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적은 언제나 양동 작전으로 공격한다.
강할 수록 양쪽 다 다룰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양동작전을 실행해서 손해볼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공격할 것 같기도 하면서, 도망가기도 한다.
조금 친해진 것 처럼 연기하면서, 공격을 하기도 한다.
앞으로 전진했다 뒤로 후퇴할 줄 아는 양쪽 뇌를 모두 활성화 시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흐름이다.
동네 바보들이 그저 돌격 앞으로 해오는 것을 막아본 경험을 너무나도 소중히 여겨서,
그저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을 뿐인데 문제가 완전히 풀려버린 자신감 넘치는 경험담을 소중히 간직해서
나의 결핍이 해결되기 바라는 것은 너무나도 순진하고 허접한 생각이다.
어떤 단점은 아주 잠깐 연습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다.
그런것들은 단점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고, 문제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것들이다.
하지만 어떤 단점은 너무나도 깊은 저주에 걸린듯 절대로 해결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더 깊은 수렁 속에 빠지게 된다.
적들이 양동작전을 효과적으로 펼치기위해서 아주 작은 문제를 건드린다.
그럼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달려드는 순간, 본진의 식량창고에 불이 난다.
징기스칸의 망구다이 전략처럼, 작은 문제를 일으켜 그 문제에 걸리는 적들을 사지로 유인해 일망 타진한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 무언가가 되고싶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이 단점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이런 모든 마음들은 동네 바보들을 상대할 때는 기능하지만
큰 것을 상대할 때는 오히려 내가 동네 바보가 되는 완전히 역설적인 상황으로 변한다.
나는 무언가가 된다. 나는 무언가를 한다.
할 수 있다. 이 단점을 없애겠다.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
이 따위 생각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고싶다' 라는 태도가 유약하다며 비판하는 것도 잘못된 일이다.
멋있는 다짐인 것처럼 보이지만 완전히 똑같은 허접한 생각이다.
망구다이전략을 사용하려는 적들의 유인 병력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반드시 저 병력들을 없애겠다' 라며 한없이 청렴한 군인의 마인드로 멋지게 다짐한다고해서 적을 이길 수 있는게 아니다.
오히려 이런 강하고 적극적인 마음이 제대로 털리게 만든다.
모든 문제는 적들이 심어놓은 환상적인 유인책이다.
모든 단점, 모든 결핍, 모든 아픔에 다 적용가능하다.
그것을 해결하려고 손대는 순간 잡아 먹히는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지금 배가 아픈데 '이 아픔은 환상이다'라며 화장실에 가는 것을 거부하는 동네 바보는 되어선 안된다.
그건 문제나 아픔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다른 메커니즘을 가진다.
뚫려있는 길이 있으므로 그것은 감옥이 될 수 없다. 감옥이 아닌 것은 문제가 될 수 없다.
풀리지 않는 문제, 너무나도 어려운 것들에 대해서 적용해야한다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자, 문제가 해결되는 개념이 세상에 존재한다.
망구다이 유인 병력들을 따라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다.
단점을 단점인채로 그대로 놔두었을 뿐인데, 갑자기 승리할 수도 있다.
모든 교과서과목을 하나도 빠짐없이, 단점없이 모든 것을 완벽히 챙기려하는 모범생이 되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승리할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깨진 항아리를 붙이려는 노력과도 같다.
아무리 붙여도 효과적이지 못하다.
에너지 낭비이면서 의미가 없다.
지속적인 출혈이 이어진다.
절대로 이어붙여지지 않는다.
그 답이 없는 질문, 문제라는 우주에 갇히는 선택을 해서는 안된다.
해야할 것은 답이 있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단점이 있던말던 극한의 장점 하나로 일점돌파를 하는 것이다.
하루에 10만원 손해를 보던말던,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하루에 100만원 벌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재능을 키워나가는것이 동네 바보도 엄지를 치켜들며 강하게 동의할만한 메커니즘이다.
배가 아프면 화장실에 가면 되듯이.
길이 있는 곳으로 길을 따라 가면된다.
지금 여기 문제가 있던말던.
지금 여기가 더럽던 말던.
그냥 앞에 나있는 길로 걸어가면 그 문제가 있었던 사실과 우주는 그냥 없는 것으로 될 뿐이다.
정착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만이 진정한 문제 해결방법이다.
결국 끝까지 생각해보면 모든 문제에 대한 진정한 문제는 '나'의 문제로 귀결된다.
왜냐면 분명 뚫려있는 길이 있을 텐데 그것에 집중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선택을 다름아닌 '나' 가 했으니까.
결국 그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나'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내 문제였다는 것이다. 내 잘못이었다는 것이다.
나의 허접함이었다는 것이다.
그저 종교적인 참회가 아니라 실질적이고 객관적으로 내 잘못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문제를 일으킨 그 대상은 매우 작은데에 비해, 내가 잘못선택함으로써 잃은 손실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책임소재가 명확하다.
그 실제로 문제를 일으킨 대상이 나쁘고 잘못되고 사악한 것은 분명함에도 그렇게 책임소재가 나에게 있는 것이다. 그냥 유죄다.
돈을 벌고 싶다.
집을 가지고 싶다.
반드시 좋은 직장에 가겠다.
꼭 성공하겠다.
이따위 생각이 든다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망가자.
원하지 않을 때만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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