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혹은 극초반이 나쁠 때야말로 승리를 의미한다.

그 예시로 2022년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우승, 우사인볼트의 세계신기록, 메이웨더의 수비부터 시작하는 경기방식, 항상 마지막에 가장 빠른 마이클 펠프스 등을 들 수 있다.

 

물론 시작도 좋고 후반도 좋게 이기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건 할만하거나 상대방과의 레벨 차이가 심하게 날 경우에서 자주 벌어진다.

가장 높은 레벨에서는 작동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나르시스트 짐승들은 이기려고 발작을 하기 때문에, 초반에 엄청나게 강하게 치고나온다.

그렇기에 일반적이고 인간적인 힘을 가졌을 때, 같은 레벨에서는 반드시 초반에 패배할 가능성이 크다.

 

 

 

슬로우 스타터, 느린 시작과 비슷하지만 조금 뉘앙스가 다르다.

예를들면 달리기시합에서 느린 시작은 거의 패배나 다름없는 일인 것처럼 종목마다 뉘앙스가 다르다.

침착하고 차분하게 시작한다거나, 적은 양으로 시작하는 개념과는 다르다.

적은 횟수의 공격이 아니라 완전히 공격을 배제하고 무지성적인 수비만으로 시작하는 메이웨더의 경기처럼

완전히 방향성이 틀어진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작은 승리와 패배는 격차가 크다.

작은 성공과 실패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 중에서 실패부터 시작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침착함이나 차분함, 슬로우하고 목가적인 상태와 정반대로

급작스런 패배로 인해 엄청나게 크게 진동하며 죽음에 다가가는 느낌을 가지고 있는 상태다.

 

 

오토바이나 차에 시동을 걸고 주행초반 30분 안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해보자.

그것은 절망적인 문제지만, 아직 멀리 가지 않았기 때문에 대처할 시간도 있으며 고속도로나 타지에 도착하기 전 가까운 정비소에 방문할 여유가 생긴다.

그렇다면 굉장히 역설적으로 주행 초반에 문제가 없을 때보다

주행 초반에 문제가 있을 때가 가장 좋은 상태가 된다.

왜냐면 차량을 고친지 얼마 되지 않은 가장 쌩쌩한 상태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었기에, 적어도 그날은 가장 문제가 없는 최고의 날이 된다.

이런 역설은 반드시 시작이나 극초반인 상태에서만 작동된다고 볼 수 있다.

빠른 액땜을 하고 나아갈 수 있다.

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작은 바이러스를 주입하는 예방접종과 같은 효과를 만들어낸다.

 

 

 

 


 

 

 

진짜 이상하게도

쉬울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할 때마다 갑작스런 어려움에 봉착하고

쉽지않고 어려울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할 때마다 의외로 할만한 상태를 겪는다.

이건 정말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매번 완벽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쉬울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 진짜 쉬웠을 때도 있었다며 반박할 수도 있으나, 그런 상태는 레벨차이가 많이 나는 잘못된 예시들에서나 벌어지는 일이다. 

 

 

세상은 몇 cm차이, 잠 1시간을 덜 자서 약간 피곤한 상태 등에 의해 

될 것도 안되는 상태에 빠지게 될 수 있다.

잠깐 한눈 판 사이에 어떠한 일도 벌어질 수 있다.

몸을 10cm 구부리는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때도 있고 

잠깐 뒤를 돌아보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데

터널 시야에 빠져 사소한 차이를 놓쳐버린다.

그로인해 쉬울 것 같다고 생각하여 방심했을 때 잘못 조절된 힘의 배분으로 인해 거의 100%에 가깝게 패배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선 하나만 그어도 절대 풀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도 풀리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 의외로 창의적으로 힘이 잘 배분되어 거의 100%에 가깝게 승리하는 메커니즘으로 돌아가버린다.

마라톤 선수가 3등으로 들어왔는데 3등을 했는지도 모르고 있는 상태

게임을 이겼는데 게임이 끝난줄도 모르고 계속 게임을 하고 있는 선수

무서울 것 같아 각오를 제대로 하고 준비도 하고갔는데, 벌써 정상에 도착했어? 라는 놀라움을 느끼는 상태.

 

 

 

그런 선수들이 게임을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태다.

걱정스러운 상태,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워서 최대한 최대한 최대한 어떻게든 방법을 생각하고 준비를 하는 보수적인 상태.

자칫 보면 바보같고 쿨해보이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걱정스럽고 불안에 떠는 상태

어려움을 직시하고 고통을 미리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상태가

현실에서 승리를 찍어내듯이 모델링해버린다.

 

 


 

 

군대 훈련소에서 동기와 '사람은 원래 자기랑 반대로 살아야 성공이다' 라는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말은 정말 진실되고 힘든 순간에 힘이 되는 말이 었다.

