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있는 일이란, 피터 드러커에 의해 '강점을 개발하는 일' 이라고 파악하였다.

나 뿐만아니라 모든 사람이 강점을 개발하는 자아 실현에 다가가는 일이 의미다.

 

그럼에도 보통 의미있는 일이라고 하면 '생산성있는' 일이라는 느낌을 가진다.

바깥에 나가서 달리기를 하는 것보다, 그 시간에 돈을 벌 수 있거나 제품을 만드는 일을 한다면 그것을 '의미있다'라고 생각한다.

해봤자 소용이 없거나, 남는게 없거나, 쓸모가 없어서 동기부여가 되지 않고 무의미하게 느끼기 마련이다.

혹은 약자를 돕거나 정의로운 일을 하는 것을 '의미 있다' 라고 파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의미는 정확한 뜻을 품고있지 않다.

 

왜냐면 누군가에겐 달리기를 하는 것이 자기의 강점을 개발하여 생산을 만들어내는 '의미있는 일'이 될 수 있고

약자가 아니라 강자를 돕는 것이 무언가를 남기는 '의미있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달리기 30분을 해서 살이 쪽 빠지는 체질을 가져서 그로인해 아주 큰 생산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누군가는 달리기 30분 해봤자 아무렇지도않고 힘들기만하고 삶에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을 수도 있다.

 

의미라는 것이 생산성과 사회적기여를 내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누구에게나 동일하지 않으며 그 두가지가 동시에 만족해야만 한다는 조건을 충족해야만한다.

 

 

다시 정리하자면 

1. 의미를 '나와 다른 사람의 강점을 개발하는 일' 이라고 정의했을 때

2. 의미란 효과나 효율, 생산성에 있지 않으며 ( ex 역사학이 강점인 사람에게 생산성을 요구한다면? )

3. 또한 정의로움이나 복지, 분배에 있지 않다. ( ex 강점을 개발하는 것이라는 명제 자체에서 탈락 )

 

 

그렇다면 의미라는 것은 어떻게 파악해야할까?

지금 내가 하려는 활동이 의미있는 일인지 파악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

 

그것은 바로 '공인과 공식'에서 온다.

공공적으로,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것.

그것이 의미있는 일을 파악하는 핵심적인 변수다.

공인된 판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 자체가 의미로 다가오게 되어있다.

 

공인이라는 것은 매우 엄격하다.

모든 사람이 납득할만한 규정치를 두어야하며 꼼수나 반칙을 허용하지 않는다.

치사하게하지 않고, 정당하고 당당하고 적법하게 무언가를 할 수 있는가? 에 대한 능력을 따진다.

 

앞서 살펴보았던 의미의 잘못된 파생은 <생산성과 정의로움>이었다.

공인이라는 것은 약자를 돕는 정의로움이 아니라, 적법하고 당당한 실력을 정의롭게 만들어내는 데에 중점을 둔다.

또한 당연히 엄격한 조건에서 달성한 실력은 당연히 생산성을 가지게 된다.

두가지의 잘못된 의미의 파생을 한번에 끌어안는 개념이다.

 

 

 


 

 

게임에서 공식적인 랭크게임을 할 때야 비로소 긴장이 되고, 설렘이 온다.

아무리 연습게임에서 잘하던말던 공식된 판에서 하는 게임은 마치 물 속에서 굴절률과 중력이 다르듯이 달라진다.

연습게임들은 모두 흩뿌려지고 흐지부지되지만

공식게임은 반드시 '기록'에 남게 된다.

의미있는 일이란 기록되는 일이라고 볼 수 있겠다.

남기게 된다.

그게 비록 돈이 되거나 실용적이지 않더라도 생산적이지 않더라도 

의미있다고 할 수 있다.

 

의미란 뜻깊은 일을 한다, 가치있는 일을 한다, 대의를 위하고 사람들을 위한다 라는 개념이 아니라

그저 기록되는 일에 있다.

 

한자로 살펴보면 놀랍게도 '뜻 의'자는 '기억할 억'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미 자는 '맛 미' 자다.

뜻의 맛은 뭔지 모르겠지만

"기억의 맛"이라고한다면 어느정도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맛있는 기억을 만들어 나가는 것.

일본어로 '우마이' 라고하면 맛있다는 것도 뜻하지만 뭔가를 잘하는 강점을 말하기도 한다.

그런 것처럼 뭔가를 잘하는 기억. 잘했던 기억.

그 기억은 엄격한 공식적인 판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

 

정식적이고 공정하게 다른 누군가보다 무언가를 잘하게 되는 기억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의미있는 일을 하는 삶이다.

 

 

 


 

돈을 오지게 벌어봤자 그것은 공식적이지 않을 수 있다.

좋은 돈과 나쁜 돈이 나눠진다고 한다면

그것을 나누는 기준은 반드시 의미일 것이다.

맛있는 기억을 통해 번 돈은, 아마도 오래 갈 것이다.

 

공인된 시험이 없는 분야,

취업할 때 요구되는 공식적인 스킬이 아닌 분야는

모두 의미없는 일인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의미가 있어질 때까지 해서는 안될 일이다.

일상과 업, 취미와 일이 구별되어선 안된다.

동기부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모든 행위는 의미있어야한다.

다시 해석해서 말하면, '어떤 공인된 판에서 사용되는 것의 실력을 늘리는 일'이 나의 행위여야만한다.

