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먹기전에 생라면을 먹어보자.

맛있을 때도 있긴하지만, 딱딱하고 맛없고 텁텁할 때 '아 그냥 끓여먹을 걸' 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놀랍게도 그걸 실행했을때 라면이 정말 맛있어진다. 2개째라 살이 찌겠지만 상관없다고 생각이 들 정도다.

 

증기기관이 작동할 수 있는 이유는 냉각 기능을 넣어놨기 때문이다.

냉각 기능도 기능이다. 산업혁명을 일으킬 정도의 기능이다.

누구는 하고싶어도 하지 못하는 휴식, 멈춤의 방법을 당연한 듯 탑재하고 있다. 

 

무능력, 죽음, 병도 능력이다.

그 반대의 상황을 좀더 뻠핑하고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실질적으로 만들어 낸다.

지속가능하게 만들고 그로인해 계속된 중첩속에서 실력을 늘려갈 수 있다.

공부를 못하는 사람일 수록 공부와 관련된 일을 해야한다.

이상만 생각하는 사람일 수록 현실적인 일을 병행하게 된다.

 


 

<명심해야할 것>

 

허리디스크가 있는 사람이 -> 역도선수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역도선수라는 것은 허리디스크를 포함시키지 않아야하는 개념이다.

시각을 잃은 사람에게 저격수가 되라고 하는 개념이 아니다.

축구를 정말 못하는 나이 60살 먹은 사람에게 현역 프리미어리그 축구선수가 되라고 하는게 아니다.

 

이런 말을 지칭하는 용어가 있으면 좋겠지만 모르겠다.

이런 일직선상에서의 완전히 무능력이나 단점, 죽음, 병이 그냥 '무'가 되어버리는 개념이 아니다.

 

일본드라마에 많이 나오는 불량 양아치 고등학생이 도쿄대학에 공부해서 가는 것은 가능하다.

왜? 그 게임안에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이 고등학생일 때 공부는 못하지만 -> 대학입시는 가능하다.

시각을 잃은 사람이 아니라 시력이 '나쁜' 사람이 저격수가 되는건 가능하다.

나같은 경우엔 허리디스크가 있기에 역도선수는 될 수 없지만, 허리운동과 등산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

생활범주에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어렵지만 경계를 잘 파악해야한다.

 

단점은 단점으로 계속해서 존재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완전히 사라지는 개념이 되어선 안된다.

내가 허리디스크가 있는데도 역도선수가 되었다면,

그것이 의사가 진단서를 떼주던 내가 얼마나 아픈 것을 참아서 역도선수가 되었건 간에

그 전체는 결국 없음이다.

즉 허리디스크가 있음에도 역도선수가 되었다면 그건 허리디스크라는 개념에서 삭제되어야한다.

역도선수가 된 순간 나는 사실 병이라는 개념이 없던 사람이어야만 성립가능하도록 세상이 구성되어있어야만 한다.

완전히 인간들 인식속에서 사라지고 지워져야만 하는 개념이다. 병으로 성립될 수 없다.

그런데 성립되어있지 않은가?

병은 병이기에 병이다.

 

그 병과 그것의 수학적 대우 ( contrapositive ) 개념이어야 한다. ( 용어가 정확한건 아니기에 느낌만 이해해주시길 )

병과 새롭게 선택한 약간 대각선적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동시에 균형을 잡고 동시에 기능해야한다.

증기기관이 가열과 냉각을 반복하는 것처럼 두가지 모두 기능해야한다.

단점에 고마워할 수 있어야지 단점을 이용하거나, 일부러 책임져서 단점과 한몸이 되려하는 ( 약자를 적극적으로 도우려하는 ) 하는 개념이 되어선 안된다.

그러니까 한단계 건너가야만한다. 내범주를 넘어서 완전히 다른 것과 손잡을 때 두가지의 균형이 성립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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