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안티프래질 개념이 가장 높은 생각인줄 알았다.

충격을 받을수록, 그것을 흡수하여 더 좋은 효과를 내는 방식보다 좋은 것이 있을 수 있나 싶다.

하지만 그것보다 한단계 위에 더 올바른 개념이 있었다.

안티프래질조차 새로 지어낸 용어이기에, 이것도 용어가 없을 수 밖에 없다.

 

 

영웅의 눈물겨운 스토리도 좋다.

고통을 성장삼아 이겨내는 안티프래질은 이 세상 모든 인간들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미션이다.

하지만 굳이 그 요소가 많은 비율을 차지할 필요가 있을까?

 

시작부터 '먼치킨'으로 시작하는 스토리들도 있다.

주인공버프를 먹고 시작하여 아무런 긴장도 없이 이야기가 흘러간다.

성공과 실패의 여부가 이미 결정났고, 그냥 분위기로 보게되는 경우다.

물론 그 안에서 안티프래질한 요소가 분명히 있고 스토리가 있다.

하지만 사소하고 비중이 적다.

근본적으로 '스토리 없는 스토리'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스토리는 레벨이 낮은 사람에게서 더 많이 펼쳐진다.

오타니 쇼헤이에게 눈물겨운 노력이나 스토리의 비율은 매우 적다.

부상이 있기도 했지만 '마치 아무런 일 없었던 듯이' 그냥 계속 한다.

오타니가 트레버 스토리라는 선수를 두타석 연속 삼구삼진으로 잡듯이 스토리보다 위에 있다.

만화 주인공이 아니라 만찢남이 되는 방법인가보다.

 

 


 

 

2의 데미지를 받았을 때 다양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1. 2의 데미지만큼 2의 체력이 깎인다. ( 프래질 )

2. 2의 데미지가 통하지 않는다. ( 이뮨, 방어, 강건함 )

3. 2의 데미지가 4의 체력으로 변환된다. ( 안티프래질 )

4. 1000의 체력이 있기 때문에, 2의 데미지를 입어 998이 된다. ( 상관 없음 )

 

안티프래질 개념은 상당히 사기적인 능력이다.

하지만 그래봤자 100의 체력으로 시작한다면?

104, 108, 112 로 계속해서 밑에서부터 성장하겠지만 그 속도는 너무나도 느리다.

이미 1000의 체력을 가지고 시작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게다가 너무나도 풍성해서, 데미지를 입던말던 신경쓰지 않는 태도에서 이미 기싸움에서 진다.

여유에서 나오는 스웨그가 다르고, 기풍이 다르며 보법이 다르다.

 

안티프레질은 고통에 변태적으로 집착할 수 있다.

니체의 철학처럼 고통을 활용할 수는 있지만

고통과 함께 하지 않으면 오히려 너무 심심하고 재미없어하게 된다.

계속해서 고통과 붙어있어야하는 근원적인 저주에 걸려있는 것이다.

다른 기회들은 날려버리게 될 수 있다.

니체의 말년처럼 결국 병약한 삶을 살게될지도 모른다.

 

 

차라리 맞으면서 앞으로 우직하게 나아가는 것이 더 낫다.

아픔을 기쁨으로 전환하는거보다, 

그냥 별거아니라 별로 아프지 않는 것이 가장 올바르다.

 

 


 

 

미래가 무너졌을 때, 과거는 안티프래질하다.

미래가 무너질수록 과거는 그에 대한 반사 이익을 얻는다.

역시 과거의 것이 더 좋았어! 라며 의존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안티프래질 책에서도 오래된 것, 과거의 것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그것은 외접 인터페이스에 불과하다.

지구가 무너졌기에, 반대의 바깥으로 나아가야한다는 말과 같다.

좌파가 무너지면 우파로 넘어가고 

우파가 무너지면 좌파로 넘어가는 2차원적인 줄다리기 게임에 불과한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접 인터페이스다.

핵심과 본질로 들어가는 방향의 반대여야한다.

 

미래가 무너졌을 때 남아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현재다.

미래가 무너졌기에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좋은 방향성이 생긴다.

그렇다고해서 현재가 이익을 얻는 것은 아니다.

과거는 이익을 얻었지만, 현재는 이익을 얻는 개념이 아니고 손해를 봤다고 할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저 미래가 무너져도 '상관이 없다'

어짜피 현재를 쌓아나가는 것이 미래를 만들기 때문이다.

다시 현재를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미래를 비난하지도 않는다.

과거는 무너진 미래를 비난하지만, 현재는 미래를 비난하지 않는다.

다시한번 그곳으로 나아간다.

 

그저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집과 같은 곳이다.

본질이자 핵심이다.

 

본질을 알수 있기에

껍데기(미래)가 무너진 상황 자체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지만

그 상황자체에서 이익을 얻거나 기뻐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구나.

상관없구나.

나는 이미 체력이 1000 이구나.

라는 것을 인식할 뿐이다.

 

이익이 아니라 

농담이나 놀이에 가까운 개념이다.

용서도 아니고 복수도 아닌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사소한 해프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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