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은 저장이면서 동시에 폐기의 뜻을 지니고 있다.
버려 없어지는데도 새롭게 저장된다.
죽였는데 뭔가 한몸이 되어 살아있다.

<전생했더니 이세계 슬라임이었던 건에 대하여> 라는 전생 뽕빨물 대표작에서 먹는 것에 대한 능력이 최고의 유니크 스킬로 등장한다.
'포식자'라는 능력은 대상물을 체내에 흡수하고 해석해서 그 대상물의 스킬을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이다.
역사적으로 포식의 형태, 즉 적의 힘을 완전히 폐기하는게 아니라 흡수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최고의 제국을 만들었기 때문에 포식 능력을 최고의 능력으로 설정한 것은 충분히 납득가능하다.
로마는 정복민을 시민과 군단으로 편입했고, 징기스칸은 정복지의 기술자·관료·학자를 활용하여 제국의 역량으로 만들어가면서 영토를 늘려나갔기 때문이다.
적을 용서하는 것도 아니고, 살려주는 것도 아니다.
폐기하고 파괴하되, 그 것을 내부로 완전히 흡수해버리는 형태다.
말그대로 먹어버리는 것이다.
생물학적인 진화처럼, 뭔가 이전단계의 뉘앙스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느낌을 가진다.
기존의 것을 죽이되, 기존의 것을 받아들인다.
완전히 전체를 감싸서 상위 호환이 되어 먹어버린다.
기존의 것이 더이상 완전히 필요없을 정도로 deprecated하게 만든다.
완전히 그 자리를 대체한다.
더이상 필요 없게 만든다.
‘먹는 게 남는 것’은 배고파서 먹는 게 아니에요. ‘먹는다’는 것은 내 안에 들어와 없어진다,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오감(五感)을 거리로 따지면, 시각이 제일 멀리 있고 그다음으로 청각, 후각, 촉각인데 미각은 (내 안으로 들어온) 상대가 없어지는 겁니다.
- 이어령, 끝나지 않은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④ 맛과 멋, K-푸드
미각이란 몸과 오감 중에서도 가장 거리가 가까운 것이다.
완전히 내 안으로 들어와서 상대와 나의 경계가 사라지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때야말로 비로소 상대방을 가장 완벽하게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완전히 한몸이 되었을 때 가장 큰 이해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 때 대상의 힘을 사용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된다.
한몸이 되었기에 당연한 일이다.
전생슬에서 슬라임이라는 최약체 생명체가 하나하나씩 대상물을 먹어치우고 이해함으로써 먼치킨 능력을 얻어가는 것처럼,
먹는 능력이 있다면 나와 상대방과의 힘 차이나 권력의 차이는 존재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상대방이 쎄던 말던 그것을 활용하고 먹어버리기 때문이다.
나와 대상이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에서 우리에게 적이란 단점이나 문제들이다.
그런 적들을 먹어치워버리면 된다.
문제나 단점을 없애려고하는게 아니라, 그 상태로 먹어버려야한다.
그 능력을 흡수해 활용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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