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줌이 마려운데 오줌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기고 참아내고 어떤 행동을 시작한다.

어쩔 땐 그것이 멋있어보이고 좋은 성과를 얻기도 하지만

어쩔 땐 오줌을 싸면 안되는 곳에서 싸질러 최악의 부끄러운 참사가 일어나고 그로인해 더더욱 머리에 열이 차도록 노력하게 된다.

----> 탈모

 

범죄자들 특성을 보면 평소엔 굉장히 좋은 이웃, 특이할 정도로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많이 발견돼 사람들은 의아해하고 심신미약을 주장하기도하지만 너무나도 당연한 특징이다.

극과 극을 달렸기 때문에 비로소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N번방 범인 조주빈도 평소에 장애인 봉사단체 팀장이었고 봉사활동을 57회 했다는 것을 보면 소름이 돋는게 아니라 아 그래서 그렇구나 하고 보면 그만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처럼 기술이 발전된 미래 사회에서 모든 것을 예측하는 Ai가 개발되어 범죄가 사라지는 것은 망상이다.

올바른 미래사회라면 굳이 기술이 발전할 필요도없이

착한 척, 멋있는 척하는 것도 범죄자로 판단하고 감옥에 집어넣음으로써 범죄가 사라진 사회가 될 수도 있다.

 

힘든데 -> 안 힘든 척 한다.

마려운데 -> 안 마려운 척 한다.

하지 않아도 되는데 -> 해야된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로 머리에 열이 차고 발가락은 더더욱 차가워진다.

즉 물구나무서기로 살아가는 잔인하고 징그러운 고어 영화를 찍는다.

 

수치심과 부끄러움이라는 것은 자기의 몸상태와 전혀 다른 귀신과도 같은 다른 상태에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자기 몸이 힘들면 안하면 되는데 그것을 할 수있다고 판단하는 뇌 기능의 오류로 인해 발생한다.

 

남들이 못하겠다고 하는게 그것을 강제로 하게 함으로써 부끄러움을 줄 수도 있고

내가 스스로 수치스러움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그것을 하지 못하는 것이 두려운 일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은 두려운 일이 아닐 뿐더러 더 나아가 오히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것, 에너지가 없을 때 움직이지 않는 것은 당연히 자연스럽게 나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올바르게 주행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무언가를 거부함으로써 만약 불이익을 받는다면,

그 불이익에 대해서 또다시 거부를 실행하면 그만이다.

 

거부 이후에 받은 피드백이 부정적이다? -> 또다시 거부

회사에서 일을 거부했더니 왕따를 당하거나 욕을 먹었다면 그 회사 자체를 거부하면 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하냐 마냐를 따지는 쫄보들이 있겠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히 가능할 뿐더러 오히려 큰 도움이 된다.

결국 남좋은 일과 아주 작은 불편한 일 조금도 감당하지 못하는 쫄보새끼들이나 사회를 탓하고 세상이 억울하다고 지껄인다.

상대방이 협력하면 협력하고, 거부하면 거부하는 기본적인 팃포탯도 하지 못하고 노예가 되어서 살아가면서 

머리에 열차게 물구나무서기로 살아간다.

 

결국 남자들의 수치심과 탈모는 착한 척에서 온다.

'할 수 있다'는 정신병에서 온다.

'남자니까' 내가 강하다고 착각하는 무례하고 오만한 태도에서 온다.

아무것도 하지않고 이미 신이되어버린 

아무것도 하지않고 '나니까' 누구나 손가락하나로 이길 수 있는 어느 중2 학생의 머릿속과 같은 것이다.

 

조금도 사악해지지 않고 이득을 보지 않으려는 여성성이 단 하나도 없는, 물기하나 없는 무미건조한 장작에서나 나오는 에너지다.

당연히 그 장작은 열심히 활활 타오르고 재가 되어버린다. 

여성들이 보기에 이런 태도는 아마 극혐 중에 최고의 극혐일 것이다.

그로인해 탈모가 생겨서 더더욱 여성들과 멀어지면 그 자괴감에 의해 정말 범죄 아니면 자살밖에 남지 않은 삶이 되는 것이다.

외향형은 범죄를 저지르고, 내향형은 자살한다. 주어진 캐릭터 성격에 알맞게 그렇게 되어버린다. 의도하지 않아도 정해져있다.

너무나도 무섭다.

 

 

내가 약한 줄 알아야한다.

내가 약하면 무언가라도 하게 되어있다.

수치심을 느끼라는 말은 단 하나도 빗겨나지않고 정확히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약한 줄 알고, 깜냥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

결국 그 깜냥에 맞는 행동이 최고의 레벨업과 실력상승이 주어진다는 것까지는 굳이 몰라도 상관이 없다.

적어도 사람답게 살기위해서 나답게 살기 위해서

즉 생존을 위해서라도 내가 약한 줄 알아야한다.

내가 잘못되었고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휴식할 줄 알고, 내팽게쳐버릴 줄 알아야한다.

누군가 강제로 시키면 싸울 줄 알아야한다.

뒤로 가는 후진을 할 줄 알아야한다.

약하면 약하다고 말하면 된다. 그럼 오히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되어있다.

그것을 인정하고 직시했을 때 부끄러움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귀여운 것이 된다.

어린아이가 약하지만 고통받는 존재가 아닌 오히려 귀엽고 자유로운 존재인것처럼 말이다.

 

 

편안한 것이 가장 쎈 것이라는 걸 알아야한다.

극과극이 아닌 중도의 마음이 물구나무서기에서 벗어나 올바르게 설 수 있게 만든다.

