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추리였어요. 인문학적 추리지..
예능 크라임씬에서 장진감독은 인문학적 추리라는 말로 확신에 찬듯 결정을 내리지만 거의 매번 틀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3가지 단서가 연결되어 아주 견고한 삼각형이 된 것처럼 마음에서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그 완벽한 이해와 납득이, 귀신처럼 매번 반드시 틀리게 되는 작용을 하게 되는 아이러니다.
인문학이라는 단어에 걸맞지 않게, 그저 예능 수준의 결과물을 보게 되어버린다.
장진 감독 뿐만 아니라 지혜가 많다고 생각하는 나이 든 사람, 나같은 문과적 감성을 가진 사람들은 이러한 함정에 빠지기가 너무나도 쉽다.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어요" 라는 대사와 함께 잘못된 선택을 하는 장진 감독을 보니,
이러한 인문학적 추리는 결국 '마음을 강하게 움직이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마음이 충만하고, 감정이 가득찬 방향으로 선택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 아는 인간의 본능이다.
말그대로 마음이 기울고, 마음이 움직였기에 당연하다.
내 마음을 움직인 것에 내가 가는 것이 뭐 잘못된 것일까?
내가 매력을 느끼고 내가 가득찼기에, 나를 나로써 유지시키기위해서는 당연히 그것을 선택하는게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과물은 구렁텅이고, 죽음일 뿐이다.
나를 유지했지만, 그로인해 내가 붕괴되고 죽어야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렇다면 차라리 내 마음은 배제하는 것이 옳다.
나라는 변수는 이 세상에서 너무나도 중요하지가 않다.
보이스피싱 범죄자도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낚시꾼이 물고기에게 미끼를 던져주고 물고기의 마음을 사기위해 노력하는 것과 같다.
장진감독의 마음 안에서는 3가지의 특별한 단서가 연결된 것이 아니라, 그저 3번이나 낚여버린 완전히 그물에 걸려버린 것 뿐이다.
오히려 진짜 소중한 존재는, 내 마음을 사기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이며
내 마음을 유혹하고 벅차오르게 하지 않을 것이다.
덤덤하거나, 아무렇지 않은 것이 훨씬 더 정답에 가까울 수 있다.
인문학이라고 한다면 따뜻하고 감성적이며 사회적인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노인을 돕는다거나 꽃을 선물한다거나 깜짝 파티를 열어주는 그런 상황들에서 오는 벅차오르는 감정.
또한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일.
누구나 질거라고 생각했지만 역전해서 이기고자하는 역배팅적인 도전.
스티브잡스가 말한 'Follow your heart' 처럼 내 마음을 따라가는 일.
이런 것들이 과연 정말 올바른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말 이런 것들이 인문학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인문학은 오히려 나에서 벗어나 인간 전체, 인류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다.
나라는 한 개인의 감성을 이야기하는 것과는 정반대에 있다.
심증이 가득찼다고해서, 물증을 만들어내고 모델링하는 끌어당김의 법칙같은게 인문학이 아니다.
"그랬으면 좋겠다", "사회가 따뜻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라는 약한 마음이 인문학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어떻게 이게 맞을까?" 라는 생각으로 매번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느껴가며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노인을 돕는 것보다 특정상황에서 노인을 돕지 않는 것이 맞을 수 있다는 것이 훨씬 놀랍고, 인문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게 맞을꺼야! 라고 사고하는게 아니라, 와 이번엔 이거네? 라며 매번 놀라는 것이 필요하다.
내 마음을, 내 심증을 넘어설 정도의 어떤 것이 있어야한다는 말이다.
매번 내가 먼저 틀려야한다는 말이다.
내가 매번 부정당하고 틀림으로써, 나라는 것이 계속해서 확장되고 성장하는 방향이어야만한다.
너무나도 강력한 물증에 의해, 심증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방향이다.
아니 내 마음은 이런데, 진짜 방향은 여기구나! 신기하네!
다시말해, 보이스피싱범은 여기에 있는데, 진짜 좋은사람은 저기있구나! 라고 느끼는 당연한 과정이다.
나를 선택하는 것과, 내 마음을 선택하는 것은 꽤나 다르다.
내 마음과 상관없이 정해진 무언가를 따라가는 것은 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바깥의 원하는 것과 이미 있는 소중한 것이 구별될 수 있는 것처럼 그렇다.
이미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거기에는 그 어떤 감정도 들어올 여지가 없다.
있는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되는건, 되는거기 때문이다.
열쇠를 넣고 돌리면, 문이 열린다는건 누구나 아는 일이다.
거기서 감정이나 마음을 움직이는 어떠한 요소도 없다.
덤덤할 필요가 있다.
나라는 특별함이 모두 사라질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이 역사적 사실에서 인용한 것이라던가, 실화기반의 소설을 쓴다던가
선배가 있다던가, 이미 있는 문화라던가
나를 넘어서서 더 큰 것을 이어가고 따라가는 느낌이 필요하다.
물리적 안전장치를 기반으로 해서 이어져야만한다.
그 이어짐이 나를 특별하게 만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면 된다.
그것이 더 무섭고 공포스러운 일이다.
내가 없어지는 것은 그만큼 심리적 자살에 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정말 용기있는 일이며,
정말 인문학적인 일인 것이다.
나라는 한명의 시선이 아니라
두명 세명 수만명의 시선으로 보는 것이 훨씬 정답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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