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투자는 워렌버핏을 필두로한 '좋은 기업을 싼 가격에 매수한다' 라는 개념이다.

충분한 이익을 내고 있는 기업이지만 사람들에게 외면받아 싼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기업을 매수해 기다리고만 있으면 무조건 이긴다 라는 방식이다.

누구나 이것이 투자의 기본이자 교과서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생각하기엔 완전한 착각이다.

 

 

 

가장 첫번째로 '충분한 이익을 내고 있는 기업' 에 투자한다는 것은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투자란 잘 모르고 불확실하지만 더 크고 미래가 있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채고 볼 수 있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다.

투자자란 제일 먼저 에너지를 줌으로써 키우고 성장시키는 사람들이다.

제일 먼저 봄으로써 가장 큰 이득을 얻기위한 모험가이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급격하고 폭발하는 무언가가 있어야만 투자라는 행위가 성립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치투자라는 개념은 충분한 이익을 눈으로 보고 모든 견적이 나왔는데도 세상이 외면한 기업을 고른다.

정말 온건하고 신중하며 냉철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투자'라는 본래 개념과는 완전히 상반되어있는 모순이다.

그것은 세상은 허접하고, 나라는 사람의 시선은 허접한 세상과 다르게 진실을 보는 눈이 있다는 아주 오만한 생각이 선행된다.

'정보와 기술력, 혹은 가치에 대한 계산 (밸류에이션), 수익모델 등을 앞세워 그런 기업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그 행위는 엘리트주의적이고 계급격차를 두는 사고방식이다.

그들의 프레임에선 그들의 정답이 맞다. 당연히 이미 충분한 이익을 내고 있는 기업들 중에선 당연히 기계적이고 수학적인 모델차이에 의해 한우 등급 매겨지듯 가치들을 정할 수 있다. 이미 변화할 가능성은 없고 여러가지가 결정되어있는 노동시장에서 노동자를 고르는 것마냥 그러하다.

하지만 투자라는 것은 어린아이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어주는 행위이다.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으며 그 크기는 기존의 방법으로 가치가 매겨지지 않는다.

'세상에 외면받는 기업' 즉 가격이 싸진 기업을 매수해서 올라갈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은 그 기업을 완전히 노예로써 구매해 엿먹이는 일이다. 칼만 들지 않았지 완전히 생양아치이자 제국주의적인 마인드에서만 가질 수 있는 생각이다.

 

 

두번째로 가치투자는 큰 돈을 벌지 못한다 라는 것이다.

워렌버핏의 현재 가진 돈을 보고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규모에 의해 벌어진 차이에 불과하다. 개별적인 기업들에서 수익률의 한계는 정해져있다. 이미 어른이 되어 있는 기업은 당연히 커봤자 많이 크지 않는다.

그저 시간을 무기로해서 오랜 시간동안 투자를 했기 때문에 가장 많은 돈을 번 것처럼 연출되어 있을 뿐이다.

가치투자는 그 기업의 상승과 손실을 모두 품는다.

아무것도 안하고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10% 올라간 것도 먹고, 5% 떨어진 것도 먹는다. 결과적으로 비대칭적인 수익률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시간이 자기편인 운좋은 사람, 이미 돈이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아무 생각 안하고 할 수 있는 투자 방법에 불과하다.

모험적이지 않고 로망이 있지 않다. 폭발할 수 없기에 결국 계급격차는 유지되고 지배권력이 아무일도 하지않고 계속해서 지배할 수 있게 된다.

 

 

세번째로 앞서 설명한 것처럼 가치투자는 돈을 잃는다 라는 것이다.

워렌버핏은 '절대 돈을 잃지마라'를 무한하게 강조하면서 가장 보수적인 투자가 가장 좋은 투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세히들여다보면, 가치투자자가 가장 많은 돈을 잃는다.

가치투자자는 -50%가 되더라도 더 싸졌으니 그때 더 매수하면 된다고 아주 쉽게 말한다.

그말은 돈과 시간을 가지지 않고는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일 뿐이다.

절대 잃지마라면서 -50%라는 손실을 아무렇지 않게 당연한듯 받아들인다는게 참 모순적이고 웃긴다.

결과적으로는 상승한다고해서, 오늘 떨어지는 내 손실을 보고있는 나의 하루는 사라지지 않는다.

미래를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 손실을 바라보면서 버틸 수있는 어떠한 근거도 제공해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가치투자는 기다릴 수 있는 금수저들만 결과적으로 돈을 벌게 되어있다. 그것도 이득과 손실을 모두 품고 있으니 조금만 얻는다. 그로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투자가 대체 뭔지 이해하지도 못하고 금기시하며 떨어져 나간다. 벽을 느낀다.

