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자기가 생산한 것을 자기가 먹는다면 어떻게 될까?

당근을 주로 생산하는 지역에서, 당근을 주식으로 먹으면?

신토불이 정신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산한 것을 가장 주로 소비하는 개념이 된다면?

 

 

그렇게 되는게 어려운지 쉬운지는 떠나서

엄청난 효율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생산한 것을 산지 직송으로 가장 빠르게 가장 맛있을 때 먹을 수 있을 뿐더러

가격도 가장 저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기대지 않아도 되며 원하는 것이 사라지는 엔트로피 최저치 상태가 될 수 있다.

 

오타니 쇼헤이가 투수와 타자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과 같은 창의적인 상태다.

벌매가 말벌만을 먹이로 삼는 것처럼

더럽고 두려운 존재가 내 주변에서 나를 공격하더라도 아무렇지 않은듯 털어내버리고 

오히려 먹거리로 삼아버리는 것은 엄청난 진화의 경이로움이다.

 

 

지금의 내 상태를 풍성한 상태로 규정하기 위해선

오토파지 상태가 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첫째로 단식이 필요하다.

어떤 단식이냐면, 바깥에 있는 맛도리들을 찾아 헤매는 기초적인 짐승성을 단식하는 것이다.

뭔가를 그만 둬야한다.

어떤 부분에서든 각성을 해서 자기자신을 버리는 단계가 있어야 한다.

 

거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두번째로 나에게 있는 것을 먹어들어가는 단계까지 들어가야한다.

그냥 어쩔 수 없이 자기자신을 먹는게 아니라,

자기자신이 "제일 맛있어서" 당연히 먹게 되는 단계가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자기혐오와 자기사랑이 칼박으로 동시에 작동해야만하는 변태같은 문제다.

 

전류가 한쪽방향으로만 흐르게하는 다이오드의 발명, 증기기관의 발명 등 과학기술 발전에도 이같은 원리가 숨어있을 수 밖에 없다.

차단과 갇힘, 그리고 그 안에서만 진동하는 생명의 순환이다.

 

 


 

 

문제와 문제 해결책이 동시에 주어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배고픔과, 먹을 것을 동시에 준다는 것은 대체 무슨 이유일까?

나에게 있는 문제가, 나에게 있는 해결책으로 풀린다는 것은 대체 무슨 개념일까?

 

양아치들이 많은 지역에 태어나서 고통받았는데

알고보니 통뼈에 엄청난 무술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피해자도 아니고, 가해자도 아닌.

독과 해독제가 동시에 존재하는.

대체 이게 뭘까?

매우 변태같다.

 

문제와 문제해결책이 동시에 있으면 '반복'의 개념이 들어간다.

증기기관의 피스톤 운동처럼 지속성을 가지고 있다.

어짜피 내려올건데 산에 왜 올라가냐는 말과 같다.

올라갔다오면 체력이 증가하고 기분이 좋아지니까.

세상을 더 제대로 살아갈 수 있으니까 올라갔다가 내려오더라도 올라간다.

 

반복에 의해 강화되기 때문에

한 사람의 범주를 넘어 선다.

 

그렇다면 문제와 문제해결책이 동시에 주어졌다는 것은

나라는 범주가 작지 않고 크다는 말이다.

나만 나쁜 것도 아니고, 나만 소중한 것도 아니다.

다시말해 나라는 것은 매우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더 커질 필요가 있다.

 

 

 

 

 

 

 

 

 

 

 

 

 

 

'생각하기 > 인생 전략'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인생전략 ] 나쁜 시작  (1) 2025.11.19
[ 인생전략 ] 밑 빠진 독  (2) 2025.11.12
[ 인생전략 ] 제자리  (0) 2025.11.09
[ 인생전략 ] 자기 복제  (0) 2025.11.08
[ 인생전략 ] 절반 먹고 시작하기  (0) 2025.11.05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라이프코리아트위터 공유하기
  • shared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