"물구나무서기" 같이 비공식적이며 사용되는 곳이 없는 운동은 하지 않아야한다.

 

그럼 나같이 하등 쓸모없는 철학글을 쓰는 행위는 의미 없는 일일까?

철학만큼 비공식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이 들어간 것도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나의 글은 타이핑되어 '기록'되고 있다.

이것은 남겨지고 적어도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의미있는 일이 될 수 있다.

 

물구나무서기도 동영상으로 찍어서 유튜브에 올린다면 그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공식적인 판에서 평가를 받고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라도 의미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어떤 일이라도 기록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큰 의미는, 큰 기록에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돕거나, 엄청난 생산성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나자신과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겨지는 것이 가장 큰 의미다.

 

 

 


 

굳이 공인된 자격증이나 심사가 없다고하더라도,

나 스스로 엄격한 조건을 걸어서 

의미를 만들 수도 있다.

 

등산가들이 산소통없이 등반한다거나

무동력으로 세계일주를 하는 등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조건을 스스로에게 걸어서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

 

어려울 수록, 스스로의 힘으로 해낼 수록 맛이 생긴다.

옷을 하나하나 벗듯이 한단계 한단계 야생의 바바리안이 되어 살아갈수록 의미가 생긴다.

 

30분 운동을 하는 것은 동기부여가 되지 않아 실행하기 어렵지만,

5시간 운동하는 것은 동기부여가 되서 더 쉽게 달성할수도 있다.

뇌가 그렇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것을 한다는건 참으로 모순적이다.

어려운 것은 어려우므로, 해야할 이유가 없다.

의미를 따져봤자 그것을 달성하지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의미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어떤 격차가 필요하다.

남들은 잘 못하는데, 나는 그래도 할만하기에 하는 방향이어야한다.

여기서 어려움이란 '사회적 어려움' 즉 모두에게 적용되는 공공적이고 공식적인 어려움을 뜻해야한다.

그리고 그것을 나만큼은 해볼만하고 할만하다고 느끼고 즐길 수 있어야만 한다.

 

공공적이고 공식적인 어려움이기에, 당연히 나에게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어떤 영역에선 힘든 것이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고, 어렵지만 어렵지 않은 모순적인 지점이 있다.

심리적인 기쁨, 회복이 있기 때문에 가능해지는 일이다.

 

 

심리적 기쁨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기능한다.

다시말해 문제가 크면 클수록 기능한다.

또한 기만적이고 역설적일수록 기능한다.

여성이 힘이 쎄다던가, 남성이 요리를 한다던가 할수록 기능한다.

보상이 크기때문에 그곳에서의 어려움은 어려움이라고 느껴지지 않고

의미있다는 방식으로 느껴지며

그로인해 동기부여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럼 의미있는 일을 구별하는 방법, 즉 동기부여를 할 수있는 방법을 정리해보자.

1. 내 강점을 활용하고 성장시킬 수 있을 수록 ( 타인의 강점을 활용하고 성장시킬 수 있을 수록 )

2. 공인된 것, 공식적이고 엄격한 것 일수록, 기록할 수 있으며 비교할수 있을 수록

3. 도구를 사용하지 않거나 과거의 기술을 활용하는 등 야생에 가까울 수록, 스스로 할 수록

4. 문제가 크면 클수록, 어려우면 어려울 수록

5.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못하면 못할 수록 

6. 꿈이 크면 클 수록

 

의미는 커진다.

기억의 맛이 맛있어진다.

그렇기에 하게 된다.

 

 

몇가지 잘못된 의미와 동기부여를 생각해보자.

1) 체력이 원래 허약해서 해병대에 입대해 삶과 나 자신을 극복한다?

강점을 활용해야한다는 조건에서부터 탈락하는 아주 잘못된 개념이다.

2,3,4번은 충분히 충족하지만 그것을 굳이 내가 해야할 이유가 없고 잘 할수도 없다면

의미는 만들어지지 않고 동기부여는 박살이 나는 법이다.

약한 것을 강한 것으로 하려고 해서는 절대로 안되는 법이다.

 

 

2) 희귀병에 결린 어린환자를 위로해주고 병원비를 지원해준다?

이것도 역시 강점을 활용해야한다는 조건에서부터 탈락한다.

위로를 해줄 거면,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위로를 잘하는 사람의 범주에 속해야만한다.

그 범주는 이미 간호사들이 하고있고, 복지 담당자가 하고 있다.

그것을 왜 내가 해야할까?

나는 내가 잘하는 것을 통해서 어린 환자에게 도움이 되면 된다.

내가 제품을 만든다면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혜택을 주고 내가 운동선수라면 좋은 경기를 통해서 그 환자에게 기쁨을 주면 되는 것이다.

 

3) 자격증을 수집한다.

공인된 시험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분명히 의미있는 일이고 동기부여가 확실하다.

하지만 공공성 하나에만 기대는 것은 위험하다.

실제로 세상의 문제가 더이상 없는데도 공식적인 자격증과 직책은 명맥을 유지할수 있기 때문이다.

AI로 모든것이 대체될 판에 구시대적인 지식과 노동에 얽매인다면 그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4) 자기 만족형 자연인, 장인들

공인되지도 않은 영역에서 무언가에 집착하는 것은 의미있다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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