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듣는 음악"을 과연 비실용적이다 라고 정의내릴 수 있을까?

"사용하지 않는 청소기"를 실용적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을까?

"분위기가 좋아서 가고싶은 가게"에서 분위기를 비실용적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을까?

 

실용, 효율, 현실을 추구하는 사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싸가지가 없다.

그냥 너무나도 괘씸하다.

너무나도 쉬운 것을 가지고 비장한 독립투사의 사상이라도 가진것마냥 웅장한 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사구시 정신, 실학자, 실용정신은 모두 귀납법을 추구하는 과학자적인 태도에 불과하다.

 

실용과 감성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한다면 실용과 감성이 모두 챙겨질 수 있다.

나와 사람들에게 본능적으로 '필요'하다면 그것을 추구하면 되는 것이다.

음악이 필요하면 음악을 들으면 되는거고, 사탕이 먹고싶으면 사탕을 먹으면 된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내 시간을 많이 점유하도록 할 수 있다면 된다.

 

'국어' 교육은 비실용적이고 취직에 도움이 안된다?

유튜버에 '김주혜 국어' 선생님은 국어 교육의 부족한 점을 채워서 사람들에게 올바른 국어교육을 한다.

국어를 가르쳐서 도움이 되도록하고 가치를 만들어낸다. 

그런데도 국어는 비실용적인가?

그저 기존의 국어 선생들이 '병신'이었던건 아니고?

 

 

왜 수많은 발명품을 먼저 만들었던 북학파 실사구시정신을 추구하려고하던 15세기 이후 동양이 서양에게 개쳐발렸냐에 대한 질문,

니덤의 질문에 대해 김정운 교수님이 말한 것은 '고대인들과의 투쟁이 없었기 때문' 이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이나 공자 노자와 같은 옛것들에 대해 투쟁하여 새로운 것을 만드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이다.

실용주의는 결국 옛날부터 이어져오던 좋은 것만 받아먹겠다는 아주 유아적인 태도다.

새로운 것이 필요한 거지, 실용적인게 필요한게 아니라는 말이다.

 

본능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움은 당연히 실용적이며 당연히 감동적이다.

사카모토 료마가 증기선 쿠로후네를 보고 놀라 나자빠진 사건처럼

그 증기선은 지금보면 실용적이지도않고 감동적이지도 않지만

그 시대에선 그 두가지를 완벽하게 충족하는 전혀다른 말도안되는 것이다.

실용을 추구하며 기존 세계와 달라붙어 있는 것으로는 절대로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다.

감동없는 실용은 아무짝에 쓸모 없는 것이다.

나와 사람들을 위한 마음이 포함되지 않은 실용은 깨부셔야한다.

 

필요라는 단어도 분명하지만 더 자세히 보면

'끌림' 이라는 단어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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