 

 

수치심을 인정하지 않고 에고질을 하는 범죄자인지 판단하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그 범죄자들의 특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다.

자기가 약하지 않고 우주신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게 없다' 고 느낀다.

그렇게 아무것도 안하다가 특정한 상황이 오면

갑자기 급발진을 하며 엄청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그런 급발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얼마나 유지했는지에 따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다.

 

반대로 수치심을 직시하고 겸손한 사람의 특성은

'평소에 무언가 행동을 한다' 라는 특성이다.

평범한 상태일 때도 잔발을 치고 움직거림이 많다.

이런 특성들이 다이어트에 가장 효과적이며 격투기에서는 필수적이며 스포츠들에서 실력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일상에서 어슬렁거리고 서성거리는 실력들, 아무런 상황이 아닌데 아무런 이득이되는 상황이 아닌데도 사람들과 기분좋게 대화한다거나 배려하는 특성을 통해서 그 사람이 수치심을 직시하고 겸손한 사람인지 곧바로 파악할 수 있다.

 

 

 

내가 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반드시 이렇게 올바른 긴장상태에 있다.

일상적이며 사소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건 마지 정신줄과 같으며 생명의 탯줄과도 같다.

언제든 앞으로 튀어나갈 수 있도록 웜업이 되어있고 미리 준비되어있다.

취미로 하다가 프로선수가 된 스포츠 선수들 처럼 큰 이득에 대한 생각이 없이도 그 본질적인 효과가 자신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깊이 알았기 때문에 취미 즉 일상성을 유지한다.

한번에 폭발하는게 아니라 주기적이고 일상적으로 선을 유지 한다.

 

그렇기에 내가 패배하는 순간, 습관을 정말로 지키기 싫은 어떤 날에 그것을 내팽게쳐버릴 자신이 있다.

그 다음날 똑같이 귀신같이 복구할 자신이 생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했던 것이기에 다시 복귀할 수 있다.

언제든지 했던 것이기에 언제든지 버려낼 수 있다.

 

 

이런 특성들은 기본적으로 여성성이라고 볼 수 있다.

남자로써 가장 필요한 것은 여성성이라니 참 아이러니 하지만 그것이 기본 원리다.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여성성이 보인다면, 그 사람이 올바른 남자인 것이다.

스포츠 선수라면 크게 될 유망주가 분명하다.

 

자기가 약하고,

아직 세상이 발전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고

문제를 보고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만이

올바른 남자가 되도록 만든다.

발기를 하듯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성장하는 남자만이 진짜 남자다.

꿈꾸는 사람만이 남자다.

이미 내가 우주신으로 종결된 이야기가 아니라

미확인되고 미완성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사람만이 남자다.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바닥에 떨어진 빵을 손으로 집어먹는 어떤 가난한 여자의 태도를 따라할 수 있을 정도로

자기자신의 약함과 허접함, 세상의 부조리를 깨닫지 못한 남자는 발기할 자격이 없다.

그런 질척거리고 걸리적거리며 조금은 사악한 가난한 여자를 이해하고 나도 그런 약간의 수치스럽더라도 살기위해 행동하는 마음을 내지 못할 정도로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면 범죄자 혹은 자살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부끄러움에 내성이 생기지 않고

부끄러움을 극도로 피할 때 비로소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인간이 된다.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모든 인간이 출발하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겪는 것은 당연하다.

부끄러움을 느끼고 -> 느꼈으면 뭔가를 하면 된다.

그것을 느끼지않으면 계속해서 더 높은 강도로 느끼게 된다.

그럴바에 내가 그것을 곱씹고 곱씹어서 가상으로 상상해서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

 

남자라면 그 부정적인 것을 상상하고 예상해야한다.

무언가를 책임지는 성주라면 성이 깨지고 폭파되는 상상을 해야한다.

그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꼈을 때 비로소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수치심이 종특인 남자에게 최고의 처방전은

자기자신을 위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미 여성들은 잘만 하고있는 그것일 가능성이 크다.

자기자신만 위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을까 싶을정도로 모든 핵심이 담겨있다.

 

 

 

지켜라 그말이다.

니꺼 지켜!!!!!!!!!!!!!!!!!!!!!!!!!!!!!!!!!!!!!!!!!!!!!!!!!!!!!!!!!!!!!!!!!!!!!!!!!!!!!!!!!!!!!!!!!!!!!!!!!!!!!!

다 좆까고 니 머리카락을 지켜 병신아!!!!!!!!!!!!!!!!!!!!!!!!!!!!!!

길바닥에 나앉아도 니 머리카락을 지켜서 존나 잘생긴 거지가 되라고 미친 호구새끼야!!!!!!!!!!!!!!!!!!!!!!!!!!!!!!!

이정도의 살기가 없이 남자가 될 수는 절대없을 것이다.

이정도의 부끄러울정도의 섹시함이 오히려 또다른 기회를 불러 일으킬 것이다.

이기기 위해서 부끄러운 것을 마다하지 않고 불편하고 부끄러운 자세를 취하는 스포츠 선수들을 볼 때 느껴지는 섹시함처럼

공을 던질 때 부끄러울 수 있는 이상한 함성을 내지를 정도로 공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 힘을 폭발시키는 오타니 쇼헤이의 함성처럼 

그 극도로 거부하던 부끄러움은 때로는 귀여움으로 때로는 섹시함으로 작용해 ( 즉 긍정적으로 작용해 )

기존의 방식이 아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기회와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차라리 몸을 던지자. 절벽에서 떨어질것만 같은 그 부끄러움에 몸을 내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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