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는 왜 감히 돈을 버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으면서 왜 돈을 버는가? 사회에 어떤 도움이 되는 건가? 

이것은 일종의 사기인가?

 

investment의 어원은 clothe, cover 이다. vest가 조끼인 것에서 유추할 수도 있다.

옷을 입히고 뭔가를 가리는 것이란 뜻이 어째서 돈을 던지는 투자라는 행위의 어원일까?

옷을 입힌다는 것은 뭔가 자격을 주고 권위를 부여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우리말로는 감투를 썼다는 말이 있다. 모자를 쓴것이지만 사실상 권위나 벼슬, 리더의 자리에 임명되었다는 뜻을 말한다.

 

관직을 임명하는건 왕의 역할이다.

가장 최고의 위치에서 어떤 사람에게 권력과 힘을 부여한 것이다. 그것은 왕에게 그럴만한 힘이 있기에 그것을 나눠준 것이다.

좋은 사람에게 권력과 힘을 부여했을 때 왕은 아무것도 하지않아도 칭찬을 받고 추앙받는다.

관직을 부여한 사람이 잘했어도 그것을 이끌어낸 가장 최초의 일은 왕이 했기에 사실상 왕이 한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옷을 벗었을 때는 부끄럽다. 왜 부끄러운가? 왜 수치스러울까?

모든 상황에서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목욕탕에서 벗는 것은 조금 부끄러울 수 있지만 받아들일 수 있다.

집안에서 누군가 보고 있지 않으면 전혀 부끄럽지 않다.

 

부끄러운 이유는 나와 상대방과의 격차 때문이다.

나는 벗었고 상대방은 벗지 않았으면 정보에 대한 격차가 생긴다.

권력자가 선글라스를 껴서 눈에 대한 정보를 차단함으로써 권력을 형성하는 것과 같다.

같은 팀이 아닌 모르는 상대. 적이 될수있는 상대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 그것은 두려움을 형성한다.

결국 누가더 쌘가. 정보를 차단한 쪽이 더 쌔다. 산위에 올라가있는 사람이 더 쌔다. 그래서 부끄럽다. 나약한 상태에 있는 나자신이 수치스럽게 되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나서 왜 발가벗은 것을 부끄러워했는가?

왜 원래는 부끄럽지 않았는데 부끄러움으로 변모하였는가?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위계질서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먹지말라 했는데 먹었다. 그러니 하느님의 품 안에서 떠나게 된 것이다.

위에서 지켜봐주는 강한 신과같은 존재가 떠났기 때문에 더이상 올바른 시선을 유지할 수가 없다.

같은 팀이 없고 오직 자기눈으로만 판단해야하는 세상에서 어떤것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모르기 때문에 부끄러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힘이 약해진 것이다. 정보가 없고 두렵기에 누군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에 수치스럽다.

 

옷이란 위계질서를 확립하기위한 수단이다. 

나는 왕이 내려주신 옷을 입었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들보다 높은 시선을 확보하였다, 그러니 나는 힘이 더 쌔다 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옷을 입는 대상의 나약한부분, 부족한 부분을 가려준다. ( cover )

그런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하더라도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허용해준다.

단점을 가리지 않으면 발휘되지 않을 장점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준다.

 

투자란 그렇게 왕의 시선으로 옷을 입혀주는 행위이다.

지금 실적을 내지 못하고 망할 위험에 빠져있더라도 그것을 감안하고 돈을 던질 수 있는 것. 돈으로 만든 옷을 입혀준다.

그 옷이 없는 이상 부끄러움과 수치심때문에 아무것도 하지못할 대상이 뭔가 기능하게 되고 작동하게 된다.

 

투자는 왕의 시선을 갖춰야만한다.

그 단점이 곧 사라질 것이란 것을 알거나 별것 아니라는 것을 아는 시선.

조금만 기다리면 무언가가 변화할 것이라는 걸 저 높은데서 바라볼 수 있는 시선.

저 장군이 지휘해야만 전쟁이 승리할 것이라는 걸 알고 저 장군에게 지휘권을 줄 수 있는 시선. 

 

그 시선을 갖추고 제대로된 투자를 했다면 그 사람은 돈을 벌 자격이 충분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돈을 벌 자격이 충분하다. 이미 모든 것을 했기 때문이다.

자기의 일부분을 떼어내서 다른 대상을 추켜세워주었기 때문이다.

 

남에게 문제를 떠넘기는 것이 아닌 남의 문제를 가려준 것이라면 투자자는 돈을 벌어도 된다.

이미 승패가 결정나서 힘이 넘쳐나는 대상에게 투자를 한다는 건 언어가 성립하지 않는다.

위기이고 두렵고 어려울 때만 투자라는 언어가 성립한다. 대상의 부끄러운 점(=힘이 없는 점, 돈이 없는 점)을 대신 가려주는 고통을 감안한만큼이 투자자들의 일이다. 이 일은 특수하게도 시간이 걸리지않고 선택만 하면되기에 마치 아무일도 안하는 것 같지만 내면에서는 치열한 과정을 거치고 나온 결과물이다.

이 과정을 제대로 밟은 사람들은 돈을 벌게 되어있다.

 

투자란 부끄러움의 상태에 있는 대상에게 옷을 입혀주는 것이다.

초단위던 분단위던 일단위던 월단위던 아무런 상관없이 부끄러움의 상태에 있을 때만 투자를 해야한다.

상대방이 부끄러운 상태가 아니라면 그것은 투자가 아니다. 이미 휘황찬란한 옷을 입고있는데 내가 준 옷도 껴입여주라 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상대방은 나에게 어떤 고마움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너무 껴입으면 더울테니 내가 줬던 옷은 회수해가는 것이 더 고마울 것이다.

끝까지 믿어준다고해서 투자가 아니다. 이미 잘되고 있는 상대에게 끝까지 붙어있는 것은 끈적거리는 집착에 불과하다. 집착은 결국 돈과 이성을 잃게 만든다.

 

 

추울때 옷을 입혀주고 -> 더울 때 다시 가져온다.

이 행위는 단타라고하더라도 기업에 엿을 먹이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두가지 행위 모두 기업을 위한 행위이다. 더운데 껴입고 있으면 안되지않은가. 

그 행위는 더울 때, 안전할 때 한몫 벌어보려고 들어오는 돼지같은 다른 잘못된 투자자들을 쓰러뜨리는 행위 + 나보다 더 큰 것을 볼 수 있는 ( 많은 시간을 기다릴 수 있고 더 손해볼 수 있는 ) 다른 올바른 투자자들에게 넘겨주는 행위다. ( 더 좋은 옷으로 바꿔주는 것 )

절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첫번째 행위는 그 돼지같은 투자자들에게 매도하여 돈을 번다. 그리고 그 번 돈으로 줬던 옷을 언제든 벗겨갈 돼지들이 빠져나갈 때, 다시 추울 때 재투자를 한다면 그건 기업을 살리는 일이다. 

두번째 올바른 투자자에게 넘겨주는 행위를 통해서 추위가 너무 강해서 내가준 옷이 찢겨져 버려지는 상황 즉 매도하지 않고 있다가 나조차 패닉에 빠져서 마음대로 매도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나보다 더 강한 옷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런 상황에도 움직이지 않을 수 있으니 기업에 더욱더 도움이 된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지만 절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올바른 투자는 돈을 벌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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