그런데 구글에 아무리 검색해봐도 '반대로 살기' 라는 개념에 대해 이야기 한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정말 도달해야하는 최고의 목표지점인데도 말이다.

이런 지식들이 목사님이나 스님의 말씀에, 책과 블로그에 도처에 돌아다녀야만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있다.

 

mbti가 INFP면 ESTJ로 되는 것.

ENFJ면 ISTP 가 되는 것.

그로인해 mbti가 중앙값에 정렬되는 것이 인간으로써 추구해야할 최고의 가치다.

 

자기자신이 스스로 중앙값에 정렬 되는게 최고겠지만 그렇게 될 수 없다면,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진 사람과 결혼을 하거나 친구가 되야만 완성에 도달하게 되는게 세상의 이치, 창조의 원리다.

자연스럽게 남자는 여자를 원하게되고 여자는 남자를 원하게 된다.

 

그렇게 봤을 때

머릿속에 어려움을 생각하는 것

시작을 실패로 시작하는 것이

성공을 불러오는게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가 된다.

반대측면에 대한 강한 원함이 생성되어

과하게 준비하고 대비하고 자원을 투자하게 되기 때문이다.

활을 당기고 방아쇠를 당기는 원리처럼 당연하게 균형있는 중앙값으로 튕겨져 나온다.

 

 


 

 

그럼 원하는 것을 끌어당기는 시크릿은 뭘까?

머릿속에 원하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원하는 것의 여집합을 생각하는 것이 정확한 끌어당김을 만들어낸다고 볼 수있다.

"원하는 것 이외의 모든 것" 혹은 다르게 표현하면 "원하는 것의 정반대" 를 머릿속에 넣었을 때

도장 찍듯이 설계도가 그대로 찍어지듯이

원하는 것이 나올 수 있다.

 

시크릿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끌어당김의 법칙은 꿀떡 넘길 수 있는 쉬운 것이 아니다.

원하는 것은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것을 생각해야하기에 어려운 일이다.

다행히도 세상은 2진법으로 이루어져있다.

원하는 것의 정반대도 하나의 개념이다.

여자를 원하면 남자를 머릿속에 넣는 것, 남자를 원하면 여자를 머릿속에 넣는 것이면 충분하다.

여자를 매일 떠올리는 사람보다, 몸이 좋은 남성을 매일 떠올리며 그 모습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역설적으로 여자를 끌어당기지 않을까? 괜히 여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려하면 범죄가 되거나 어색한 상태가 될 뿐이다. 갈 수 있는 길을 가야지 금지된 곳을 강제로 가려고 할 필요가 없다.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자기자신이 최고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머릿속에는 자기자신이 아니라, 나 빼고 다른 모든 사람 즉 타인만으로 머릿속이 가득해야한다.

성공을 원하면 실패를 머릿속에 넣어야하고

돈을 원하면 가난을 머릿속에 넣어야한다.

 

사탕이 먹고 싶으면, 머릿속에 사탕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쓴 맛, 한약을 하루종일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행복하고 밝은 하루를 원한다면

매일 공포영화나 공포 컨텐츠를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인간은 왜 처음에 급할까?

나이가 어릴수록 급진적이고 돌발적이다.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그것을 그 즉시 해결하려고 하는 짐승과도같은 습성을 지닌다.

 

그래서 "가장 처음에 만난 나의 장점" 은 대게 허접하고 쓰레기같은 껍데기일 가능성이 크다.

문제를 해결하려고하다가 오히려 다른 부작용을 낳는 강한 해결책 ( ex 범죄적인 복수 ) 를 해버린다.

너무 강한 두려움을 만났을 때 강하게 수축하고 움추러들어 급발진을 하는 개념이다.

어쩌면 세상이 의도적으로 우리를 '처음에 실패'하도록 만들기 위한 작용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장점을 가지고도 실패하는" 상태에 항상 처음에 노출되게 된다.

자기자신이 소중한데, 실패를 하고 개취급을 당하게 되는 청춘의 시절을 반드시 보내게된다. ( 나르시스트 짐승 제외 )

하지만 사실상 자기자신이 소중하지 않다는 걸 깨달을 때.

머릿속으로 자기자신이 소중한게 아니라 타인이 더 소중함을 알 때.

자기의 장점을 내려놓을 때.

 

그때 비로소 자기자신이 진짜 소중한 사람이 된다.

의도적으로 두번째 장점만을 활용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될 때다.

내가 약하고,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상태다.

작고 느리지만, 부작용이 없고 지속가능한 상태로 자전하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한번 뒤지고, 부활하여 새로운 나로 살아갈 때.

공룡이 아닌 작고 털많은 포유류로 세상을 진화시켜 나가는 것처럼.

나 자신을 탈피하고 진화 시켜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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