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 추워서 여름이 오기를 강렬하게 원한다고 생각해보자.

내가 강하게 원하다고해서 여름이 빨리 오지는 않지만,

계절이 반대인 나라에 여행을 가거나, 최대한 따뜻하게 난방을 하는 것도 여름을 오게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여름으로 가는 순간, 지금보다도 겨울이 가까워지는 모순적인 상황에 봉착한다.

한겨울인 1월달에는 한두달만 있으면 따뜻한 봄이 오며 다시 겨울이 오기까지 1년이라는 세월이 걸리는데, 

한여름인 8월달로 이동해버리면 겨울이 오기까지 5개월밖에 남지않은 상황이 벌어진다.

내가 그토록 거부하고 싫어하던 겨울이라는 문제가 해결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B급 공포영화마냥 또다시 문제가 예전보다 더 급박한 주기로 코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자연적인 여름이 왔을 때 기뻐할 수도 없다.

이미 만끽해버린 여름이라, 반갑지도 않다.

반갑지도 않으며, 몇개월 안남은 겨울이 기다리고있다.

즉시 강제적으로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할 때 값을 50% 비싸게 얻는 느낌이며, 자연에 대한 행복도 50% 줄어든다. 

그 주기가 빠르면 빨라질수록 진동하고 진동할수록 값은 복리로 계속 상승하게된다.

 

 

한겨울이라는 추위의 문제를 풀지않고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어떻게보면 최고의 해결책이다.

한겨울과 가장 먼 곳은, 오히려 한겨울이라는 말도안되는 회전적인 모순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문제와 해결책이 동시에 주어지는 느낌이다.

손실을 보고 있는 자체로, 그냥 강해지고 있다.

 

 

무언가를 즉시 원해선 안된다.

고통을 받아들이고 품을 때, 고통에서 가장 멀어지는 법이었다.

어떤 고통이던 손실이던간에,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에 걸맞고 상응하는 이득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고통과 주기적으로 가장 멀어진다.

어딘가에서 1만원 손해 본 상황이라면 너무나도 아까워서 어딘가에서 1만원을 절약하려고 하게 되기 마련이다.

어떠한 손실도 그에 걸맞게 반작용이 일어난다. 물론 그것을 받아들였을 때만 말이다.

 

 

무언가를 즉시 원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주어진다.

야동, 담배, 술 등 중독적인 모든 것들은 당연하고 과도한 난방, 과도한 냉방 등 일상적인 상황에서 과도하게 편해지려하는 모든 행위들은 반작용과 불감증을 일으키게 만든다.

 

 

겨울에 여름이 오기를 원하기보다

차라리 겨울과 여름사이를 즐겨보는게 어떨까?

겨울의 장점을 활용해보기도하고 겨울을 통해 배울점을 배우면 그만이다.

가만히 있으면 봄이라는 좀더 잔잔하면서 부작용없는 해결책이 코앞에 다가온다.

또한 천천히 온 여름을 감각할 수 있고, 만끽할 수 있다.

 

꿈을 꾸고 목표를 세우되, 그것을 빨리 원하는게 아니라 천천히 원하는 것이다.

최대한 오래 유지되었다가 빵 터졌을 때 가장 기쁘고 가장 큰 이득을 얻는 당연한 물리적 메커니즘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인식하고있다면, 고통의 과정에서조차 가장 행복한 상태를 불러온다.

 

 

 

기쁨을 얻은 뒤 서서히 고통 속으로 가는 것보다는,

고통을 한번에 킥으로 받은다음, 서서히 기쁨을 향해 나아가는 방향이 옳다.

모든것은 복리로 성장하기에 서서히 기쁨을 얻어감으로써 기쁨은 더더욱 성장한다.

물건을 할부로 사면 고통이 더 크기에 값을 한번에 치르는게 더 낫다.

고통이 언제 등장하는지 순서에 따라 완전히 개념이 달라진다.

사실상 등가교환 법칙이 아니다.

세상이 불공평한 것은 축복이다. 비대칭적인 치사한 이득이 이 곳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간이라면 차라리 고통속으로 들어가야한다.

무섭고 어렵고 두려운 곳으로 가야만한다.

 

 

바로 지금 문제를 껴안아야한다.

문제를 해결하는게 아니라 바로 지금 등장시켜야한다.

그것이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

바로 지금.

바로 지금 5분 안에 등장시켜야한다.

절대로 문제가 해결되서는 안된다.

지금 당장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하는게 아니라

지금 당장 고통을 직면해야만한다.

그곳이야말로 고통과 가장 거리가 먼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남에게 손실을 주는 것도, 내가 손실을 보는 것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전혀 죄책감이나 박탈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 모든 것이 기쁨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품고 있는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겨울과 여름의 사이를 더욱 더 늘려야한다.

계속해서 겨울에 있고자 해야한다.

주기의 파장을 늘리면 늘릴수록, 느슨해지면 느슨해질수록 그 넓어진 봄의 공간에서 살아갈 수 있다.

원하지 않을 수록, 원하는 것을 제대로 얻는다.

겨울에 여름을 원하지 않고,

겨울에 겨울을 원한다면 넓은 봄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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