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단순하다.

많이 받고, 많이 주는 것을 추구하면 된다.

그게 진짜 상호성이다.

 

하지만 정말로 많이 받고 많이 주면 남는게 0이다.

 

그렇기에 우선 내가 많이 받고 적게 줘야한다.

하지만 받는 상대방은 그 적은 것을 받고도 '많이 받았다' 느낄 수 있어야한다.

1000만원이 있을때 10만원은 별거 아니다.

하지만 돈이 만원밖에 없는 사람에겐 10만원은 엄청나게 많이 받는 것이다.

나또한 마찬가지다.

상대방 입장에선 별거 아니지만, 내가 받았을때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추구해야한다.

 

 

결국 '많이 받는다' 라는 욕망, 욕심을 철저하게 내야만하는 것이 인간으로써 올바른 태도였다.

큰 꿈, 높은 꿈을 꿔야만한다.

그래야 가장 많이 준다.

많이 받았기에 당연히 줄수도 있는 법이다.

 

희생의 양이 많은 것을 '사랑' 이라는 단어로 정의한다면

이렇게 희생이 별거도아닌데 많이 받는 것은 '기쁨'이라는 단어로 정의한다.

 

기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즐겁게 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냥 줘서도 안되고, 그냥 받아서도 안된다.

많이 받고, 많이 주면 그만이다.

 

누가 이 논리에 반박을 할 수 있을까?

누구도 지지 않고 모두가 이긴다.

 

 


 

내가 많이 받으려면, 신기하게도 

슬픔이나 단점, 바보같은 점, 허술한 점이 있어야한다.

그래야 그것을 채워주는 다른사람에게서 큰 기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사람에겐 별거 아니지만, 나에겐 큰 소중함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문제를 품은 사람,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오히려 사회적이며 인간적이며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갓난 아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데도 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 힘은 지속적인 상호관계에 의해 성장을 만들어낸다. 

한명이 아닌 여러명이 결합할 수 있는 상호 통신규약 프로토콜,

즉 인터페이스가 만들어져 있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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