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은 이득을 얻기위해 달려간다.

산 정상의 기분좋은 느낌을 느끼고자 달려간다.

 

그런데 등산 장비를 갖추고 들머리로 가는게 아니라 그냥 우선 정상으로 부터 시작한다.

마음은 정상인데 몸은 그냥 집이다.

산에 가고싶으면서 산에 가질 않는다.

 

가만히 앉아서 정신력을 통해 산정상으로 순간이동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바치고 있다.

 

산 정상의 기분은 등산한 사람들에 대한 보상이다.

직접 두발로 고통스러운 언덕오르기를 경험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경치다.

 

그럼 두발로 오른다는 것은 대체 투자에서 무엇일까?

재무제표를 열심히 공부하는 것인가?

매의 눈으로 주가의 움직임을 포착해서 파도타기를 잘하는 것일까?

 

미친소리하지말자.

산에 대해서 공부한다고 그 산 정상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산에 대해서 일목요연하게 모든 것을 읊을 수 있다고해서 등산하면서 참아야하는 고통을 참을 수 있지 않다.

 

산의 들머리는 정상에서 가장 먼 곳이다.

정상의 기분과 가장 정 반대되는 곳이다.

앞으로 올라야할 시간이 가장 많이 남았고 가장 긴 거리가 남은 곳이다.

 

투자란 정상에서의 기분좋고 붕뜬 느낌이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들머리에서의 앞으로를 받아들이고 눈이 부릅떠지고 많은 것을 준비하고 고려하는 느낌이 선행해야만 하는 곳이다.

한마디로 목숨을 건듯한 비장함이 가장먼저 선행해야만한다.

그 감정을 기반으로 투자해야한다.

 

우리가 찾아야하는 것은 기분좋고 미래가 창창한 것들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아니라

비장함이 느껴지는 두렵고 공포에 가까운 느낌이다.

어떤 종목에 투자하려고할 때 그 감정이 선행한다면 올바른 투자가 될 가능성이 처음으로 생긴다.

기분좋고 미래가 창창한 느낌은 가상적으로 뒤에서 존재해야한다.

 

투자에 대한 정의를 바꾸자.

투자는 두려움과 공포를 찾는 게임이다.

두려움과 공포를 견뎌내는 만큼이 실력이다.

제무재표는 회계사에게, 귀신같은 단타는 증권사에게만 맡긴다.

우리가 산에 대한 관리는 산림청에게, 산에서 나오는 목재는 목재사에게 맡기는 것처럼 말이다.

해야할 것은 등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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