가장 보수적이라고 말을 하고 그런 태도들을 보이면서, 가장 진보적으로 가장 큰 손실을 감내하는 모습에서 분명히 한쪽으로 편향되어있다는 것을 알아채야한다.

 

네번째로 가치투자는 할게 없다.

투자를 할 때 손가락 몇번 움직여 매수를 한 뒤 아무것도 할게 없다. 그냥 기다리는 것말고는 아무것도 할게 없다.

내 돈은 마이너스와 플러스를 왔다갔다하기에 불안한데 나자신은 거기에 아무런 컨트롤도 수련도 연습도 노력도 바칠 수 없다.

실력이라는 개념자체가 거세되어있으며 어떤것도 배울 수 없고 그저 기다리는 것 밖에 하지 못하는 아주 수동적인 행위이다.

할게 없기 때문에 나와 같은 사람은 수만명에 달한다.

내가 머리를 엄청나게 굴려서 엄청난 기회를 발견했다고 생각해서 설레는 마음에 특정한 종목을 매수한다고 하더라도,

아무 생각없이 같은 종목에 투자한 사람과 아무런 차이가 없이 똑같은 수익률을 기록한다. 그런 사람이 수만명이다.

대체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그저 남들과 비슷한 수익률만 얻으면 만족하는 그런 사람인가?

 

 

다섯번째로 기업이 이익을 낸다고해서 주주들에게 돈이 꽂히는게 아니다. 라는 것이다.

주주는 주식의 가격이 올라야 돈을 번다.

기업이 이익을 낸다고해서 주주들이 돈을 정확히 그만큼 버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많이 벌어도 주식가격이 오르지 않으면 주주들은 종이조가리를 들고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다.

PER이 10배라고해서 10년 뒤에 주주들은 무조건 원금을 회수하는가? 정해져있는가?

주식가격이 무조건 2배 올라야하는데, 그렇게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10년 뒤에 그 로또를 확인해도 될 정도로 한가한가? 목숨이 두개인가?

이익이 주가를 올리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시선은 완전히 구세대적이다.

 

그 기업 자체를 통째로 매수하는 것처럼 투자를 신중하게 하라는 워렌버핏의 말은 멋있고 대단한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주주는 기업의 이익을 통장으로 계좌이체 받지 못한다.

주주는 주식을 사는 것이지 기업을 사는게 아니다.

기업이 잘되도 가격형성에 의해 언제든지 배신당할 수 있다.

 

 

여섯번째로 기다림은 고통이다 라는 것이다.

기다림은 명백한 고통이다. 고통이기에 그것을 케어하기 위해선 비용과 보상이 필요하다.

가치투자는 얼핏보면 아무것도 안해도되고 수수료도 내지 않아도되고 무조건적인 필승법이기 때문에 마음편한 일인 것처럼 보이지만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는 뜻이다.

계속해서 기다려야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떨어지면 버텨야하는 논리를 만들기 위해 스트레스받고, 옆동네에서 도지코인이 올라갔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것도 또한 고통이다.

가치투자는 그 비용을 계산에 넣지않고 필승법이라고 말한다.

스트레스를 다받아주고 화풀이할 대상에게 계속해서 화풀이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없으면 나중에도 없는 것이다.

 

 

'가치'라는 단어의 뜻만 좋아보이는 빛좋은 개살구다.

하지만 그 가치는 그들이 규정해놓은 가치이다.

우생학적으로 좋은 유전자만을 남기려하는 것과 같다.

 

무엇이 가치인가?

그것은 절대로 방법론적으로 정해지지 않아야한다.

계산하는 것이 아니다. 쇼핑몰에서 결제하듯 정해진 가치가 있는 것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가치가 있을 수 있으며 그 가치를 직접 발견하고 만들어가는 것이 투자이다.

 

 

가치투자는 손실을 보면서도 이길 수 있는 광전사 타입의 복서인 파퀴아오와 같은 스타일이다.

맞아가면서도 이길 수 있기 위해선 진화론적으로 약육강식의 경쟁이 필요하다.

그것은 장기적으로 단 한명으로 수렴할 수 밖에 없으며 나머지는 맞아가면서 죽어간다.

 

진짜 투자는 생존을 위해 방어할 줄 아는 메이웨더와 같은 스타일이어야만 한다.

단 한번의 펀치도 맞지 않아야만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다.

어린아이는 연약하고 순수함은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는 위험해보이는 링 안에서 지속적인 승리를 가져오는 방법이어야만 한다.

 

 

특정한 조건에서만 성립되는 가설은 폐기되어야만 한다.

누구에게는 되고, 누구에게는 되지 않는 모든 것은 결국 살아남지 못하고 기억에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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