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겪는 이유는 내가 그것을 끌어당길만큼 부족한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근데 재밌는 것은 내가 끌어당긴 것이 고귀한 심판자가 아니라, 고기를 뜯어먹고자하는 짐승들이라는 것이다.
부정적인 허접한 에너지들이 종류는 전혀 다르지만 같은 곳에서 상보적으로 서로를 끌어당긴 것이다.
내가 그만큼 부족하고 약한 것을 가지고 있기에 모든 것이 나의 탓이고 나의 죄인 것은 100% 옳지만
그렇다고해서 나를 공격하는 짐승들에게 사과를 하거나 그냥 넘어가는 것은 말이 안된다. 누가봐도 짐승이지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내 부족한 모습은 잘 보이지 않고, 눈앞의 짐승들에게만 시선이 100%가게 되어있다.
이런 짐승같은 역적들을 보니 내가 잘못한 것은 없고 완벽한 피해자인 것처럼 느끼게 된다.
고통이라는 것의 특성은 물이 가득찬 항아리에 구멍을 뚫어버리듯 단 하나의 구멍, 단 하나의 잘못으로 인해서도 모든 것을 내어주고 인간성을 상실할 위기에 처하게 되기 때문에 인간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고통에 대해서 아주 격렬하게 피하거나 싸운다. 그 사건이 모든 것인 듯이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보고 피해의식을 가지게 된다.
최초의 소설 길가메시 서사시의 교훈은 고통을 붙잡는 것이다.
고통을 붙잡아야하는 이유는, 그곳에 내 잘못되고 부족한 점을 개선할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고통을 붙잡는다는 것은 추상적인 어려운 개념이아니라
그냥 싸우고 나서, 화해하는 것이다.
싸운다는 것은 정확하게 '내가 옳다' 와 동의어다.
나를 공격하는 짐승 또한 100% 잘못한 것을 우선 머릿속에 인지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짐승이 나를 공격한 것 자체는 100% 잘못된 것이므로 내가 모든 힘을 다해 우선 싸워야한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기만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그 짐승을 물리친 다음에는 나를 구성하는 것 중에 대체 어떤 부분이 저짐승과도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생각해내야한다. 짐승을 끌어당긴 것은 분명히 나이기 때문이다.
싸우지않고 생각한다는 건 '내가 틀렸다' 라는 뜻이다.
나에게 분명하게 틀린 점이 있다.
물리적이나 표면적으로는 무조건 싸우고 (내가 짐승이 된 상황에서도 동일, 내가 공격을 하는 것은 짐승같은 일이지만 그 이면의 것을 고치도록 만들 수 있고 또 나의 짐승같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기에), 그다음 잠시 뒤로 물러나 정신적 혹은 영적으로는 100% 자기 반성을 해야한다.
자기반성을 통해 그 상황자체에서는 내가 100%피해자 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하는 판은 내가 100% 잘못하여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상황자체에서는 완전히 빠져나가서 전혀다른 부분에서 내가 짐승같았던 부분을 분명히 캐치해내야한다.
싸우고 화해하기를 하면 나의 정체성도 지킬 수 있고, 나의 부족한 부분도 채울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 과정을 겪음으로써 상대방과 한층 더 깊은 관계를 가지게 될 수 있다.
싸우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지혜를 얻을 수 없다.
내가 옳은 것과 내가 틀린 것을 구별하지도 못하는데 대체 어떤 지혜와 배움이 있겠는가?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도망갈 필요가 없는 멋지고 위대한 곳에서만 머무는 게 아니다.
승리도 패배도 아니다.
승리와 패배를 계속해서 해나가겠다는 그마음이 가장 강한 마음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계속해서 같이 있겠다, 지속하겠다라는 마음이야말로 고통을 붙잡는 가장 높은 경지다.
지금 상황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어짜피 이건 붙잡아야할 상황이다.
그러니 어떤 상황이어도 50%는 정답이다. 걱정할게 없다. 도망갈 필요가 없다.
그냥 붙잡기만 하면 된다.
나를 위해 싸우고, 다른사람을 위해 화해하자.
다른사람을 위해 싸우고, 나를 위해 화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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