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학에서 영지식 증명( zero-knowledge proof )은
아무것도 안 알려주고, 증명을 하는 방법이다.
어떠한 것도 알려주지 않았는데 건실하고, 참이고, 정직함이 수학적으로 증명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보안이라고 볼 수 있다.
침묵했는데, 갑자기 소리가 들리는 것과 같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초코파이 정 같은 것이다.
지켜야하는 보안의 영역이 아니라 공격을 해야하는 영역이라면
누가 범죄자이고 마피아인지 증명하는 능력이 될 수 있다.
문제에 대한 힌트를 얻지도 않았는데 그냥 알아버린다면
당연히 그 가치는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냥 그런줄로 알아.
왠지, 그래.
왠지 모르겠는데, 그래.
왠지 알것 같아.
0인데, 1이야.
보지않았는데 본 것처럼 된다.
직감, gut feeling, 육감, 본능 이라고 볼 수 있다.
머리로는 알 수 없지만,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이다.
몸은 모르지만, 머리로는 아는 직관, 추리, 연상, 판단, 논리와는 완전히 정반대다.
이렇게 이렇게 되다보니, 이게 맞아.
라는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머리를 굴려서 분석하여 아는 논리다.
마치 선을 하나하나 연결해서 톱니바퀴를 하나하나 연결해서 조립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몸이 안다는 것은, 체험했기에 아는 것이다.
실제로 겪어봐서 몸이 알고 있는 것이며 그냥 정답을 알고 있는 것이다.
논리는 굉장한 확신을 만들어내지만, 알고보면 텅 비어있는 것이다.
실제로 체험을 해본적이 없으니 말이다.
직감은 이상한 것 같지만, 알고보면 속이 꽉차있다.
실제로 몸으로 겪어보고 느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에 입력된 값이 아니라
하드웨어에 하드 인풋된 값이다.
하드웨어에 입력이 되기 위해선, 고통이 필요하다.
문신을 하기위해 바늘로 찌르는 것과 같다.
체험을 했다는 것은 고통을 겪어봤다는 뜻이고
그 고통 덕분에 알고 있게 된다.
'그노시아' 라는 게임은 우주선에서 15명이 갇혀 마피아게임을 하는 게임이다.
게임이 끝나도 다시 첫날로 돌아가서 역할이 바뀌고, 계속해서 게임을 진행하게되는 무한 루프에 갇힌다.
마지막 엔딩에서 마피아를 지목하는 근거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루프하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나는 너가 마피아라는 것을 알고있어'
상대방을 마피아로 지목하는 근거로써, 내가 '루프'하고 있다는 점을 제시한다.
일단 루프자체가 비현실적인 일이지만
그것을 차치한다면 그 어떠한 논리보다 완벽한 근거가 되는게 사실이다.
실제로 보고왔다는데 그것을 반박할 방법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답은 이미 나왔고, 중요한 것은 루프했다는 것을 증명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영지식 증명의 원리는 이렇게 되어 있다.
철수가 갈림길에서 관찰하고 있고, 영희는 A 혹은 B 길 중 하나를 선택한다.
만약 A를 선택한 뒤, B길을 통해 다시 돌아오는 것을 철수가 확인 했다면
혹은 B를 선택한 뒤, A길을 통해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면
영희는 반드시 동굴 안쪽에 있는 철창을 통과할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
그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았음에도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회전했다는 사실이 곧 증명이 된다.
실제 인생에서도 같은 문제가 아주 약간 다른 형태로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것을 경험한다.
같은 방식의 고통과 같은 실수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실수와 문제에 대해서 정말 올바른 답을 내놓았을 때 비로소 문제가 끝나고 다음단계로 넘어가는
아주 순차적이고 아주 게임 퀘스트적이고 생명체적으로 설계되어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부모가 싫어서 도망갔는데 남편을 부모랑 똑같은 사람이랑 만난다던지,
혹은 성별까지 바뀌어서, 분야와 업종을 넘나들면서 다종다기하게 똑같은 문제가 여러가지 방식으로 표현된다.
