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생각할 필요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조건 가운데에 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여러가지를 아우르는 것이 비로소 내가 원하는 것이다.

 

거기는 이득이 많은 곳이며 어느 한 곳의 의견에도 치우치지 않은 완벽한곳이다.

어느곳도 아닌 nothing이지만 곧 everything이 되는 곳이다.

어느것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너무나도 정확하고 명확하고 디테일하게 원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누구의 의견도 듣지 않으면서 , 모든 사람의 의견을 반영한 곳이다.

적당함이고 적절함이다.

상징적으로만 말하는게 아닌 지리적이고 물리적인 측면에서도 가운데에 있다.

 

가운데는 중립인가?

경기장을 떠나서 관람객으로써 '너네 둘 의견 모두 맞는 것 같아. 그러니 싸우지마.' 따위의 안일한 말을 지껄이는 것이 아닌

두 의견을 종합해 경기장 가운데 말뚝을 박고 게임을 진행하는 것은 중립과는 거리가 멀다.

중립과 중용은 완전히 다르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과 무언가를 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그냥 모든 것에서 벗어나 원하지 않는 것과

원하지 않으면서 원함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은 전혀 다르다.

어떤 의견도 받아들이지 않고 울타리를 치고 아무도 받지 않는 것과

모든 의견을 받아들여 넓은 공간을 형성하는 것은 천지차이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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