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이 깨지면 확신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된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가, 갑자기 생각과 신념이 등장한다.

"어 뭐지? 아니야 아니야 이거 맞아. 확실해."

 

그리고 확신이 깨지면 두가지 형태로 분할 된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무서워서 도망가거나, 

아무런 근거도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계속해나가는 '믿음'의 형태를 띈다.

즉 믿음을 역으로 정의해보면 '앎도 확신도 깨진 상태'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모르고 불확실한데, 어떻게 그 상태에 머무를 수 있을까?

그런 상태는 정반대로 '쉬움'에서 나타날 수 있다.

내 몸에 착 달라붙고, 작동하고, 쉽고 안전한 형태를 띈다면, 그것에 대해 완전히 무지하더라도 그냥 할 수 있게 된다.

감정적으로 어렵거나 두려운 것을 참아내는 과정이 믿음이 될 수 없다. 그건 확신의 단계에 불과하다.

 

나의 앎과 확신이 깨부셔졌을 때 비로소 

그냥 되는 것.

난이도가 쉬운 것.

몸이 그냥 해버리는 것

지식이 아닌 상식 수준으로 해버릴 수 있는 것.

에 머무를 수 있게 된다.

무섭고 두려워봐야 그런 지점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원리에 의해

바로 그때 믿음의 힘이 작용한다.

더이상 내려갈 수 없을 때, 올라가는 길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알거나 확신할 필요도 없이 그냥 알아져있는 디폴트적인 제품들. 

예를 들면 바세린 같은 경우.

너무나도 순수하고 세상의 1원리 수준의 첫번째 제품.

그런 바세린이 부작용이 있다거나 잘못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품는다는게 가당키나 한가?

만약 바세린을 의심한다면

세상 전체를 의심하는 수준이므로 지구에 살 수 없다.

 

바세린이 무너지면 인류전체가 무너지는 것이므로 

대마 불사의 법칙을 믿고 나는 바세린을 믿어도 되는 것이다.

 

 

 

 

이건 마치 '파스칼의 내기' 와 같다.

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죽은 후에 아무런 영향이 없고

신이 만약 존재하면 천국이나 지옥에 갈 가능성이 있으므로,

신이 있던지 없던지 아무런 상관없이 신을 믿는 것이 반드시 이득이 되는 상태다.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런 원리에 의해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의 상태' 가 성립 가능한 것이다.

암호학에서 영지식증명이 가능한 이유와 마찬가지다.

완전히 자연과 합일된 상태, 혹은 사회라고 말할 수도 있는 인류 전체와 합일 된 상태.

내가 없이 <큰 나>인 상태.

그런 상태를 믿음의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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