자기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7줄의 글을 통해 '루프'의 존재를 인식했다면
세상이 루프되고있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한다면
그렇다면 내 몸은 '정답이 새겨진' 상태가 되는 것이며
'아무것도 모르지만, 알고있는' 상태임이 증명된 것이다.
'나는 알아' 라는 것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정답이라는 말이다.
내 몸은, 죽어본 몸이다.
문제에 치여서 죽어본 사람이다.
부활한 몸이다.
겪어보고 체험한 몸이다.
멍청하게 답을 몰라서 죽었어도 상관이 없다.
반드시 죽기 직전에 마피아, 범인을 볼 수 밖에 없게 되어있으니까.
오히려 멍청하게 죽어야만 범인을 알 수 있다.
영지주의 ( Gnosticism ) 에서 말하는 지식, 앎이라는 것은
바로 그 죽음에서 비롯되는 명확하고도 명확한 앎이다.
루프에서 탈출하여 다음단계로 나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노시아 게임 마지막 엔딩에서는 마피아가 누구인지 알아도 마피아를 제거하지 않는 선택을 한다.
1. 마피아를 제거한다고해도 또 다시 루프 속에 갇히기 때문.
이건 물리적인 이유다. 그냥 그렇게 되어있다.
문제를 해결해도 문제가 또 다시 복사되어 생기는 구조이기에 절대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야함을 이해한다.
현실세계도 당연히 완전히 그렇게 되어있다.
2. 수 많은 루프 속에서 누구라도 마피아가 되어 사악해질 수 있음을 알았기에.
일종의 연민일 수도 있고 나 자신을 위함임을 알 수 있다.
내가 마피아 역할을 하게 되었을 때, 제거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전체적인 생태계를 생각한다면 그 어떠한 악이라도 존재 이유가 있음을 이해한다.
3.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관찰한다.
모든 사람에 대한 데이터를 채워야만 루프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게임의 조건처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전체론적인 이상을 원하기에 루프라는 것이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회전하는 이유는 모든 것이 뒤섞이고 하나가 되기 위함은 아닐까?
이상의 이유에 의해 마피아를 제거하지 않고 그렇다고해서 그것을 방치하지도 않는다.
마피아를 '다른 우주'로 내보내는 선택을 한다.
여기에 있으면 해가 되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다른 우주에서 악한 것이 악한 것이 아니라면.
모든 것이 완벽한 유토피아가 완성되는 것이다.
패러다임이 변경되어, 지금 악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필요하고 선이되는 우주로 이동하는 것.
그렇게되면 모든 것이 윈윈으로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다.
마피아를 품었다는 것, 문제를 품었다는 그 요소가
다른우주로 넘어가게 하는 티켓이 되어 함께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갈 수밖에 없기에 가게 되는 것이다.
그 우주를 향한 길은 반드시 직감의 형태로 온다.
왠지 모르겠는데, 그게 맞는 것 같은.
모르지만 알 것 같은.
심증에서 물증으로 이어지는.
전혀 논리적이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으나 정답이라고 느껴지는.
바깥이 아닌
나의 내면에서 근거없이 시작하는 것.
그냥 그런 것.
그냥 아는 것.
조용하고 고요한 침묵 속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다.
섬찟할 것이다.
문득 기시감이 들 것이다.
이 선택은, 과거에도 했었던 선택이야.
죽어봤었던 기억이 일어난다.
나는 앎과 동시에, 지금의 나는 모르고 있다.
머리로는 당연한거같은데, 뒤져본 기억이 어렴풋하게 일어난다.
그렇다면 이제는,
과거와는 정말로 다른
단 한번도 선택해보지 않은 선택을
해야만 할 때이다.
어떠한 이유도 없이
무지성적으로 말이다.
오로지 본능과 직감만으로 말이다.
무지성적이어야만 이 루프를 탈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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