 

욕심도 두려움도 없는 상태. 

이기는것도 지는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저 게임안에 있기를 원한다.

고통을 받아들이면 그냥 그 상태를 즐기기 위한 상태로 전환된다.

고통이 있기에 신나고 설레는 일들이 앞에 펼쳐져 있다.

그렇기에 그 신나고 설레는 일들이 실제로 벌어져서 고통이 사라지는 것 조차도 바로 원하지 않는다.

왜냐면 지금 바로 고통과 함께 하는 이 순간만이 신나고 설레는 감정을 느끼는 상태와 동시에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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